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U의 서재] 나의 살아 있음만큼 중요한 만물의 살아 있음, <살아있다는 건> 저자 김산하 인터뷰
박사님은 인도네시아에서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야생 영장류 학자가 되셨습니다. 처음부터 영장류를 연구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다른 동물을 다 제치고 영장류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웬만한 동물은 다 좋아했기 때문에 연구를 위해 한 종류만 정해야 한다는 점이 오히려 좀 괴로웠죠. 까치 생태 연구로 석사를 마치고 다음은 뭘 연구할까 고민하던 참에 지도교수님께서 영장류를 연구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신 거죠.
아주 우연한 기회로 영장류 연구에 발을 들이게 되셨군요.
교수님의 제안에 딱 하루 고민하고 그러겠다고 했습니다.(웃음) 그렇게 일본에 있는 영장류 연구소에서 침팬지 행동 실험에 참여하게 됐고요. 재미는 있었지만 점점 더 야생 서식지에 직접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시에 영장류라는 동물군의 매력에 눈을 떴습니다. 영장류는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열대우림에 분포합니다. 그들이야말로 그 생태계 자체를 상징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생태학에 문학과 디자인 등 예술을 융합하는 것은 특별한 효과가 있나요?
이성적 이해와 정보 습득과는 다르게, 예술과 융합하면 미학적인 경로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미학적 경로’라고 해서 꼭 어렵고 주관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찾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에요. 미학적인 경험은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다양하게 융복합하는 겁니다. 이로써 더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나아가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거든요.
<살아있다는 건>은 말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의 감동을 타인과 나누고파 쓰고 삽화도 직접 그린 책입니다. 독자가 꼭 파악해주었으면 했던 ‘저자의 메시지’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흔히들 저자에게 주어지는 질문이 ‘독자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뭐냐?’인데, 책의 목적이 한 구절의 메시지 전달이라면, 또 그 메시지 하나로 다 축약이 된다면 굳이 ‘책’이라는 형태의 장문의 글 아래에 숨겨둘 이유가 없겠죠.
물론 <살아있다는 건>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 있음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남의 살아 있음도, 더 나아가 만물의 살아 있음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수록된 삽화와 에피소드 중 특히 애착 가는 부분이 궁금해요.
추운 겨울날, 창밖에서 씩씩하게 노래하며 당당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새를 보다 보면 난방을 틀고 겹겹이 껴입고 뜨거운 찻잔을 든 채로도 추위에 덜덜 떠는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새들도 우리와 같은 정온 동물이거든요. 그들도 따뜻한 걸 좋아하지만 적어도 사람처럼 움츠러들거나 소극적으로 생에 임하지는 않습니다. 그 새의 훌륭한 점이 바로 ‘살아 있다는 것’의 핵심 정신이죠. 그래서 궂은 날씨에도 씩씩하게 노래하는 새의 그림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이 시리즈의 첫 그림이면서도,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과 심상을 잘 담았다고 생각해요. 또, 일상적인 만남에도 뛸 듯이 기뻐하는 강아지 그림도 마음에 들어요.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제 반려견을 생각하며 그렸거든요.
박사님은 시민과 청소년이 참여하는 환경 운동인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 한국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명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싶다면 어떤 활동을 해보는 게 좋을까요?
‘뿌리와 새싹’은 자발적 활동입니다. 동물, 이웃, 환경을 위해 뭔가 한다면 그것이 바로 생명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활동이에요. 주변의 공원이나 산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려고 해보세요. 까치, 직박구리, 무당벌레, 지렁이, 온갖 식물이 보일 겁니다. 이들의 존재감을 보고 느끼면서, 잡거나 죽이거나 침해하지 않으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접하는 법을 함께 배우는 거죠. 도심의 녹지 생태가 빈약해져서 많이 보이진 않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더 생명이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볼 수 있겠죠.
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거로군요.
단순 관찰보다는 실천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비판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원을 불필요하게 낭비하는 것을 줄이려 하고,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상품을 소비하지 않고 오히려 없앨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생명의 다양성이 점점 설 자리를 잃는 것은 우리 문명의 구조와 관성 때문입니다. 이것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짬을 내고, 약간의 자연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생명 다양성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기 어렵죠.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거나 극복하는 방향으로 무엇이든 해보면서, 그 과정에서 생명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익힐 것을 권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수능을 치른 전국의 수험생 친구들이 이 글을 읽게 됩니다. 사회에 한발 내디딜 친구들을 위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회에 한발을 내디딘 다음에는 당연히 다음 발을 내딛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매 걸음이 선택이고, 걸음 사이사이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고요. 수능은 인생에서 겪는 수많은 시험 중 겨우 하나에 불과하고, 중요도로 따지면 오히려 매우 낮은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험 성적보다 결국 어디로 가느냐가 훨씬 중요하죠.
자신의 철학과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살아 있는 생명에게서 답을 얻어보라고 제안 하고 싶습니다. 그것보다 재미있고, 근본적이고, 또 절실한 것은 없거든요!
■ Who is he?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다양한 생명과 그들이 사는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정신을 구현하려는 단체, ‘생명다양성재단’의 교육과, 연구, 캠페인을 총지휘하고 감독한다.
최근 <활생>이라는 제목의 번역서를 내고 ‘활생(야생 동식물의 보전과 복원)’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신작은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야생’의 가치를 알리고, 야생의 자연과 서식지를 확장하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검토 중이다.
전정아 MODU매거진 기자 jeonga718@modu1318.com
글 김산하 · 진행 전정아 · 사진 제공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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