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에 대한 편견 깨기

권용선 2021. 1. 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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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에 관한 세 가지 편견이 있었다.

하나, 베토벤을 들을 때마다 자주 헤겔이 떠올랐다.

마르틴 게크가 쓴 〈베토벤:사유와 열정의 오선지에 우주를 그리다〉를 읽으며, 내 안에 있던 저 세 개의 편견이 다시 떠올랐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고급 교양서 좀 읽었다는 부류 중엔 베토벤과 헤겔을 동시에 연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테고, 롤랑의 〈베토벤〉은 한동안 베토벤에 관한 정전에 가까운 책이었으므로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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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에 관한 세 가지 편견이 있었다. 하나, 베토벤을 들을 때마다 자주 헤겔이 떠올랐다. 여백 없이 꽉 찬 선율의 무게가 고뇌하고 투쟁하고 화해하고 상승하는 어떤 세계를 자꾸 불러왔다. 그와 헤겔은 모두 1770년생이었고,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듯했다. 둘, 내가 아는 베토벤은 음악으로 자신의 장애를 훌쩍 넘어버린 영웅이었다.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베토벤〉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셋, 서울 근교의 교도소에 인문학 특강을 나간 적이 있었다. 모범수 수십 명이 앉아 있는 강당에 흐르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분위기가 나쁘지 않구나’ 내심 안심했던 것 같다. 쉬는 시간에 한 청년이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말해주기 전까지는. “선생님, 조금 전에 틀어주신 곡이요, ‘비창’이 아니라 ‘열정’ 소나타 아닌가요?” “아, 맞네요. 제가 실수를.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좋아하는 곡이라 자주 쳤어요.” 청년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해사하게 잘생긴, 아무리 봐도 그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마르틴 게크가 쓴 〈베토벤:사유와 열정의 오선지에 우주를 그리다〉를 읽으며, 내 안에 있던 저 세 개의 편견이 다시 떠올랐다. 사실 나만 갖는 편견이 아닐지도 모른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고급 교양서 좀 읽었다는 부류 중엔 베토벤과 헤겔을 동시에 연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테고, 롤랑의 〈베토벤〉은 한동안 베토벤에 관한 정전에 가까운 책이었으므로 그러했을 것이다. 세 번째 경우는 명백히 내 오류에 속하는데, 작품명을 헷갈려서가 아니라 클래식 음악이 재생되는 공간과 향유층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베토벤이야말로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민중적이며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작곡가였는데 말이다.

이 책은 대상을 영웅화하거나 가십성 에피소드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작곡가의 면모를 다각적으로 조망하고, 그의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 모두 12개의 키워드 아래 각각 3명의 인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베토벤과 관련된 자들이다. 이를테면, ‘환상성’이라는 키워드 아래엔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베르트 슈만, 장 파울이 등장한다. 베토벤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슈만을, 파울을 알게 되고, 이들을 통해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더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주제로부터 사방으로 이야기가 뻗어나가고, 다시 사방에서 하나의 주제를 향해 이야기들이 집중된 구조. 색색의 여러 파편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같은 책. 이 책을 통해 나는 내 편견들을 버렸고, 다시 하나의 편견을 얻었다. 베토벤은 완벽한 작곡가였다. 그가 완벽한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창안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도 절망도 음악이었던 그는 두려움을 몰랐다.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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