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영의 뼈 때리는 언니] 첫 출근 당신께 "괜찮아, 숨 쉬어"

안은영 작가 2021. 1. 4.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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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 못할 인간유형 중 최고는 '아침형 인간'이었지.

어처구니없었지, 웃긴 말도 잘하고 잘난 척도 잘하고 티 안내고 슬픔을 참는 법까지도 알고 있는 천하무적 겉똑똑이인 내가 벌건 대낮에 숨을 못 쉬겠는 게.

있잖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숨을 연결하고 있노라면 골반이 우두둑 지 갈 길을 찾고 녹슨 철문 같던 어깨도 조금씩 열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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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축년(辛丑年) 첫 날인 1일 서울 영등포구 선유교에서 시민들이 일출을 보고 있다. 이날 해맞이 명소인 선유교는 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 0시~08시 까지 통제 됐다. 2021.1.1/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안은영 작가 = 납득 못할 인간유형 중 최고는 '아침형 인간'이었지. 먼 옛날 수험생 시절부터 오전 7시 내 이불 속은 망상의 도가니였어. 창밖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와중에 오늘은 부디 일요일이기는커녕 결과는 늦잠꾸러기의 흔한 아침 풍경이었고…. 그런 내가 새벽의 정취를 알아버렸어. 내 안의 천재지변이랄까.

처음 잠결에 눈을 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더라.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어둠에 눈을 익혔지. 책을 집어들었다가 내려놓고 거실로 나가, 매트를 깔고 가부좌로 앉았어. 앉은 김에 눈을 감았어. 그때만 해도 잠이 오면 자러 들어가야지, 했거든. 그런데 웬걸. 솟아있던 어깨를 내리고 박동하는 눈꺼풀을 진정시키고 합죽하게 쳐진 입매를 당기면서 흡…, 후…. 하고 내가 호흡이란 걸 하고 있더라고.

십 수 년 동안 하다 말다를 반복해왔지만 운동이 아닌 수련 개념으로 요가원을 찾은 건 지난해가 처음이야. 우습게 들리겠지만 숨 쉬는 법을 '프로페셔널하게' 익히고 싶었어. 지난해 여름,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심장이 배터리가 고장 난 인형처럼 드르르르 떨리는 거야.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하듯 맹렬했지. 바득바득 움켜쥐고 쳐댔지만 소용없었어. 빨리 출발하라는 채근이 뒤에서 빵빵 꽂히던 수십 초 동안 나를 휘감은 감정은 공포도 불안도 아닌 무력감이었어.

어처구니없었지, 웃긴 말도 잘하고 잘난 척도 잘하고 티 안내고 슬픔을 참는 법까지도 알고 있는 천하무적 겉똑똑이인 내가 벌건 대낮에 숨을 못 쉬겠는 게.

마음엔 욕심이 많고 몸통엔 단점이 많아서 하루하루 나의 수련은 진창의 연속이야. 그뿐이니. 고요한 수련은 간데없지. 안 되는 동작을 할 때마다 빳빳하고 괴로운 얼굴로 안간힘을 쓰고 있어. 무릎을 모은 채 엎드려 허리와 팔을 비틀 때마다 참으려 해도 끼야아 돌고래 소리가 새어나와. 욕 안하길 다행이지.

그럴 때마다 긴장한 얼굴을 풀고 어깨를 내리면서 되뇌는 주문이 있어. '괜찮아. 숨 쉬어.'

들이마시고 내쉬는 과정을 공포도 무력감도 없이 연결하는 것이 내가 정한 아침 수련의 목표야. 삶은 찰나와 찰나의 연결이고 우리의 시간은 충돌하고 깨지면서도 영속해. 지난해와 올해가 초침 하나로 연결되듯 나의 들숨과 날숨도 티끌 같은 한숨으로 이어지지.

이효리가 되고 싶은 건 아냐. 그니는 요가도 잘하고 춤도 잘 추지만 난 둘 다 젬병이거든. 내 요가는 사실 몸개그에 가까울 정도야. 그저 새벽에 일어나서 한 시간씩 온전히 나를 위해 뭔가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해. 무엇보다 숨을 잘 쉬게 됐어. 있잖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숨을 연결하고 있노라면 골반이 우두둑 지 갈 길을 찾고 녹슨 철문 같던 어깨도 조금씩 열리더라.

어제보다 희망의 증거가 옅어졌어도 아침보다 터널의 그림자가 길어졌어도 순간과 순간의 연결성을 우리는 놓지 말아야 해. 나를 갉아먹는 주변의 공기를 냠냠 먹어치우듯 크게 들이마시는 것이 시작이야. 무르팍이며 발꼬락에 멍투성이인 채로 숨 쉬는 연습 중에 먹먹한 새해 인사를 이렇게 드린다. / 안은영 작가. 기자에서 전업작가로 전향해 여기저기 뼈때리며 다니는 프로훈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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