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원칼럼] 새해를 우울하게 하는 정치

강호원 2021. 1. 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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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 부른 소득주도성장·부동산
규제정책 고집하는 대통령의 인사..
잘못된 국정 반성 없이 나랏빚 뿌려
'홍길동 행세'하면 지지율 추락할 것

새해가 밝았다. 너나없이 지평선 너머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소망을 빌었을 성싶다. 새해에는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하지만 가슴속에는 우울이 자리한다. 세밑 처량하게 들리는 자선냄비 종소리에도, 싸늘한 사랑의 온도탑에도 깊은 우울은 새겨져 있었다.

왜 그런 걸까. 코로나19 때문에?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렵다고 절망하는 것은 아니다. 환난상휼(患難相恤). 어려울수록 힘을 모아 간난을 이겨낸 역사와 사연은 수없이 많다.
강호원 논설위원
1998년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닥친 그해 초, 금모으기 운동이 시작됐다. 한 푼이라도 모아 국가부도를 이겨내자면서. 금을 모으면 바닥난 외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턱없는 소리다. 그래서 금모으기 운동을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그 역시 턱없는 소리다. 왜? 그 운동은 해외 투자자를 감동시켰다. 그들에게 “한국은 반드시 일어선다”는 믿음을 심었다. 투자가 다시 일고, 경제도 되살아났다. 우리 기업이 다시 세계경쟁의 불을 댕긴 것도 그로부터다. 국가보조금이 줄었다고 공무원까지 화염병을 던진 나라들과는 다르다.

행동거지를 보면 머릿속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미래를 알 수 있다.

지금도 어렵다. 지표마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 꼬리표가 붙는다. 성장률·일자리·소득·수출…. 가계와 기업이 짊어진 빚도 사상 최대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파산 문턱을 오간다.

허물어진 경제를 보면 모금운동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할 수 있을까. 식어버린 사랑의 온도탑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웃사랑을 베풀 여유가 없다. 혹시 정부가 운동을 주도한다면? 콧방귀 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게다. 왜? 파탄을 부른 장본인이 바로 정부이기에 그렇다. 그런 정부는 젊은 세대를 질식시킬 나랏빚과 세금폭탄으로 조달한 돈을 뿌리며 ‘홍길동 행세’를 한다.

우울한 새해는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열 중 여섯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왜? 경제 파탄, 집값 폭등, 권력형 비리를 감추기 위한 검찰개혁 구호, 백신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부르짖는 코로나19 방역 공치사…. 무책임한 ‘아시타비(我是他非) 정치’의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곤두박질하는 국정 지지율은 우울증이 얼마나 심한지를 재는 척도다.

대통령은 국민 우울증에 화룡정점까지 한다. 사의를 표했다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반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안이 많아 교체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어떤 인물일까. 장하성·김수현에 이어 소득주도성장과 반(反)시장 규제 정책을 주도했다. 책임을 지기 싫었던 걸까, ‘코로나19 백신TF’를 만든 뒤 컨트롤타워인 자신만 쏙 빠져 ‘백신 파문’을 부르기도 했다. 말 많고 탈 많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임명했다. 그는 야당 반대에도 임명한 26번째 장관이다.

대통령의 행동에서 그의 생각을 읽게 된다. 경제를 파탄으로 내몬 ‘소득주도성장’ 구호를 이젠 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기존 경제·부동산 정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우울의 씨앗이다.

정치는 어떨까. 검찰총장을 쫓아내려다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추미애 법무장관. 그를 내보내기로 한 뒤 이번에는 박범계 의원을 후임자로 뽑았다. 이제 ‘추미애 시즌2’가 시작될까. 거대 여당은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수사의 칼’을 빼앗아 권력형 비리 수사를 막겠다는 것인가. ‘조국 아내’ 정경심 징역형을 두고는 여당 의원들이 소리친다.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

사법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은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권력 집단의 광기에 뒷전으로 밀려나는 민생. 국민은 또 우울해진다.

새해의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궤변이 상식을 뒤덮는 한, 희망의 빛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궤변을 앞세우는 정치는 바로 패도(悖道·어그러진 정치)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 간직(諫職)에 어리석은 왕 걸과 주를 논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보여줘도 보지 못하고, 들려줘도 듣지 못하면 농고(聾瞽, 농아·맹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통령이 새겨야 할 말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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