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인이 죽음 못 막은 시스템 허점 규명하고 근절책 마련해야
[경향신문]
양부모의 학대 끝에 숨진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애도하고 관련자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학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이후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는 등 공분이 확산 중이다. 4일에는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가세하면서 이 사건이 해외로도 알려졌다. 오는 13일 양부모의 첫 재판을 앞두고 법원에 진정서를 내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생후 7개월 때 입양된 아이가 이후 271일 만인 지난해 10월13일 온몸이 멍투성이인 채 심각한 장기 손상과 골절상을 입고 숨진 사건의 충격이 크다.
방송에 공개된, 사망 전날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정인이는 힘없이 축 처진 채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 장면을 본 소아과 전문의는 “정서 박탈이 심해 무감정한 상태”라고 했다. 또 아이의 볼록한 배를 보고 “장이 터져서 공기가 밖으로 새어 나간 상태라 극심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사의 증언도 있었다. 양부모는 아이를 떨어뜨린 사고에 의한 죽음이라고 주장하지만, 극악한 학대가 상습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날 가해 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양모와 양부는 각각 학대치사, 방임 등 혐의로 구속,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세 차례나 아이를 살릴 기회가 있었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실이다. 지난해 5월, 6월, 9월에 각각 어린이집, 양모의 지인, 소아과 병원 측에서 아이 몸의 상처나 방치된 상황을 접한 뒤 아동학대 의심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양부모의 거짓말만 믿고 모두 내사종결 또는 혐의 없음 처리했다. 경찰이 부실하게 대응하는 사이 아이는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양천경찰서에는 시민들의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아동학대 신고 처리와 감독 업무를 맡았던 경찰관들은 ‘경고’나 ‘주의’를 받았을 뿐이다. 명백히 의심되는 아동학대의 증거를 왜 못 찾은 것인지, 아예 안 찾은 것인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
아동학대를 방지하는 사회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이 다시금 확인됐다. 지난해 충남 천안, 경남 창녕 등지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며 대응 매뉴얼을 강화하고 법·제도 개선에 나섰는데도 제자리걸음이다. 아동학대를 뿌리 뽑을 대책이 나와야 할 때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도 이날 한목소리로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한 법·제도·시스템을 고치겠다고 다짐했다. 학대 아동을 적극 분리하고, 초동 조사의 실효성을 높이며 아동학대를 엄단하는 법규로 비극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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