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바이든 취임 전 '말걸기'..북-미 훈풍 가늠자
3월 한미훈련 여부가 시험대
북-중 교역마저 끊겨 '민생고'
'선남후미' 남쪽 손 잡을 수도
‘김정은 집권 2기’의 청사진을 제시할 조선노동당 8차 대회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1월20일)보다 앞서 열린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당대회에서 국내·대남·대외 정책을 포함한 “새 투쟁 단계의 전략적 과업”을 밝히는 ‘사업총화 보고’를 한다. 김 위원장은 바이든 당선자보다 먼저 말을 하기로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사에 응답할 ‘무대’도 미리 마련해뒀다. “1월 하순” 소집이 예고된 최고인민회의 14기 4차 회의가 그것이다. 이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할지 말지는 김 위원장 마음이다.
북쪽은 미국 대선 시기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 공식 발표 이후에도 말을 아꼈다. 이런 긴 침묵은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의 당대회 연설에 대한 주목도를 끌어올렸다.
핵심 관심사인 김 위원장의 첫 대미 발언은 “미국이 ~하면, ~하겠다”는 조건절 형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북한 읽기에 밝은 여러 고위 인사들은 내다봤다. 김 위원장의 친동생이자 최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일찍이 “미국과는 당장 마주앉을 필요가 없으며 미국의 중대한 태도 변화를 먼저 보고 결심해도 될 문제”(2020년 7월10일 담화)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양면 대미 전략”을 추진하리라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전망했다.
2021년을 맞는 김 위원장은 마음이 아주 바쁜 처지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경제’ 탓이다. 미국·유엔의 고강도 장기 제재에 맞서 ‘농업(주타격 전방)’을 앞세운 ‘경제(기본전선)’ 중심 “정면돌파전”으로 ‘제재 내구력’을 과시하려던 김 위원장의 전략 방침(2019년 12월28~31일 노동당 중앙위 7기 5차 전원회의)이 2020년 예기치 않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과 여름철 홍수 피해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특히, 아직도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코로나19가 치명타다. 2020년 1월 말 이후 장기 국경 폐쇄로 북-중 무역이 ‘0’으로 수렴되며 곤두박질치고 있다. 대외무역의 98%에 이르러 ‘북한 경제의 외부 생명선’이라 불리는 북-중 무역이 사실상 끊긴 셈이다. 고강도 제재에도 안정세를 유지하던 쌀값과 환율의 변동 폭이 2020년 여름 이후 커지고 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12년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 경제의 3대 성장축’ 구실을 해온 “시장화 진전~북-중 무역 확대~국영 제조업 부분 회복”의 선순환 구조가 코로나19·제재·수해의 ‘3중고’ 탓에 “작동 불능”이라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이런 사정 탓에 “2020년 북한 경제의 후퇴 정도가 1990년 이후 (고난의 행군기를 포함해) 가장 큰 폭의 성장 후퇴를 기록한 1992년(-7.1%)에 근접하거나 추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김 위원장은 당대회 소집 결정서에서 “경제의 장성(성장·발전)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를 거론하며 ‘경제 후퇴’를 시인하고는 “당 8차 대회에서 새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2020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돌 경축 열병식 연설에선 “혁명 무력이 있기에 어떤 침략세력도 우리를 넘볼 수 없다. 이제 남은 건 인민이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며 “부흥번영의 이상사회를 최대로 앞당겨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부흥번영”은 경제의 비약적 성장·발전이 없이는 헛된 꿈이다. 이를 위해선 2018년 9월29일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밝혔듯 “평화적 환경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이 2021년 한·미 양국과 군사적 대치보다 외교·협상을 선호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관측이 많은 배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3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연습의 강행·취소 여부는 2021년 상반기 한반도 정세의 가늠자로 꼽힌다. 한·미 군사연습 중단은 북쪽이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교환 품목으로 강조해온 “쌍중단”의 양대 축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초 전향적인 대북 신호를 발신하고, 한·미가 군사훈련을 취소하거나 대폭 축소한다면 김 위원장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수렁에 빠진 한반도 평화 과정이 재가동될 수 있다. 더불어 코로나19가 진정돼 도쿄 여름올림픽이 열린다면,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때처럼 ‘올림픽 정상외교’가 힘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가 내정에 골몰하느라 북한에 냉담한 태도로 일관하고 한·미 군사훈련도 강행된다면, 김 위원장이 군사적 위력 시위로 판을 흔들며 정책 우선순위를 끌어올리려 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이 국경 폐쇄를 푸는 데 필요한 코로나19 백신·치료제 등 보건협력, 경제위기 완화 따위를 염두에 두고 남쪽과 먼저 손을 잡는 ‘선남 후미’ 접근을 시도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5년차를 맞지만,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당이라 대북정책의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은 김 위원장한테 매력적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에서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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