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포스트 팬데믹]② '딥러닝 대부' 요슈아 벤지오 "깊고 좁게 알면 AI에 먹힌다"
"아이들을 한 가지 업무에만 익숙한 좁은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려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어떤 업무라도 앞으로 20년 안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광범위한 분야의 보편적인 능력과, 과학·인문학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갖추도록 독려해야 한다."
2016년 3월 9일, 전세계를 경악시킨 사건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일어났다. 당시 바둑계 최고수 중 한 명이었던 이세돌 9단이 구글이 인수한 영국 인공지능(AI) 기업 딥마인드의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패한 것. ‘딥러닝’ 기반 AI의 상상을 초월한 학습능력에 놀란 전문가들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여러 데이터를 이용해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기반 기계 학습 기술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AI 상용화로 인류의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고,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에는 컴퓨터가 인간 지능의 총합을 넘어서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 발달로 인한 일자리 파괴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AI 시대의 변화는 생산공정 등 반복적인 기능직은 물론 ‘화이트칼라’ 전문직까지 대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전의 변화와 구분된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딥러닝’으로 인간의 ‘사고 영역’을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기에 가능한 변화다.
‘알파고 쇼크' 발생 4년 후인 지난해 3월 13일, 인류는 또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면서 고용과 교육 등 일상생활 전반에 큰 충격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AI의 충격파의 위력을 배가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지만, ‘딥러닝의 아버지' 요슈아 벤지오(57)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AI 덕분에 팬데믹 대응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는 것.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캐나다 퀘벡에서 자란 벤지오 교수는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얀 르쿤 미국 뉴욕대 교수와 함께 딥러닝 연구의 ‘3대 대부’로 불린다. 캐나다 명문 맥길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에는 딥러닝 연구의 업적을 인정받아 힌튼, 르쿤과 함께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Turing Award)’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벤지오 교수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세계적 딥러닝 전문 연구기관 밀라 연구소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밀라 연구소는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스탠포드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삼성전자 전 세계 유수의 기업·교육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벤지오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AI 확산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확대시켰다고 봐야 할까.
"오히려 그 반대다. AI 기술의 발전은 팬데믹 대응에 힘을 실어줬다. 정책 결정권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포함해 모두가 AI의 능력과 잠재력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집단지성을 통해 모두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관련 기술을 선용(善用)할 수 있다."
AI 기술이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여줬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코로나19 확산 상황과 주요 증상을 모니터링해 알리는데 널리 사용되는 AI 챗봇이 대표적인 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식량의 안정적인 수급이 중요하기 때문에 농산물 작황 모니터링도 AI 기술의 중요한 접목 분야다. 빅데이터 기반 AI 기술 접목으로 단기간에 방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된 것도 코로나19 관련 연구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알파고 쇼크’ 이후 AI 기술을 얼마나 더 발전했나.
"AI 기술도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2~3년 간을 놓고 봐도 그렇다. 지난해 초 구글의 AI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코로나19를 일으키는 SARS-CoV-2 바이러스의 단백질의 3D(3차원) 구조를 예측한 것은 주목할만한 쾌거다. 이를 활용해 신약 개발 속도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딥마인드는 지난해 3월 SARS-CoV-2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한 이미지를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딥마인드는 이 과정에 단백질의 3D 구조를 예측하는 AI 프로그램인 ‘알파폴드’를 사용했고,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 등 주요 생물학, 화학 연구진과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인간의 창의력을 위협할 날도 올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는 이미 ‘창의적인 AI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탄생한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s·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은 새로운 이미지나 소리를 상상해 나름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 작업에 활용하는 예술가도 늘었다. 보다 효율적인 분자구조를 창조해 신약이나 신물질 개발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AI 창조력은 아직 인간에 비해 크게 뒤쳐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될수록 AI의 창조력은 더 쓸모있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차세대 딥러닝 AI 알고리즘으로 주목받는 GANs는 2014년 몬트리올대 박사과정에서 벤지오 교수의 지도를 받은 이언 굿펠로우의 작품이다. AI에게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동시에 제공한 뒤 이 둘을 경쟁시키며 끊임없이 스스로 개선해나가는 식으로 AI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굿펠로우는 2019년 구글에서 애플로 이적해 AI 관련 프로젝트 그룹을 총괄하고 있다.
일자리 파괴는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AI가 고용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변화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기술 변화는 항상 직업과 고용에 영향을 줬다. 문제는 AI 기술 발전의 속도가 앞선 산업혁명들과도 비교가 안될 만큼 빠르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국 정부가 나서서 기본소득 도입 등 사회안전망을 정비하고 교육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큰 사회적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 개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
"사안에 따라 지방정부, 중앙정부, 또는 국제사회 차원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AI) 기술의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면서 이를 잘 활용할 경우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을 제대로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AI 기술 발전이 소득 격차 확대에 일조한다는 것도 문제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기득권을 강화하는 건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타 기술 변화에 비해 AI 분야는 변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른 반면 정부의 대응은 너무 더디다.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해 규제와 인센티브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라면 ‘살상용 AI 로봇' 도입 같은 사안을 말하는 건가.
"모두를 날려버릴 AI 자율살상무기(lethal autonomous weapons)를 스스로 도입할 만큼 인류가 어리석진 않길 바란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 조약의 틀은 이미 마련됐지만, 몇몇 강대국(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들의 반대로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기술개발이 가져올 수 있는 경제 이익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윤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무책임한 기술개발로 반과학 운동(anti-science movement)이 확산되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킬러 로봇’으로도 불리는 ‘AI 자율살상무기’는 ‘인간의 개입 없이 공격하는 무기’를 뜻한다. 킬러 로봇의 범위를 휴머노이드(인간을 닮은 로봇)로 한정하면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느리고 무겁고 비싼 데다 적의 감시망에 포착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를 접목한 ‘살상용 기계’로 범위를 넓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름이 3cm도 채 안 되는 초소형 드론(무인항공기)도 인명 살상용 무기로 둔갑시킬 수 있는 기술이 이미 개발됐기 때문이다. 트럭 한 대에 이런 드론을 300만대 정도 실어 나를 수 있기 때문에 실전에 투입되면 핵무기 이상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
학교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아이들을 한 가지 업무에만 익숙한 좁은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어선 안 된다. 어떤 업무라도 앞으로 20년 안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광범위한 분야의 보편적인 능력과, 과학·인문학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갖추도록 독려해야 한다. 자율적인 학습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성인들의 재교육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평생 배운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 ‘평생교육’이란 게 새로울 건 없지만, 성인들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 방식과 비용 등 모든 면에서 달라져야 한다."
AI 시대에 ‘좁은 분야의 전문가’를 지향해선 안 된다는 벤지오 교수의 주장은 AI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의 AI는 ‘최적화 도구’다. 특정 업무를 잘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영역의 업무를 동시에 잘하도록 가르치기는 어렵다. 알파고가 ‘인간 최고수'를 꺾은 바둑의 경우 수가 무궁무진해 보이지만 두 명이 맞서 번갈아 가며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수를 둔다. 둘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해져 있고, 양쪽 모두 한눈에 바둑판 전체를 들여다보며 경기하기 때문에 ‘좁고 깊다'는 것이 AI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AI에 특화된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보나. 어떻게 운영하는 게 좋을까.
"AI 기술 발전이 가져올 기회를 보다 많은 이들이 충실히 누리도록 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AI 연구의 세계 중심으로 떠오른 캐나다의 모델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캐나다는 2017년 전국 단위의 AI 연구 전략을 수립하면서 토론토와 몬트리올, 에드먼튼 3개 도시에 각각 AI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들 거점에 AI 분야의 전 세계 인재들과 투자금이 모여들면서 AI 분야에서 캐나다의 위상은 급상승했다."
캐나다 정부는 수년 전부터 자국에서 AI 관련 연구를 하는 기업·연구소에 투자 비용의 15%를 세액공제 해주는 등 AI 거점 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AI 연구의 3대 구루' 힌튼과 벤지오, 르쿤이 모두 캐나다 출신이거나 캐나다에서 주요 연구를 진행(프랑스 국적의 르쿤은 힌튼의 토론토대 박사과정 제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AI의 한계가 있다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은 인간이 최첨단 AI 시스템에 앞선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북미에서 처럼) 평생 도로 오른쪽에서 차를 몰던 사람이 왼편에서 운전하는 나라(일본과 영국 등)에 가도 빠르게 적응을 한다. 반면 AI 시스템이 이같은 변화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분량의 데이터를 새롭게 학습해야 한다. 인간은 행동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앞서 언급한 운전자의 경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예전 습관대로 운전을 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의 한계 극복을 위한 실마리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뭔가에 집중해 행동을 변화시킬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이 부분에 관한 연구는 인간의 일상 언어를 AI가 더 잘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뭔가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행위는 언어 구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뭔가 말로 표현하려면 먼저 그 대상을 의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21 포스트 팬데믹]① 버탈란 메스코 박사 "韓, 원격의료 도입 기반 마련해야"
- [단독] 두산베어스, ‘30년 파트너’ 휠라코리아 떠나 아디다스 손잡는다
- [1% 저성장 시대 新유통]② 츠타야가 공유오피스 만든 이유는... '로컬 포맷' 점포가 뜬다
- 상승기류 탄 변압기… 수출액·수출량·단가 성장 ‘파죽지세’
- AI 별들의 대전 ‘CES 2025’ 휩쓴 韓 ‘최고혁신상’ 제품은
- ‘갤럭시S25’ 출시 앞두고 ‘갤럭시S24’ 재고떨이… 온·오프라인 성지서 ‘차비폰’
- ‘분당만 오를 줄 알았는데’ 1억 뛴 1기 신도시 집값… “실거래 지켜봐야”
- 美트럼프 만나자마자 中알리와 동맹 선언… 정용진 ‘승부수’ 던진 배경은
- “최상목 권한대행에게 흉기 휘두르겠다”… 경찰 수사 나서
- [단독] 韓, AI 인재 유출국 됐다… 日은 순유입국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