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폼페이오의 '위대해질 뻔한 모험'

길윤형 2021. 1. 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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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의 알고싶어]정치BAR_길윤형의 알고싶어
폼페이오 고별 페북 게시글로 보는
북-미 3년 협상의 여정
2019년 6월30일 판문점 남쪽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악수를 나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기묘한 브로맨스’를 자랑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폼페이오 장관 페이스북

이제 보름 남짓 후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전 세계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1월20일 취임식과 함께 미국 대통령직에 취임하는 조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훼손됐던 동맹국들과 관계를 재건해 △코로나19 확산 △지구 온난화 등 전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는 물론, 앞으로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미-중 간 ‘패권 갈등’에 대응할 것으로 보입니다. 쇠락해 가는 미국이 이런 복합적 위기를 잘 풀어갈지 회의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트럼프가 몰고 온 혼란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70여년 간 ‘남북 분단’이란 냉전의 잔재 속에서 살아 온 한국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퇴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과 조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의 그 어떤 대통령도 시도하지 않았던 북-미 정상 간 직접 만남을 통한 ‘톱-다운식 접근’을 통해 세번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북한 역시 이에 호응하며 2017년을 끝으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하지 않는 자제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내건 북-미 간 협상은 장기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국인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도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018년 4월 이후 무려 네차례나 북한을 방문하는 등 지난 3년 동안 이어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협상의 최일선에 있었습니다. 이제 1월20일이면 미 행정부의 제2인자라 불리는 국무장관직을 내려 놓는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북핵 협상을 추억하는 11개의 게시물(12개의 사진과 1개의 동영상으로 구성)을 올리며 여러 개의 짧은 말을 남겼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의 ‘고별사’라 할 수 있는 이 게시물을 통해 지난 3년 간 있었던 북-미 핵협상의 추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2018년 3월31일~4월1일 이뤄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1차 방북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는 모습. 폼페이오 장관 페이스북

먼저 이 사진을 보겠습니다. 긴장한 표정의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과 나란히 서 악수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직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신분이던 폼페이오 장관이 2018년 3월31일~4월1일 ‘극비리’에 이뤄진 1차 방북 때 김정은 위원장과 찍은 사진으로 추정됩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사진에 “중앙정보국 국장으로서 나는 김 위원장과 우리의 협상의 문을 열었다”라는 짧은 말을 페이스북에 남기고 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2018년 봄 기적적인 북-미 협상이 시작된 것은 그해 1월 평창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남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때문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인 신년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화답하며 본격적인 남북 대화가 시작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3월5일 김정은 위원장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곧바로 미국을 방문해 3월8일 저녁 백악관 앞뜰에서 역사에 기억될 특별한 기자회견에 나섭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다는 파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이후 미국은 자신들이 직접 김 위원장과 만나 비핵화와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응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폼페이오의 1차 방북을 통해 그 확인이 이뤄집니다. 당시 동석했던 앤드루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2019년 2월 말 스탠퍼드대학 월터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강연에서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나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내 아이들이 평생 핵무기를 짊어지고 살길 원치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 진솔한 발언에 폼페이오 장관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2018년 5월9일 2차 방북 때 북한에 억류 중이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석방시켜 함께 미국에 도착하는 모습. 폼페이오 장관 페이스북

다음엔 이 사진을 볼까요? 폼페이오 장관이 2018년 5월9일 새벽, 2차 방북의 성과로 북에 억류돼 있던 3명의 한국계 미국인인 김동철·김상덕·김학송씨를 데리고 귀국하는 모습입니다. 이들과 포옹하는 폼페이오 장관 주변에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부가 웃음 띤 얼굴로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벽 3시 미 메릴랜드주의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이들을 맞이하며 “내가 얻는 최고의 성취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광경이 미국 전역에 그대로 생중계됐습니다.

북-미 대화에 늘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담당보좌관도 이 일에 대해서만은 “적대적인 언론들도 폄하할 수 없는 확실한 성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폼페이오 장관은 자신의 퇴임을 앞두고 이와 관련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석장이나 올렸고, 이후 세명의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쓰인 시편 126편 3절 말씀을 보내왔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2018년 7월6~7일 이뤄진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때 모습. 폼페이오 장관 페이스북

하지만 북-미 협상은 곧바로 긴 교착에 빠집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공개한 1분13초 길의의 동영상은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2018년 6월12일) 직후 이뤄진 폼페이오 장관의 2018년 7월6~7일 3차 방북 때 북-미가 진행한 협상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줄곧 주장해 왔던 ‘행동 대 행동’ 원칙, 즉 북·미가 서로 신뢰를 쌓아가며 하나하나 비핵화 작업을 진행해 가는 ‘단계적 비핵화’ 해법에 동의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의 유일한 관심은 ‘하루빨리’ 북한을 비핵화 과정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인식의 불일치를 동반한 채 이뤄진 3차 방북은 ‘큰 실패’로 끝났습니다.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핵시설 등의 ‘신고’를 요구하는 폼페이오 장관에게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트럼프에게 전화하라. 트럼프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쳤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떠난 그날 밤 북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나왔다”는 실망감을 쏟아냅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동영상에 “북한과 대화에 도전했다(tackle). 유화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했다 #최대의 압박”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2019년 6월30일 판문점 남쪽 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북-미 회담의 모습. 미국에선 폼페이오 장관, 북한에선 이용호 외무상이 배석했다. 폼페이오 장관 페이스북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접근 역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가져오진 못했습니다. 특히,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폼페이오 장관은 하노이 회담과 관련된 사진은 하나도 올리지 않고, 그보다 넉달 뒤인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미 깜짝 회담’의 사진을 세장 올렸습니다. 남북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에는 “싱가포르와 하노이와 이후 비무장지대(DMZ)에서 이뤄진 역사적 만남.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승리”라는 평가를 남겼고, 그 직후 판문점 남쪽 지역의 평화의집 회의실에서 북-미 정상이 악수하는 사진엔 “북한은 우리의 대화가 시작된 뒤 핵 실험이나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2019년 6월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이뤄진 북-미 정상의 깜짝 만남.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허락을 받고 북한 쪽 지역으로 십여 걸음 발을 내디뎠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영토를 밟은 사상 첫 미국 정상이 됐다. 폼페이오 장관 페이스북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럼프 행정부 대북 정책의 성과를 정리하듯 “현재 북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 실험이 없었다, 핵 실험이 없었다. 정권은 약해졌다. 국경지대의 긴장은 감소했다”는 마지막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현재 북한 정세에 대한 폼페이오 장관의 평가. 그의 설명대로 북한은 2018년 북-미 대화가 시작된 뒤 핵 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의 평가대로 북한은 2018년 이후 핵 실험을 하지 않았고,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가대로 2017년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여러 제재 조처로 북한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에 맞서, 북한은 2020년 1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통해 ‘자력갱생’이라는 새로운 경제 노선을 발표했지만, 코로나19 여파와 지난 여름~가을 수해로 다시 한번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곧 트럼프 행정부는 물러나고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섭니다. 북한은 ‘1월 초순’이라고 시점을 밝힌 제8차 당대회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모종의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이 둘의 판단에 따라 새해 이후 한반도 정세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 전에 잠시 생각해 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은 이전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위대한 성취를 이뤄내진 못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북-미 간 ‘신뢰의 결여’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세 역사가는 트럼프와 폼페이오 콤비의 색다른 모험에 대해 ‘위대할 뻔한 도전’이란 평가를 내릴지 모릅니다. 이제 곧 바이든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그가 트럼프와 다른 ‘위대한 대통령’이 되길 소망합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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