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세살 아이 때려 숨지게 한 아빠.. '깊은 반성' 이유로 집유 풀려나
現 대법 양형기준, 징역 15년이 최대
학대 극심해도 대부분 10년형 이하.. 재판부도 "국민 법 감정에 못미쳐"
獨-美, 아동학대치사 살인죄 적용.. 일각 "우리도 살인으로 처벌" 주장
아빠가 휘두른 주먹에 세 살 상훈이(가명)는 넘어지며 책장에 머리를 부딪쳤다. 아빠는 넘어진 상훈이의 작은 가슴을 또다시 폭행했다. 형과 다툰다는 게 폭행의 이유였다. 병원으로 실려간 상훈이는 이틀 뒤인 2019년 10월 결국 숨을 거뒀다.
지난해 5월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상훈이 아빠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우발적인 범행이었고 반성하고 있다. 부인이 남편의 선처를 바라고 있으며, 상훈이 아빠가 평생 고통과 죄책감 속에 살아갈 것”이라며 감형 사유를 설명했다.
● 분유 안 주고 때려 사망해도 징역 15년
본보는 2020년 전국 법원의 아동학대치사 사건 15건의 확정 판결문을 전수 조사했다. 15명의 어린 생명들이 생후 16개월의 정인이처럼 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 억울하게 이른 생을 마감했다.
법원은 15건의 사건 중 9건에서 가해자에게 10년 미만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5건은 5년 미만이었고 집행유예도 2건 있었다. 징역 15년 이상은 1건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아동을 지속적으로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극심한 아동학대치사 사건은 살인죄에 준하는 엄벌에 처해야 하지만 관대한 양형기준 탓에 처벌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대법원 양형기준상 아동학대치사죄의 최대 권고형량은 징역 15년이다.
지난해 유일하게 징역 15년이 선고된 사건은 2018년 위탁모가 친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생후 16개월의 아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경우였다. 이 위탁모는 기저귀를 갈기 싫다며 탈수증세를 보이는 아이에게 하루에 200mL의 분유만을 먹였다. 아이의 온몸을 폭행하기도 했다. 영양결핍으로 경련 증상까지 보였지만 위탁모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32시간 동안 방치했다. 아이는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1심 재판부는 위탁모에게 대법원 권고 형량을 넘어서는 징역 17년형을 선고하며 솜방망이 양형기준 문제를 판결문에 적시했다. 재판부는 “아동학대가 극심한 경우도 권고 형량이 6~10년이어서 국민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위탁모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징역 15년으로 감형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높은 형을 선고하고 싶어도 양형기준이 최대 15년이어서 따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두 살 아이를 집에 홀로 둔 채 외박해 영양실조로 숨지게 한 엄마에 대해서도 법원은 “엄마에게만 책임을 돌리기 어렵다.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 정책을 수립할 책무가 있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가해 엄마는 남편이 교도소에 수감돼 두 형제를 혼자 키워왔고, 오후 9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4시에 귀가하는 일상을 반복해왔다.
● 악질적 학대치사는 살인죄로 처벌해야
정인이를 숨지게 한 양부모는 현재 아동학대치사죄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검찰은 이들에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 부검의들의 도움을 받아 정인이 사망 원인에 대한 재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수준의 아동학대가 지속됐거나 잔인한 수법으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과 독일 등은 극심한 아동학대치사 가해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4일 성명을 내고 “정인이 사건의 가해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현재 가해 부모는 아동학대치사죄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검찰은 이들에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 부검의들의 도움을 받아 정인이 사망 원인에 대한 재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살인죄 적용을 위해 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부모를 살해(존속살해죄)하면 일반 살인죄보다 강하게 처벌하듯 아동학대처벌법에도 자녀살해죄(비속살해죄)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살인죄로 처벌하려면 검찰이 범행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정치권도 관련 입법에 착수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아동학대 형량을 2배로 늘리고 학대자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제도 정비는 물론 시스템 측면에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국가는 왜 필요하고 정치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 아동학대 예방 위한 각종 제도 활용도 낮아
전문가들은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해 위기상황에 놓인 가정과 아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에서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했던 신수경 변호사는 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빅데이터 시스템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나 학교 결석이 잦은 아동의 데이터를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군을 발굴하고 대안을 세울 전문가가 부족해 실제 활용도는 낮다”며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도 인력이 부족해 현장에 출동하기 바쁘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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