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회 갈등·대립이 법원으로 밀려든다"는 대법원장의 우려
[경향신문]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시무사에서 “사회 각 영역에서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고, 그러한 갈등과 대립이 법원으로 밀려드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적 수단을 동원하는 대신 자율적인 방식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사법부 수장의 발언은 사회의 각종 현안이 정치권이나 전문가 논의를 통해 해결되지 않고 재판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현상에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회와 정치권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사법부에 결정을 떠넘기는 ‘정치의 사법화’를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대 국회에서 벌어진 여야 의원들 간 몸싸움이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 소송전으로 비화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법률의 해석을 둘러싸고 촉발된 갈등에 사법부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공항의 입지를 정하는 문제나 원자력발전소 유지 여부 등은 재판으로 결론 낼 수 없는 사안이다. 그래서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난제를 풀고, 또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을 통합하고 개혁과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이 바로 정치의 핵심 기능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갈등을 조정·해소하기는커녕 자기 당파의 이익을 위해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고사하고 약점을 잡아 고소·고발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려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원 판결까지 정쟁의 논리로 재단되면서 법관들이 공격받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윤석열 총장이 낸 징계 집행정지 소송을 받아들인 법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형을 선고한 법관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그 예이다. 일부는 법관의 신상을 공개하며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사법부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 보루다. 법원 판결마저 정치로 몰아가면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다. 김 대법원장은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외부 공격에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새해엔 정치권이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우선 상대에 대한 고소·고발을 남발해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한 축이지만 시민이 선출한 권력이 아니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법원 판단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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