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비웃는 베트남·싱가포르·대만의 노하우
그들은 어떻게 지역 감염을 잡았나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이 만 1년째를 맞았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 감염자는 5만6000명을 넘겼다. 특히 최근 들어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나들면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유럽·일본 등 감염자가 많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며 K방역을 치켜세웠다. 그런데 이웃 아시아 국가인 베트남·싱가포르·대만 등에 비하면 우리의 K방역 성적표는 오히려 초라하기만 하다. 그들 나라의 최근 하루 확진자는 20명 안팎이고, 그나마 대부분 해외에서 유입된 경우여서 지역 감염은 거의 없다.
베트남에서는 '선(先)방역 후(後)경제'를 핵심에 둔 V방역 시스템이 주효했다. 싱가포르는 대응 타이밍을 적절하게 맞췄고, 국민 90%를 검사하면서 지역사회 감염을 예방했다. 대만은 신속한 감염원 차단과 방역수칙 위반에 무관용 원칙을 고수했다. 시사저널은 현지 소식통을 연결해 베트남·싱가포르·대만의 방역 노하우와 실태를 집중 점검했다.
베트남, '先방역 後경제' 정책 성공적
공격적인 V방역으로 경제도 안정세
중국과 약 14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은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그 피해를 가장 크게 받을 나라로 꼽혔다. 인구가 1억 명에 육박하는 데다 보건의료가 선진국만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어긋났다. 코로나19 실시간 통계 사이트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지난 12월28일 현재까지 베트남의 누적 감염자는 1441명으로 인구 100만 명당 15명이다. 한국의 누적 확진자가 100만 명당 1109명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사망자도 35명에 불과해 인구 100만 명당 0.4명꼴이다. 12월 들어 하루 신규 확진자는 10명 미만으로 유지되고 있다.
베트남이 이런 성적을 거둔 배경에는 '선방역 후경제' 방침을 핵심에 둔 V방역 시스템이 있다. 지난 1월23일 베트남에서 첫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발생하자 응우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그날 코로나19의 국내 유입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즉각 '범정부(whole of government)'라는 모토를 앞세운 국가운영위원회가 설립됐다. 이 위원회는 선제적인 방역을 시행했다. 지난 2월 중국과의 육로와 항공로를 폐쇄했고, 3월에는 영국·유럽·미국 등 세계 각국의 항공편을 막았다.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베트남인데, 한국인의 입국도 통제했다.
지역사회 감염이 발생하면 그 즉시 봉쇄하는 강수를 뒀다. 지난 2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한 마을에서 4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자마자 3주간 인구 1만1000여 명의 이 마을을 통째로 봉쇄했다. 현지 교민으로 한 무역업체에서 일하는 정의영 실장은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1명이라도 나오면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봉쇄했다. 자칫하면 출근하지 못하게 될까봐 나도 아파트에 살다가 개인주택으로 이사했다"며 현지 소식을 전했다.
감염자와 접촉자는 증상이 있든 없든 전원 격리를 원칙으로 삼았다. 지난 3월2일 유럽에서 돌아온 베트남 여성이 나흘 후 확진 판정을 받자 베트남 정부는 그 여성(F0)을 증상 유무와 상관없이 입원시켰다. 그 여성과 같은 비행기를 탔거나 같은 지역에 살았던 사람 200명을 추적해 격리했다. 접촉자는 밀접접촉자(F1)와 간접접촉자(F2)로 구분해 관리했다. 감염자와 2m 이내에 있었던 사람과 감염자와 30분 이상 접촉한 사람을 F1으로 분류했다. 이들을 검사한 후 양성 반응이 나오면 병원에 입원시켰고, 음성 반응이 나오면 별도 격리시설에 14일간 격리했다. F2도 14일간 집에서 격리하도록 했다.
격리 수칙 어긴 감염자에 12년 징역형 가능
만일 격리 수칙을 어기면 강한 처벌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베트남 현지 교민신문 '아세안데일리뉴스'는 지난 12월3일 "한 감염자가 격리 수칙을 어겼다. 그는 최고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감염자 한 명이 격리 수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베트남 정부는 지난 12월1일부터 오는 1월15일까지 33편의 항공기로 한국·일본·대만 등에 있는 자국민 약 5만 명을 귀국시키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베트남 정부는 사람들이 집에 머무를 것을 권고했고, 필수 기관이 아닌 일반 기업에는 운영 중단을 요청했다. 이런 조치가 일부 도시에서는 3주간 이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제 사정은 다소 악화했다. 정 실장은 "호찌민 한인회는 전체 한인 사업가 중 50~60%가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만큼 교민 경제가 좋지 않다. 교민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하던 한국 기업은 베트남 현지인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반강제적 조치는 베트남이 공산국가이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큰 저항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베트남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침에 따라 국민에게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또 손 씻기 등 개인 방역수칙을 쉽게 실천하도록 관련 동영상을 유튜브 등을 통해 배포했다. 무엇보다 선제적인 국경 봉쇄는 지역사회로 이어지는 집단감염을 예방했고, 감염자와 접촉자를 격리하는 강한 방역은 지역 내 경증 또는 무증상 전파를 차단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그 결과는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수개월째 베트남의 하루 확진자는 20명 안팎으로 유지됐고 그나마 지역사회 감염은 거의 없는 상태다. 국민은 일상생활로 돌아갔고 학교, 대중교통, 국내 항공 등이 정상화됐다. 아세안데일리뉴스가 지난 12월1일 '베트남, 88일 만에 지역사회 코로나 확진자 발생V방역 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할 정도로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감염자 1명만 나와도 큰일이 난 것처럼 긴장한다.
경제도 회복세를 보인다. 영국 컨설팅업체 브랜드 파이낸스가 최근 발표한 국가 브랜드 가치가 높은 상위 100개 국가 중 베트남은 33위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42위였다. 베트남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2019년 대비 29% 상승한 3190억 달러로 집계된 것이다. 정 실장은 "얼마 전까지는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한국 돈으로 1만5000원의 벌금이 부과됐고, 지금도 어떤 건물에 들어갈 때 체온 측정, 손세정제 사용, 마스크 착용 등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사회 감염이 거의 없어 코로나19를 크게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없다. 한국처럼 병상이 부족하다는 소리도 없다.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근처 병원이나 진료소 위치와 전화번호가 잘 표시돼 있어 언제든지 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지역사회 감염 없앴다
적절한 타이밍과 국민 90% 검사 주효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통계에 따르면, 지난 12월28일 기준 싱가포르의 코로나19 누적 감염자는 5만8524명이다. 인구 100만 명당 9965명으로 우리(인구 100만 명당 1125명)보다 8배 이상 많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감염자 대다수가 지난 4~8월에 집중돼 있다. 가장 많은 신규 확진자가 발생한 것은 4월20일 1426명이다. 8월21일(117명) 이후 신규 확진자는 100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12월 들어서는 20명 미만으로 유지되고 있다.
또 신규 확진자 중 지역사회 감염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특징이다. 지난 12월21일 신규 확진자 10명 중 지역 감염자는 1명에 불과했고, 12월22일 29명의 신규 확진자 가운데 지역사회 감염자는 0명으로 집계됐다.
싱가포르가 지역사회 감염이 없는 국가가 된 이유는 타이밍이다.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역이지만 시기를 잘 맞춰 효과를 배가시켰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지난 4월부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일부 전문가는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예방에 효과적인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공공장소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11월13일부터 시행했다.
사실 싱가포르는 초기 방역에 실패한 국가라는 낙인이 찍혔다. 지난 음력 설날(1월26일)을 즈음해 싱가포르에서 첫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고, 3월 중순까지 지역사회 감염자는 10명 내외로 유지됐다. 이때까지 싱가포르 정부는 국경을 폐쇄하거나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같은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지난 3월 중순 감염자가 급증했다. 싱가포르에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등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 노동자가 약 30만 명 있는데 이들이 생활하는 숙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4월20일 가장 많은 1426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머뭇거리지 않고 방역 단계를 가장 강한 수준으로 높였다.
현지 교민 한석호씨는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4월7일 서킷 브레이커라는 이름으로 국경 통제 및 이동 제한을 시작했다. 사실상 락다운(봉쇄)으로 생필품 구입 외에 이동은 불허했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다. 이는 한국의 2.5단계나 3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로 보인다. 또 약 3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 전원에 대한 검사를 시작했다. 양성 판정이 나면 격리시설로 옮겨 관리했고 음성이면 기존 숙소에서 이동하지 말고 머무르도록 했다. 이렇게 이주 노동자들을 적절히 관리해 지역사회 감염을 크게 줄어들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검사가 완료된 6월말까지 락다운은 지속됐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타이밍과 관련이 있다. 지난 3~4월 코로나19 환자가 자국에서 급증하자 싱가포르 정부는 백신 확보에 박차를 가했다. 10억 싱가포르달러(약 8180억원)를 배정해 가능성이 큰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물론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중국 시노팜 백신까지 선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지난 12월21일 화이자 백신을 손에 넣었고, 12월30일부터 접종을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동남아 국가로는 최초 접종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싱가포르는 2021년 3분기까지 자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다.
싱가포르에 지역 감염이 거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광범위한 검사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6월말부터 12월27일까지 원하는 모든 국민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마다 검사소를 마련했다. 또 산업시설이나 건설현장 관련 종사자에게 2주마다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했다. 12월28일 기준 인구 587만 명의 약 90%에 달하는 523만 명이 코로나19 검사를 마쳤다.
감염자의 사망률 0.05%로 최저 수준
싱가포르가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사망자 비율이다. 5만8000여 명의 감염자 중 사망자는 29명이다. 지난 11월28일 사망자 1명이 나온 후 1개월 이상 사망자가 없다. 또 3월21일 2명의 첫 사망자가 나온 후 지금까지 하루 최다 사망자 수는 2명에 불과하다. 약 5만8000명의 감염자 가운데 사망자는 29명으로 사망률은 0.05%다. 세계 사망률이 3%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의료진은 위·중증 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했다. 즉 45세 이상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감염자는 건강해 보여도 병원 치료를 받도록 했다. 병원 외에도 전시장과 임시시설을 마련해 경증 또는 무증상 환자를 수용했다. 지난 12월28일 기준,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는 42명이고 임시시설에 있는 사람은 490명이다. 집중치료를 받아야 할 위·중증 환자는 없다. 한씨는 "사망률이 낮은 것은 주요 감염자였던 이주 노동자들이 대부분 젊고 건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또 해외 유입이 아닌 싱가포르 지역사회 감염인 경우 치료비와 입원비를 국가가 부담하므로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격리 치료 중인 환자는 현재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싱가포르의 하루 확진자는 20명 미만이고 대부분 해외에서 유입된 경우다. 지역사회 감염이 거의 없으므로 지난 9월부터는 대규모 집단감염 없이 안정세를 보인다. 싱가포르 국민도 정부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한씨는 "3~4월의 이주 노동자 집단감염이 급속히 줄어들었고 지역사회 감염자가 1명도 없는 날이 12월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현재 신규 확진자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경우이므로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12월28일부터 한 단계 하향된 3단계 방역을 하고 있다. 사모임 인원이 5명에서 8명까지 늘어났고 종교행사도 100명에서 250명까지 허용했다. 초기 관리에 실패한 부분이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싱가포르 정부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지금은 어느 나라보다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염자와 1m 이내로 접촉하면 경고해 주는 앱(trace together) 사용을 정부가 국민에게 권장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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