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tory] NC 다이노스 김진성
포기하지 않으면 끝은 없다
2020시즌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 동안 NC 다이노스의 허리를 굳건히 지킨 김진성. 6경기 내내 위기 상황에 등판했지만, 평균자책점 0.00, 3홀드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NC 팬들은 한국시리즈의 숨은 MVP는 단연 김진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시즌 시작 전 잠시 팀을 떠난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시즌 후반 1군 복귀 후 상대 팀 타자들을 압도하는 ‘속죄투’를 던졌다. 이처럼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한 그를 팬들은 뜨거운 격려로 환영했다. 이제는 NC 불펜을 통치하는 ‘황제 폐하’로 거듭난 그를 이번 ‘더그아웃 스토리’에서 만나봤다. 많은 좌절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묵묵하고도 강단 있게 본인의 야구 스토리를 완성해가는 김진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Photo NC 다이노스 Editor 박소정
#2020 한국시리즈의 ‘수호신’
이번 호 ‘더그아웃 스토리’의 주인공은 공룡군단의 ‘믿을맨’ 김진성 선수입니다. <더그아웃 매거진>과의 첫 만남이에요. (12월 4일 인터뷰)
<더그아웃 매거진>이 야구계에서 알아주는 매거진이라 영광스럽고 기분이 좋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엔 어떻게 지내나요?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이틀 정도 푹 쉬었어요. 그다음 날부터 야구장에 나와서 회복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은 전체적으로 어떤 시즌이었나요?
참 파란만장한 시즌이었습니다. 시즌 전 스프링 트레이닝 때 중도귀국이라는 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어요. 팬분들께 실망을 드려 죄송했는데 시즌 후반에 1군에 올라와서 NC가 통합우승을 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해서 다행이었어요.
2020시즌 본인에 대한 평가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다면요?
50점 정도예요. (이유는요?) 캠프 때부터 시즌이 끝날 때까지 쭉 동료들과 함께했다면 점수가 더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 해서요. 만약 쭉 함께했다면 90점을 줬을 텐데 제 실수 때문에 깎였어요.
처음 경험한 한국시리즈 우승의 순간에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우승했을 때 그라운드로 소리를 지르면서 뛰쳐나갔는데 그때 전율을 느꼈어요. 한편으론 ‘두산 베어스 선수들은 이런 느낌을 몇 년 연속으로 느꼈겠구나’ 하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기분이 매우 좋았고 모든 것을 다 가진 느낌이었어요. 로또에 당첨된 적은 없지만, 만약 당첨된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싶었어요. 또, 우승하고 나서 바로 할아버지가 생각났어요.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셨을 텐데 살아계실 때 보셨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우승을 예상했나요?
한국시리즈 경기를 치르면서 질 거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어요. 두산보다 우리 팀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유리해서 우승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한국시리즈 6차전 동안 전 경기에 출전했어요. KBO리그 한국시리즈 역사에서 흔하지 않은 출전 기록이에요.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 전 경기를 나간다는 자체가 저한테는 매우 영광이었고 기뻤어요. 한편으론 우리 불펜투수 중에 저보다 더 잘하는 투수들도 많은데 제가 전 경기에 나가는 게 좀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매번 위기 상황에 등판하게 됐어요. 위기 때 갑자기 등판하면 압박을 받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요?
말씀대로 한국시리즈에서 제가 등판할 때는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항상 마운드에 올라갈 때마다 ‘내가 여기서 잘 던지고 막으면 분위기를 우리 쪽으로 가져올 수 있다. 내가 그렇게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더 집중해서 던졌어요. 이렇게 생각해서 좋은 결과도 있고 안 좋은 결과도 있긴 했지만요.
큰 무대에서의 활약으로 자부심이 많이 생겼을 텐데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자랑도 했나요?
자랑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자랑할 만큼 제가 잘했는지 모르겠고, 또 저 혼자 잘해서 우승한 게 아니라서요. 그래도 축하는 많이 받았어요.
한국시리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경기가 있다면요?
(구)창모가 선발로 나와서 7이닝 무실점을 했던 5차전이요. 제가 등판했을 때가 무사 3루 상황이었어요. 창모의 무실점이 깨질 뻔했는데 제가 다행히도 두산의 후속 타자들을 상대로 아웃 카운트 3개를 모두 잡았어요.
지난 2016시즌에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과 격돌한 적이 있어요. 두 번째 맞대결이라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했나요?
그때는 불펜 투수나 다른 선수들도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경기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도 힘들더라고요. 저도 지쳤는지 몸이 잘 안 따라줬어요. 구속도 많이 안 나오고요. 또, 그때 당시엔 두산이 우위에 있는 팀이라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어요. 그래서 4년 전에는 결과가 안 좋았지만, 올해는 달랐어요. 우리 팀이 정규시즌 우승도 했고, 두산과의 전적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정규시즌에서 우승하고 나서 2주 동안 우리 선수들 모두 체력을 많이 비축해놨기 때문에 이번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고 봤어요. 그런 생각으로 팀 동료들이 뭉치다 보니까 우승까지 갔네요.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한국시리즈가 고척스카이돔에서 중립경기로 진행됐는데요. 홈 이점에 대해 아쉬움은 없었나요?
홈 이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컸죠. 창원에서 많은 NC 팬분과 함께 한국시리즈에 대한 기쁨을 못 나눴기 때문에 그게 가장 아쉬웠어요. 그래도 고척돔 경기가 좋은 점은 추운 날씨에 선수들이 추위에 떨지 않으면서 경기를 한다는 것이에요. 컨디션 조절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2020시즌 동안 주변에서 어떤 도움이 있었나요?
일단 제가 시즌 전 캠프에서 중도귀국을 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어요. 그때 2군 코치진이 신경도 많이 써주시고 심적으로도 많은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때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아서 한 분씩 말씀드리기가 힘들긴 해요.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들이 지연규 코치님이랑 손시헌 코치님이에요. 손시헌 코치님은 NC에서 같이 경기를 뛰었던 형이기 때문에 심적으로 편하고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시헌이 형은 제가 흔들리지 않고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그래서 이번 정규시즌 우승을 하고 나서 2군 구장에 찾아가서 시헌이 형을 비롯한 코치님들과 감독님께 제가 힘들 때 많이 도와주셔서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고 인사드렸어요. 그때 다들 제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줘서 대단하고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도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진성=인간승리
SK 와이번스와 당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서 연달아 방출당한 아픔이 있죠. 두 번의 좌절에도 야구를 놓지 않고 선수 생활에 대한 의지를 보인 이유가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어요. 두 분께 단 한 번이라도 제가 프로 무대에서 제대로 멋지게 던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계속 야구를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기쁨을 더 드리고 싶었어요. 또 그때 당시에 ‘내가 이번 한 번만 더 도전해보면 잘할 수 있겠다. 내 기량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그때 야구를 놓지 않고 계속 도전했던 거죠.
그렇게 힘든 시기에 김진성 선수를 붙잡아 준 사람은 대표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네요.
제가 방출당할 당시에는 인맥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하소연할 곳도, 조언을 얻을 만한 곳도 마땅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할머니, 할아버지께 위로도 받고 더 성장해보자는 원동력도 얻게 됐죠.
NC 창단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당시에 어떤 각오로 임했나요?
정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그때 제 모든 것을 쏟아내자는 각오로 임했어요. 제가 비록 실력이 안 돼서 두 번이나 방출됐지만, 이번 기회에 제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보여줘서 인정받자는 생각이었어요. ‘후회 없이 하자!’ 그런 각오였죠.
어려운 과정을 모두 거치고 NC의 창단 멤버가 됐어요. 지금까지 몸담아 오면서 지켜봐 온 NC는 어떤 팀인가요?
선수를 위한 팀이에요. 소속 선수들을 위해서 어떤 도움을 줄지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아요. 팀을 위해 선수들이 있지만, NC는 반대로 선수들을 위해 팀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해줘요. 팀의 존재만큼 선수들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거죠. 선수들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실제로도 대내외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세요. 모든 야구선수가 NC에 와서 야구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아마 부러워할 거예요.
본인에게 NC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 야구 인생 그 자체예요. 아마 NC가 없었다면 선수 김진성이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고 한국시리즈 우승도 못 했겠죠? 또, NC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김진성이란 이름을 알릴 수 있었어요. NC는 제 인생의 동반자입니다.
현재 NC의 대표 ‘믿을맨’으로 자리 잡은 김진성 선수의 주무기는 포크볼이죠. 주무기를 장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NC 입단 후 최일언 코치님께서 제가 던지는 탑포지션이 다른 투수들보다 높다고 평가해주셨어요. 그래서 높은 타점에서 떨어지는 포크볼을 던지면 좋겠다고 하셔서 배우게 됐어요. 처음에는 어렵고 낯설었어요. 포크볼이 손가락을 벌려서 잡아야 하는 건데 잘 안 벌려졌거든요. 그래서 야구공보다 더 큰 공을 계속 잡고 있으면서 손가락을 벌리기 위한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훈련하고 나서 포크볼을 점점 던지다 보니까 주무기가 됐어요.
NC 입단 후 2012 KBO 퓨처스리그 최다 세이브 기록(20개)을 세우고 1군에 올라와서도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는 좋은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절박함과 간절함밖에 없었어요. 퓨처스리그에서 20세이브를 할 당시에도 다른 분들은 기록 면에서 많이 칭찬해주셨는데 저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했어요. 1군이 아닌 2군이라는 아쉬움이 먼저였어요. 1군에서 기록을 세워야 많은 사람이 알아주고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과연 1군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득했죠. ‘할 수 있다’라기 보다는 ‘될까?’라는 의문이 가득해서 1군 첫해는 실력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계속해서 간절함을 가지고 경기를 했고, 결국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지금도 여유를 부리지 않으려고 해요. 다른 좋은 투수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과거 인터뷰에서 다른 팀 스타 선수들을 피해 다녔다고 했어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죠?
그땐 제가 거의 서른 살에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됐을 때예요. 타 팀 1군 스타급 선수들이 연습하거나 러닝하고 있으면 괜히 돌아오고 그랬어요. 그냥 지나가도 되는데… 자신감도 없고 주눅 들어있었어요. 기싸움에서 눌린 거죠. 그래서 성적도 안 좋았는데 14년도부터 1군에 조금씩 적응하고 성적도 좋아지다 보니까 자신감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나도 1군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피해 다니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운동했어요. 지금은 한국시리즈 우승 투수니까 더 자부심이 생겼어요.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인간승리’를 달성했네요! 지금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후배나 동료 선수들에게 응원과 조언 한마디를 해봅시다.
야구 훈련을 할 때만큼은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간절하게 임해야 좋은 결과가 와요. 본인 기준에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생각보다 ‘야구를 잘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기량을 발전시킬 수 있어요. 시간이나 양만 채우려고 하면 안 되고요. 또, 제가 2군에 있을 때 젊은 선수들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는데 “야구 안 된다”, “힘들다”, “못 하겠다”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그럴 때 제가 한 번씩 물어봤어요. “너 훈련할 때 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해봤냐. 스스로한테 부끄럽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냐”라고 물어보니 한 명도 대답을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하면 분명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해줬습니다. 후배들이 본인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게 훈련해서 자신의 기량을 더욱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요.
#김진성은 아직 전성기다
팬들에게 어떤 선수 또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나요?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제가 힘든 과정을 겪고 현재 선수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만약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를 보고 ‘저 선수도 힘든 과정을 다 이겨내고 좋은 선수로 거듭났는데, 나도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 이렇게 다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의 저도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더 완벽한 선수로 성장한 걸 보여주고 사람들의 희망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나요?
롤모델을 뽑자면… 없는 것 같은데요? 어릴 때는 있었는데 이젠 야구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고참급 선수가 되다 보니까 지금은 롤모델이 없어요. 후배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선배가 되도록 해야죠.
지난 2017년부터 모교인 성남중학교에 야구 물품을 후원하고 있죠. 또 얼마 전엔 마산의료원 의료진들에게 간식을 선물했어요. 선행을 이어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중학생 때 형편이 어려워서 사야 할 야구용품을 못 사고 매번 빌려 쓰거나 얻어쓰고 그랬거든요. 그런 경험이 있어서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에게 큰 도움은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야구용품을 지원하게 됐어요. 중학교 관계자분께는 야구를 잘하는 선수보다 가급적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마산의료원에 간식을 선물하게 된 계기는 이번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의료진이 고생하고 있어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전국의 의료진이 대처를 잘해주시고 헌신해주셔서 KBO리그가 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고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잖아요. 그게 정말 감사해서 작은 선물을 드렸어요.
NC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철권 실력이 상당한 걸 보여줬어요. 원래 게임을 잘하나요?
제가 철권을 잘하는 건 아니고 할 줄은 아는 정도예요.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워낙 철권을 못해서 제가 잘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근데 제가 어릴 때 오락실을 자주 다녔을 정도로 게임을 워낙 좋아하긴 해요. 초등학교 때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이 정말 하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버스비가 150원이었거든요? 근데 100원이면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 한판을 할 수 있어서 버스를 안 타고 열 정거장을 걸어서 게임을 하러 갔어요. 근데 첫판에 바로 죽었어요. 그때 너무 아까워서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나요. (웃음)
2020시즌엔 구창모, 송명기라는 NC의 영건들이 탄생했어요. 후배들의 뒤를 지켜주는 불펜이자 선배로서 그 두 선수를 지켜보니 어땠나요?
창모랑 명기는 선배인 제가 봐도 야구에 대해서는 정말 진지하고 항상 어떻게 하면 야구를 더 잘할지 고민도 많이 하는 보기 드문 선수들이에요. 조언해주려고 해도 두 선수가 워낙 잘해서 할 말이 없어요. 특히 송명기 선수는 2년 차밖에 안 됐는데 볼 때마다 놀라요. ‘저 어린 선수가 어쩜 저렇게 야구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할까?’ 하고요. 어린 선수들은 솔직히 놀고도 싶고 연습도 정해진 시간만 하다가 일찍 퇴근하는 식인데 명기는 절대 안 그래요. 항상 자기 시간표보다 더 하려고 하고 연구도 많이 해요. 오히려 제가 배울 점이 많은 후배예요. 창모도 마찬가지고요. 창모는 이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는데, 명기도 곧 NC의 대표 선발투수로 성장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는 받았나요?
아직 못 받았어요. 그게 제작 기간이 좀 오래 걸린대요. 우승 반지를 받으면 먼저 할아버지 묘소에 가서 인사드리고, 거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보관할 예정이에요.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파티도 제대로 못 했겠네요.
한국시리즈 도중에 코로나19 위험단계가 격상돼서 우승 후에 회식이나 자축파티를 못 하게 했어요. 그래서 경기 끝나고 호텔에서 간단하게 먹고 그게 다였어요. 너무 아쉬웠어요.
어느새 2021년이 다가왔어요. 내년 목표도 세우고 있겠네요?
2021시즌엔 처음부터 끝까지 팀 동료들과 1군에서 함께 시즌을 완주하는 게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 주 4회씩 개인적인 훈련을 하려고 계획했어요. 또, 지금까지 나이가 한 살씩 많아질수록 2kg씩 감량해오고 있어요.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나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체지방을 줄여서 신체 균형을 맞추려고 해요. 그 외에도 여러모로 몸 관리를 더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진성 선수와 오랜 기간 함께해 온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인생입니다. 야구가 아니었으면 이때까지 제가 경험한 다양한 추억들도, 제 이름을 여러 사람에게 알릴 기회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솔직히 인생을 살면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런데 야구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인터뷰를 할 수 있고 또 팬분들에게 사인과 팬서비스를 해줄 수 있어서 정말 뜻깊어요. 더불어 한국시리즈란 큰 무대에서 공을 던지고 결국 우승하는 기회도 생겼죠. 야구는 저와 평생 함께 갈 거예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가족에게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 인사를 해볼까요?
먼저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어요. 이전에 힘들 땐 혼자서 막막하기만 할 때가 있었는데 가족이 생기고 나니까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특히 제 아내가 많은 힘이 돼줘요. 고민도 들어주고. 절 흔들리지 않게 바로 잡아주고 야구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제가 올 시즌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어요. 항상 애들도 잘 키워줘서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2020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해 준 NC 팬들에게 인사하고 인터뷰를 마칠게요!
팬분들이 항상 옆에서 묵묵히 응원과 쓴소리를 해주실 때가 있어요. 다 선수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해주시는 거로 알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초에 제가 팬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려서 그걸 만회하고 응원에 보답하고자 시즌 후반에 기회가 생겼을 때 정말 열심히 던졌습니다. 그때 제게 응원도 보내주시고 우승을 함께 기뻐해 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2021년에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1시즌에도 NC가 우승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할 테니 지금처럼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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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인터뷰는 마치 동네 형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진솔하고 친근감 있었다. 본인의 힘들었던 과거를 극복한 이야기, 한순간의 실수와 이를 만회하기 위해 했던 노력, 야구와 관련된 추억들을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헌신을 약속한 팀에서 거절당하기를 두 번. 보통이라면 선수 생활에 회의를 느껴 멈출 법도 한데 그는 꿋꿋이 일어나 재도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결국 2020년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이라는 야구선수로서의 큰 영광을 경험했다. 앞으로도 김진성의 야구 스토리는 계속될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굳건히 넘어설 것이다.
▲ 더그아웃 매거진 117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17호(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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