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특조위, 중대재해법 '누더기' 우려에 국회에 의견서 제출

CBS노컷뉴스 박하얀 기자 2021. 1. 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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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법의 예방효과 감퇴시켜"
'경영책임자 등' 정의 쟁점.."책임 주체는 '진짜 사장'이어야"
공무원 처벌 특례·처벌 하한형·이행점검 여부 감독 등 강조
지난달 6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 2주기 추모제. 묘소 옆에 피켓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누더기 법'이 될 우려에 고(故) 김용균씨의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조사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 이행점검단이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을 제정해 산재 사고를 끊어내야 한다"며 국회에 의견을 표명했다.

고 김용균 특조위 이행점검단은 4일 "중대재해법조차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의 존재 자체로 재해를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위엄이 실린 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며 국회에서 논의중인 법안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의견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중대재해 범위와 관련해, 이행점검단은 의견서에서 "직업성 질병자의 내용과 종류를 본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포괄적으로 시행령에 위임하자는 정부안을 두고는 "포괄위임금지 원칙상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대재해 범위는 '1명 이상이 사망한 때'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앞서 법안소위에서 논의된 잠정안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할 경우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일한 사고로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일한 원인으로 5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중대재해로 인정하기로 했다.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정의를 두고도 우려가 나왔다. 앞서 법안소위 잠정안은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정의에서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총괄에게 중대재해 예방 등의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또는' 이라는 단어 하나로 대표이사 등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행점검단은 "책임 주체인 경영책임자는 바지사장이 아니라 진짜 사장이어야 한다"며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이에 준해 안전 보건에 관여하거나 의사결정에 관여한 사람, 법안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 등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
아울러 사업장 규모별로 법 적용 시기를 달리 하는 데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부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은 4년,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은 2년 동안 적용을 유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행점검단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는 전체 사업체의 98.8%, 건설업체의 93.3%에 적용을 유예하는 것"이라며 "법의 예방효과 및 실효성을 현저히 감퇴시키고 형법의 보편적 적용에도 반해, 법의 형평과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 등의 지원을 통해 안전시설을 갖출 수 있는 일정한 유예 기간을 부여한 뒤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전면적으로 법을 시행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업장 규모와 그로 인한 사정은 그후 법 적용 단계에서 책임 능력과 양형요소로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해선, 손해액의 3배 이상으로 하한형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안은 손해액의 5배를 최고한도로 두도록 했을 뿐, 하한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 수위를 두고는 형법상 진정결과적가중법인 상해치사죄, 폭행치사죄, 유기치사죄 등을 참고해 하한형을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 1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천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공무원 처벌 특례도 쟁점 중 하나다. 국회에는 결재권자인 공무원을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정부안에는 '직무유기죄에 해당할 때만 처벌한다'고 수정됐다. 이행점검단은 안전 준수 감독, 인허가 공무원과 감독책임 공무원에게 실효적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아울러 법인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행점검단은 "기업이 이윤 추구를 위해 고의적으로 안전 의무를 위반하도록 교사 또는 조장해 사망하는 등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범죄의 중대성을 감안해 법인에 전년도 매출액 또는 수입액의 10분의 1 범위 안에서 벌금을 가중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중대재해법에서 쟁점이 됐던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사라질 위기에 있다. 인과관계 추정이란 특정한 조건에서는 중대재해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법을 적용한다는 의미다.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법에는 사고가 난 시점으로부터 5년 전까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이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수사기관·행정청에서 3회 이상 확인했거나, 사고 현장을 훼손하는 등 진상조사와 수사 등을 방해한 사건의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법안소위 잠정안에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삭제돼 있다.

임대·용역·도급 시 제3자 책임과 관련해, 기존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 위반 시 처벌한다'는 내용이 '설비 소유 또는 장소 관리 책임 때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적용 범위가 축소되기도 했다. 이행점검단은 "사고가 다발하는 기계장비 임대계약이나 유통업에서의 장기간 장소임대에 대해서는 도급 규정으로 원청업체의 안전보건의무를 부여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종사자의 범위에 임대, 위탁 등 계약 형식과 상관없이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포함하고, 도급 및 위탁 관계에서의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 귀속에 임대(최소한 장비임대)와 위탁이 포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고 김용균씨의 모친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이날 단식 농성 25일째를 맞았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왼쪽 두 번째)와 부대표단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이날 국회 정문 단식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는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과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짚었다.

광주 조선우드 산재사망 사고 피해자인 고 김재순씨의 아버지 김선양씨는 "기업주와 사업주를 보호하는 법안을 만들지 말라"며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처럼 생색내는 법 제정은 국민과 시민, 노동자의 울분을 키우는 것임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총연합 조순미 대표는 "1995년부터 착한 소비자들을 기만해 수천명의 사망자를 만들고 증거를 인멸했던 대기업들이 법정에서 사람 1명 살인한 것보다 적은 형량을 받고 누리는 시간은 결국 국가가 외면해서 벌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는 "공무원을 처벌 대상에서 빼버리고, 위험의 외주화와 바지사장을 용인한 것은 법 제정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라며 "중대재해 범위를 제한하고, 적용을 유예하자는 것은 '사람이 먼저'라고 주장한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무총리훈령으로 출범한 김용균 특조위는 2019년 8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기업(과 경영책임자)이 이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법 체계를 그대로 두고 기업이 자발적으로 노동현장의 안전을 위해 비용을 들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며 중대재해법 제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오는 5일 3차 회의를 열어 처벌 수위와 법 적용 유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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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하얀 기자] thewhit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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