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명퇴받고 임대료 싼 2층으로.. 은행들 눈물겨운 몸집 줄이기

김효인 기자 2021. 1. 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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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구조조정 속도내는 은행들

우리은행이 4일부터 거점 점포 한 곳과 인근 영업점 4~8개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통합 관리하는 ‘VG(Value Group·같이 그룹)’ 제도를 시행하면서 영업점 정비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그동안 전체 점포의 30%가량을 이런 식으로 통합 관리해왔는데, 올해부터 이를 대부분 점포로 확대·시행하는 것이다. 우리은행뿐 아니라 신한·KB국민·하나 등 다른 대형 시중은행들도 지점 몇 군데를 하나로 묶어 운영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포장은 근사하지만 사실 영업점 통합 관리는 점포 통폐합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2개 점포를 1개로 통폐합하기 전에 통합 관리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모바일·인터넷뱅킹 시대를 맞아 불필요해진 오프라인 조직을 경량화하려는 은행들의 변화가 새해 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영업점을 폐쇄하거나 임대료가 싼 2층 이상으로 이전하고, 명예퇴직 제도를 통해 인원을 감축하는 것이 골자다. 안정적인 ‘화이트칼라(사무직 노동자)’의 대명사였던 은행권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비대면의 일상화, 인터넷 은행들의 강세 속에 생존하기 위한 혁신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매일 한 곳씩 은행 점포 문 닫아

지난해 코로나 사태는 은행 점포 감소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은행들이 영업점 운영 시간을 1시간 단축하고, 확진자가 발생하면 점포를 폐쇄하는 상황도 잦아지다 보니 이용객들이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은행들은 인터넷 등을 통한 비대면 영업을 강화하면서 오프라인 영업점 폐쇄로 대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의 은행 점포는 2019년 말 4721개에서 지난해 상반기 4613개로 6개월 만에 100곳 이상 줄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140여 개 점포가 추가로 폐쇄된 것으로 금감원은 추산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250개에 가까운 은행 영업점이 사라진 것이다. 일주일에 5개꼴인데, 평일 기준으로 하루 한 곳씩 문을 닫은 셈이다. 2018년에 43개, 2019년에는 50개가 없어진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은 올해 1~2월 중 26개 점포를 통폐합할 예정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지점을 찾아오는 고객은 온라인 서비스 사용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아예 외출을 꺼리다 보니 눈에 띄게 영업점이 한산해졌다”고 했다.

◇10년 새 ‘1층 이상 점포’ 2배로

과거 은행 점포는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의 목 좋은 곳 1층에 자리 잡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점 방문객 수가 줄면서 ‘목 좋은 1층 은행'은 이젠 옛말이 돼가고 있다. 이전하거나 신규 개업하는 점포 상당수가 임대료가 싼 지하나 2층 이상에 위치하는 것이다.

본지 취재 결과,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전국 지점 가운데 1층이 아닌 곳은 23%에 달한다. 은행 관계자들은 “영업점의 개점·폐점은 관리하지만 위치해있는 층은 별도로 기록하고 있지 않아 정확한 통계 비교는 어렵다”면서도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전체 지점의 90%가량은 1층에 위치했었는데, ‘비(非)1층 점포'가 10년 사이 2배가량 늘었다”고 했다.

작년에 새로 문을 연 영업점들의 상황을 보면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신한과 우리은행은 지난해 각각 3곳의 신규 점포를 냈는데, 모두 1층이 아닌 지하나 2층 이상에 위치했다. KB국민은행 신규 점포 4곳 중 1곳도 2층이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건물주들이 1층에 은행이 입점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요즘에는 ‘은행이 오후 4시 이후로 문을 닫다 보니 건물 전체의 활기가 떨어진다'며 1층 입점을 꺼리기도 한다”며 “내방객이 적어진 상황과 맞물려 어쩔 수 없이 1층을 내주게 되는 상황이 많다”고 했다.

◇계속되는 감원... 40대도 ‘명퇴’ 대상

영업점 폐쇄는 필연적으로 인력 감축으로 연결된다. 은행권에는 지난해에도 대규모 명예퇴직 행렬이 줄을 이었다.

4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중은행 중 농협에서 487명, 하나에서 511명이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이는 2019년보다 각각 39%, 38% 증가한 수치다. 우리은행은 명예퇴직 신청자가 445명으로 2019년 305명에 비교하면 5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 명예퇴직을 단행할 예정인 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규모가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임금피크제 대상이 아닌 40대의 명예퇴직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하나은행의 경우 40세 이상~55세 미만을 대상으로 준정년 특별퇴직을 진행하는데, 지난해 퇴직을 확정 지은 인원이 285명으로 2019년 말 92명에서 3배 이상으로 늘었다. 농협의 경우 40대 퇴직자가 2018년 37명, 2019년 19명 등으로 전체 명예퇴직 인원 대비 5~6%를 차지한다.

매년 이어지는 대규모 명퇴 행렬을 보고 먼저 일을 그만두겠다고 나서는 2030 은행원도 많다. 재작년 공채로 5대 시중은행에 입사한 김모(30)씨는 1년 만에 퇴사를 결심하고 지난해 IT 기업으로 이직했다. 김씨는 “같이 입사한 동기들 중 30% 정도는 이직하거나 퇴사를 생각 중”이라며 “앞으로는 은행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 것이 뻔히 보여 젊은 사원들이 ‘빨리 다른 길을 찾자’고 마음먹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은행의 몰락’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 은행의 강세, 비대면의 일상화 등 바뀐 금융 소비 행태 속에 전통 은행이 적응하면서 ‘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용객들도 온라인·비대면 서비스를 선호하게 되면서 디지털 전환은 은행권의 불가피한 숙제”라며 “대면 영업점을 줄이고 조직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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