[직설]교양 여행 게임

최서윤 작가 2021. 1.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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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교양을 쌓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대학이나 언론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목록을 참고한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게임’ 리스트도 끼워줬으면 좋겠다.

최서윤 작가

교양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지, 더 나은 공동체와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게 만드는 지식이고, 공감의 반경을 넓히게끔 돕는 문화적 자양분이다. 그리고 ‘위쳐3’는 교양 있는 게임이다. ‘더 가디언’이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게임 TOP50’ 중 TOP5를 차지하기도 했다.

‘위쳐3’에서 게이머는 괴물을 사냥하고 보수를 받아 살아가는 ‘위쳐’로서 낯선 세계를 누빈다. 중세 유럽을 떠올리게 하는 이곳에서는 동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활개를 친다. 게이머는 다양한 캐릭터와 만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개입의 방향을 선택하는데, 고민 끝에 택한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가 많다. 하지만 후회될지언정 납득되지 않은 적은 없다. 높은 핍진성 때문이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입체적인 매력과 또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게 하며, 다양한 감정을 자극한다.

이와 같은 ‘위쳐’의 세계를 창조한 게임사 CDPR은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며, 세계를 구성하는 세부 요소 하나하나 공들이는 ‘게임장인’이라는 신뢰를 획득했다. 많은 게이머들은 다음 작품의 완성도가 ‘위쳐3’를 상회할 것이라 기대했고, 기대치는 홍보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출시일이 미뤄질 때마다 경신됐다.

지난달 10일 CDPR이 드디어 새 작품 ‘사이버펑크 2077’을 출시했다. 게임은 화제를 모았다. 안 좋은 쪽이었다. 숱한 버그와 수준 낮은 인공지능이 문제였다. 콘솔에선 잦은 강제종료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심지어, 회사에서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 의도적으로 감춘 채 미완성으로 게임을 출시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회계이익과 주가 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주가는 폭락했고, 투자자에게도 게임의 상태를 속였다며 집단소송의 대상이 됐다. 사과문과 함께 올린 환불 공지는 유통업체와 조율되지 않은 것이었고, 결국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퇴출됐다. 브랜드 가치는 바닥을 쳤다.

그래도 CDPR이 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내 취향에 가장 가까운 게임을 만드는 회사라서. PS4로 ‘사이버펑크 2077’을 하는 중인데 다섯 번쯤 강제종료당하긴 했지만, 의외로 재미는 있어서 놀랐다. 개성 있는 인물들과 상호작용하며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이야기로 가득한 세계를 창조하는 지향도 계승되고 있다고 느꼈다.

게임도 취향을 탄다. 나는 ‘위쳐3’와 ‘사이버펑크 2077’이 재밌지만, 다른 이에게는 아닐 수 있다. 다만, 취향을 알기 위해서는 시도해봐야 한다. 혹시나 편견으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봐 이 글을 썼다. 다른 문화와 교류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며, 아름다운 풍경에 기분을 전환하는 일. 잘 만든 게임은 여행과도 같다. 코로나 시국으로 여행이 어려워진 요즘, 취향에 맞는 게임을 찾아 떠나보자.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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