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의 비즈 & 클래식 33] 클래식 시장의 대표 마케팅 전략 '탄생과 죽음'
음악가 생몰(生沒·태어남과 죽음) 기념 이벤트는 클래식 시장에선 흔한 마케팅 수법이다.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 축하 행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부분 취소됐다. 독일 연방 정부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베토벤 탄생 기념일 협회(BTHVN)’가 1년 미뤄진 기념 콘서트를 독일 전역에서 열 계획이나 빈번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성사는 불투명하다.
대표적인 생몰 마케팅의 예시로, 2021년 클래식 시장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아르헨티나 탱고 작곡가 겸 반도네온(남미식 아코디언) 주자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 업적을 주목한다. 피아졸라는 작곡가 나디아 불랑제를 사사하며 익힌 클래식 문법과 어휘를 탱고에 가미한 ‘누에보 탱고(새로운 탱고)’를 창안했다. 클래식계가 피아졸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그의 사후부터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참여한 ‘피아졸라에 경의(1996)’ 음반이 히트하면서 ‘피아졸라 붐’이 일었다.
크레머는 반도네온, 피아노, 더블베이스 주자로 밴드를 구성해 1997년 내한했다. 크로스오버에 미온적이던 아르헨티나 출신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다니엘 바렌보임도 피아졸라를 다뤘다. 오는 3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이 반도네온과 합주하고 워너클래식은 ‘리베르탱고’ 앨범을 재발매한다. 보컬리스트 우테 렘퍼가 성악으로 거장을 추모하고 프랑스 랭 오페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리아’를 컨템포러리 무용으로 제작한다.
프랑스에선 자국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 서거 100주년에 비중을 둔다. 생상스는 10세에 피아노 공연을 열면서 모차르트에 비견되는 재능으로 각광받았다. 20년간 파리 마들렌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맡았고, ‘오르간 교향곡’에 명오르가니스트의 자취가 선명하다. 제자뻘인 가브리엘 포레, 모리스 라벨과 달리 균형과 명료함을 강조했고 수학, 천문학, 고고학에 관심이 지대했다.
프랑스 정부는 생상스가 남긴 서지의 디지털화 작업에 몰두한다. 악보 600여 점, 서신 1만4000여 통의 분류 작업이 끝나면 프랑스 국립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파스퇴르와 교환한 편지도 열람할 수 있다.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르노 카퓌송(바이올린), 에드가 모로(첼로), 베르트랑 샤마유(피아노)가 생상스 실내악 음반 작업을 마쳤다.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은 야니크 네제 세갱, 다니엘 하딩,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지휘로 사후 125주년을 맞은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유명 교향곡을 선보인다. 무조주의(으뜸음이 없는 음악), 12음 기법(옥타브 내 12음을 임의대로 줄 세워 음렬을 만든 후, 이를 여러 방향으로 뒤집으며 곡을 쓰는 것)으로 생전에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한 아널드 쇤베르크(1874~1951)는 사망 70주년에도 코로나19 사태로 학술 행사 대부분이 무산된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1882~1971) 50주기 행사는 코로나19 안전지대로 평가받는 뉴질랜드에서 활발하다. 뉴질랜드 심포니와 로열 뉴질랜드 발레단이 스트라빈스키 주요작을 오프라인에서 소화한다.
현역 음악인 탄생 축하 물결도 활발
현역 작곡가 탄생 축하 공연은 주요 공연장의 현대음악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만난다.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는 2월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 95세 기념 시리즈를 준비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90세를 맞은 구소련 출신 여성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를 집중 조명한다. 환갑에 접어든 한국 작곡가 진은숙은 런던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초연이 예정됐으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1월 런던 공연은 취소됐다.
음반 산업에선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튀르 그뤼미오(1921~1986) 탄생 100주년을 선용한다. 그뤼미오는 1950년대 모노 시절, 1960년대 스테레오 기술 도입 초기 기록을 네덜란드 필립스 레이블에 다량 남겼다. 기회가 되는 족족 SACD 등 새로운 오디오 포맷으로 재발매된 그뤼미오 음원은 100주년을 맞아 다시금 고음질 박스 전집으로 출시될 전망이다. 헝가리 피아니스트 게자 안다(1921~1976), ‘미남 테너’ 프랑코 코렐리(1921~2003), ‘비운의 천재 호른주자’ 데니스 브레인(1921~1957)의 과거 자료도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빛을 본다.
현역 연주가 중에선 팔순을 맞은 아르헤리치와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행로가 돋보인다. 라이벌 마우리치오 폴리니(1942년생)가 환갑 이후에도 솔로 곡 녹음과 연주를 이어간 데 반해, 아르헤리치는 21세기 들어 독주를 삼가면서 실내악과 자신의 이름을 내건 페스티벌에 집중했다.
스위스 루가노와 일본 벳푸에서 오랫동안 본인 명의 축제를 진행했고 벳푸 행사를 분산 개최하는 형태로 국내에서도 실내악 갈라(축제)를 가졌다. 2021년 5월 말 벳푸 아르헤리치 축제가 예고됐지만, 국가 이동 시 2주간 자가 격리 조치가 유지되면 아르헤리치의 방한은 난망하다. 함부르크 심포니가 6월 아르헤리치 축제로 80세를 축하하고 바렌보임은 5월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파트너로 아르헤리치 협연을 지휘한다.
새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무티는 음악감독으로 몸담은 시카고 심포니가 ‘2020/2021시즌’ 전체를 쉬는 바람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빈 필하모닉을 연주하면서 팔순을 보낸다. 무티는 빈 필하모닉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유럽 투어에 동행하고 아시아 연주 여행도 주재한다. 빈 필하모닉 아시아 공연 예정국에 한국도 이름이 있지만 2주간 자가 격리 이슈가 해결되지 않으면 무티의 방한은 힘들다. 올해 환갑인 네덜란드 지휘자 얍 판 즈베던의 경우 자신이 감독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홍콩 필하모닉의 현지 공연 진행이 어렵다. 대신 8월 홍콩 필하모닉 세종문화회관 내한과 10월 KBS교향악단 객원 지휘가 발표됐다.
세계적인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음악계가 오랜 기간 준비해온 여러 생몰 콘서트, 페스티벌, 투어 등이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훌륭한 음악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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