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세상보기] 저출산 정책 실효성 높이려면
정책 시행 15년째 '백약이 무효'
지원금 준다고 둘째 계획 안해
저출산 해결 공감대 구축 절실
2019년 우리 집안에선 딸 둘 아들 하나 모두 3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산모 나이는 30대 초반 2명, 30대 후반 1명이었다. 세 쌍의 부부 중 두 쌍이 맞벌이인데 그중 한 쌍은 “딸 하나로 끝내겠다”고 당당히 선언했고, 나머지 한 쌍은 “둘째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수줍게 밝혔다. 부부 모두 전문직에다 젊은 친정어머니께서 손자 양육을 책임지고 계시니, 이만하면 남들 부러워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인데, 마흔을 넘긴 예비 산모의 나이가 걸림돌인 듯하다. 나머지 한 쌍은 결혼 전부터 두 명의 자녀를 원했던 만큼 조만간 기쁜 소식을 전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의 연구 결과를 일별해 보면, 첫째보다는 둘째를 출산하고자 할 때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점이 공통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부인의 연령, 가구의 소득수준 및 남편의 직업상황, 그리고 자녀를 돌봐 줄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이 계신지 여부 등이 둘째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으로 밝혀졌음은 우리네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아가 고학력 워킹맘의 경우는 둘째 출산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높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와중에 첫 자녀를 이미 출산한 부부를 대상으로 둘째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탐색하고자 심층면접을 진행 중인 대학원생 제자를 만나 부부들 속내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심층면접 과정에서 드러난 스토리 중 하나는, 대부분의 부부가 둘째를 낳을지 말지를 결정할 때 정부 정책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둘째를 출산할 경우 출산 지원금 규모는 얼마인지, 양육 지원은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지, 출산 및 육아 휴가는 어떻게 사용 가능한지 등에 대해 설사 구체적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정책 유무가 자신들의 결정에 그다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다자녀 가구를 위해 정부가 아파트 특별분양의 혜택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고, 혜택을 준다는 사실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아파트 분양을 받을 목적으로 둘째 자녀를 계획하는 커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보다는 첫째 출산 후 둘째 출산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커플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난 특징은 “그래도 아이는 최소한 둘은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태도라는 것이 의외로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다. 자녀 둘을 원하는 남편의 경우 전통적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비교적 강하게 내면화하고 있음도 흥미로웠다. 단 남편은 둘째를 원하지만 부인이 둘째를 원하지 않을 경우는 부부 간 갈등이 심각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특히 전통적 성 역할을 고수하는 남편에 독박육아는 절대로 원치 않는 부인의 경우라면 둘째 출산은 쉽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설혹 부부의 생각이 같다 하더라도 직업상황이 불안정하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양육에 우호적 환경이 아니라면 물론 출산을 자연스럽게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제 저출산 정책이 시행된 지도 15년여의 세월이 흐른 만큼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확보된 것 같다. 효과가 전무한 정책, 기대에 못 미치는 정책, 립서비스 수준에 머무르는 정책 등은 과감히 포기하고, 진정 출산 의지가 있는 행위 주체가 출산 여부를 결정할 때 직접적 도움이 되는 정책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의 묘를 발휘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소소하고 잡다한 나열식 정책보다는, 긴 호흡을 갖고 장기적 시각에서 인구문제의 본질을 교육하고, 인구 감소로 인한 위기 및 폐해의 경각심을 일깨우며,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연대 및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기본에 충실한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 보다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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