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忍苦의 산물, 세한도와 마스크

강구열 2021. 1. 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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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김정희는 제자 이상적을 위해 '세한도'를 그렸다.

유배 죄인의 신세인 자신을 전과 변함없이 보살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에 "한겨울 추운 날씨〔세한〕가 된 다음에야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이 더디 시듦을 알 수 있다"는 의미를 그림에 담았다.

'코로나19의 시간을 버티게 한 우리의 송백은 무엇이었을까.' 내 나름의 대답은 마스크다.

마스크에 대한 집착에는 '너 때문에 내가 감염될 수 있다'는 경계가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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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김정희는 제자 이상적을 위해 ‘세한도’를 그렸다. 유배 죄인의 신세인 자신을 전과 변함없이 보살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에 “한겨울 추운 날씨〔세한〕가 된 다음에야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이 더디 시듦을 알 수 있다”는 의미를 그림에 담았다. “억지로 버티는 한 가닥 모진 목숨뿐”이라던 김정희에게 이상적은 혹독한 시간을 견디게 한 버팀목이었다.

우리에게도 세한의 시간은 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지난 한 해를 통째로 집어삼켜 일상을 파괴했다. 1년 내내 내남없이 고통의 시간이었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그래도, 제법 잘 버텼다. 확진자가 매일 1000명 안팎을 오르내리는 시점인지라 조금 민망하긴 해도 2020년 전부를 놓고 보면 나름의 선방이라 자부해도 되지 않나 싶다.

그래서 묻게 된다. ‘코로나19의 시간을 버티게 한 우리의 송백은 무엇이었을까.’ 내 나름의 대답은 마스크다.

마스크가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한 건 강제였다. 정부에서 착용을 의무화하기도 했고, 감염을 막기 위한 각자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은 자발적인 의지와 배려의 산물이기도 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을 것이며, 감염원이 되지도 않겠다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 누군가의 불안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표현인 것이다.

이렇게 불편하고, 이제는 지긋지긋한 이 물건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풍경은 자발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설명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간혹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벌인 일들이 보도될 때 금방 공분이 이는 것도 나를 지키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겠다는 의지와 배려를 해치는 막무가내라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한적한 곳에서 마스크를 내린 채 마주 걸어오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잠깐이나 마스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인 그런 행동은 나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충분히 이해한다. 흥미로운 점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확인하면 대체로 ‘턱스크’는 수정된다는 사실이다. 마스크에 담긴 우리 사회의 잠정적 합의가 무엇인지를 체감하는 순간이다.

마스크에 대한 집착에는 ‘너 때문에 내가 감염될 수 있다’는 경계가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염병의 창궐이 뿌려놓은 불신과 불안을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새해다. 의지를 새롭게 하고, 목표를 향해 다시 뛰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혀 있다. 계속되는 전염병의 시절을 어떻게 버텨갈 것이며, 종국엔 어떻게 떨쳐 버릴 것인가. 질문의 답이 우리가 보낸 지난 1년에 담겨 있다고 믿는다.

다시 세한도를 본다. 김정희는 유배의 시절의 버팀목이 되어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장무상망’(長毋相忘·길이 서로 잊지 말자)하기를 바랐다. 코로나19 시대, 우리의 버팀목은 무엇이었는지를 꼽아보는 건 어떨까. 마스크말고라도 저마다의 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다 단단하게 키우고, 야무지게 끌어안아 장무상망할 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다 수월하게 지날 수 있을 것이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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