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수' 위해 수십장씩 산 앨범들이 애물단지로..환경친화적 '덕질' 불가능할까요
[경향신문]
실제 음악 듣기 위한 용도보다
충성도 증명·응모권 위해 구매
포장 쓰레기 분리수거도 안 돼
제작 과정·마케팅 변화 필요
4026만장. 지난해 많이 팔린 앨범 400개의 판매량(한국음악콘텐츠협회)이다. 전년(2459만장) 대비 무려 64%가량 증가한 수치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된 2003년 이후 가장 많다. 하지만 앨범 산업의 ‘역대급 호황’을 바라보는 K팝 팬들의 표정은 어딘지 씁쓸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환경 파괴범이 된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무슨 사연일까.
“앨범을 수십장 산 다른 팬들의 ‘언박싱(개봉기)’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이건 아니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신이선양(18)은 앨범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스, 비닐, 에어캡…. 앨범을 뜯을 때 나오는 쓰레기 양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분리배출이 불가능한 재질이라는 점은 더 큰 문제다. 포토북이나 CD 같은 ‘기본 구성품’은 열어보지도 않고 쌓아두게 된다.
앨범을 많이 사지 않는 편이라는 신양 역시 한 번에 3~4장씩은 산다고 했다. 포토카드 같은 구성품은 랜덤 발송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얻으려면 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해야 한다. 팬사인회 등 각종 이벤트 응모권을 받기 위해 앨범을 사는 팬들도 있다. 앨범을 많이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구조여서 같은 앨범을 100~200장씩 사는 팬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기획사들은 하나의 앨범을 포장만 바꿔 다른 버전으로 발매하거나 팬사인회 참가자들에게만 ‘미공개 굿즈’를 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앨범 구매를 유도한다.
실사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앨범은 결국 ‘처치곤란’ 신세가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녀시대, 엑소, NCT, 더보이즈 등 다양한 K팝 가수들을 좋아했다는 임효은씨(22)의 방 한쪽엔 앨범들을 모아둔 박스들이 쌓여 있다. 그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쌓아뒀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원낭비’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획사들에 앨범 판매량은 팬덤의 충성도와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음원의 경우 수익의 35%를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져가지만, 실물 앨범은 유통비용이 적어 기획사의 수익률이 높다. 팬들은 최근의 앨범 마케팅이 “과열됐다”고 지적하면서도 앨범 판매량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밀리언셀러’나 ‘더블 밀리언셀러’라는 타이틀이 가수의 인기를 증명하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이다. 신양은 “가수들 성적이 좋아야 소속사에서도 꾸준히 컴백을 시켜주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기록을 달성하지 못하면 팬들끼리 구매를 독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팬들은 중고거래나 무료 나눔 등을 통해 앨범을 처리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쓸모’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 대안은 될 수 없다. 팬들은 앨범 구성을 간소화하고 분리배출이 가능한 재질로 바꾸는 등 제작 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보이그룹 팬 은지영씨(31)는 “앨범 판매량과 연동해 팬사인회 응모권을 판매하는 등 과소비를 부추기는 마케팅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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