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외치며 탄소중립 불가능..경제체제를 바꿀 때다

한겨레 2021. 1. 4.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1, 새해 연속기고 : 11개의 질문][새해 연속기고/2021, 11개의 질문] ②지구의 역습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21세기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 지구 평균기온이 생물종 중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산업화 이후로 뿜어댄 온실가스 때문에 1℃가 올랐다. 1750년 공기 분자 100만개 중에서 278개 정도였던 이산화탄소는 지난해 413개로 늘어났다. 오늘 하루도 77억 인간의 치열한 경제활동은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보태고 있다. 지구의 생태적 한계와 인간의 경제활동 사이에 살얼음판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기후위기는 야생 생태계에 더 가혹하다. 지난해 호주 산불로 야생동물 30억마리가 죽고 코알라가 멸종위기에 놓였다. 남극 라르센C(라르센A~G 빙붕 중 가장 큰) 빙붕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이 펭귄과 물개 서식지 사우스조지아섬과 충돌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 산호초가 해수온도 상승으로 인한 백화현상으로 전멸위기에 있다.

야생이 무너지는데, 인간이라고 안전할 리 없다. 2019년 2천건의 재난으로 2490만명이 고향을 떠나 이주해야 했는데, 대부분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이고, 원인은 태풍과 홍수였다. 지난해엔 중국에서만 폭우로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6천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우리도 54일간의 최장 장마를 경험했다. 기후재난은 실로 ‘역대급’으로 전개되고 있다.

1972년 로마클럽이 발간한 <성장의 한계>는 유한한 지구에서 인구 증가, 산업화, 환경오염, 식량 감소, 자원 고갈이 지속되면 100년 안에 성장이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자본주의 경제는 지구의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하고 있다. 화석연료의 연소, 숲의 파괴와 물고기 남획, 유해 화학물질, 플라스틱과 쓰레기가 지구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도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빈번해져 발생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구 생태의 한계와 성장의 한계는 기후위기로 가시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구 생태용량의 한계를 수치로 제시했다. 지구 평균기온이 1.5℃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려면 온실가스 총량은 4200억t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싱크탱크 엠시시(MCC)가 제공하는 1.5℃를 향한 탄소시계는 2021년 1월 기준 1.5℃ 상승까지 7년이 남았음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속도대로 7년이 지나면 1.5°C에 도달하는 온실가스 4200억t이 모두 배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안정시키려면 2030년에는 지금 배출량의 절반을 줄이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Net Zero)을 실현해야 한다. 현재 화석에너지는 전세계 에너지 사용량의 84%를 차지하고 있다. 화석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지구를 만들면서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그린 딜’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2050년 탄소중립 추진전략도 탄소중립, 경제성장,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인지했지만 그 원인과 해법은 회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황에서 석탄발전소나 공항을 새로 짓고 ‘무착륙 해외여행’을 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기존 경제 시스템의 관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숙제다. 기후위기 대응은 화석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에너지 전환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각 국가와 지구 전체의 자원배분 방식과 경제체제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빈곤국의 채무를 탕감하자는 ‘주빌리 2000 운동’을 이끌었던 영국의 경제학자 앤 페티포는 “사회와 지구의 편익을 위해 금융과 경제가 작동하도록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이 쓰여야 하는데, 현재의 금융과 경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해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시작된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기업과 이윤 중심의 세계를, 평등하고 지역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바꾸자던 사회운동은 대안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사그라지고 말았다. 지금이야말로 대안경제 모델이 필요한 때다. 2050년 탄소중립 지구를 만들려면 지금의 경제와 무역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활동의 목적과 주체, 공간을 재구성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자원 배분 방식을 바꿔 인간 생존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면서 한계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원을 꼭 필요한 생산과 소비에 사용하고, 먹거리와 에너지를 지역 단위로 생산하는 사회, 상품과 인간의 이동이 줄어드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지역공동체의 자율과 자치에 기반한 재지역화(Relocalization)나, 지역을 기반으로 필수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며 지역사회 회복력을 높이는 일이 중요해질 것이다.

코로나19 충격으로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아파트값은 뛰고 주식시장은 활황인데, 실직자와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한다. 사회의 가장 어렵고 힘든 이들을 중심에 두고 분배 정책을 재설계하고, 사회안전망을 단단히 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여나가야 한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위기가 겹치니 풀어야 할 문제도 복잡해졌다. 우리나라의 2018~19년 온실가스 감축 이행실적을 보면 파리협정으로 약속한 감축 목표보다 3.5%를 더 배출했다. 정부는 지금의 약한 감축의무량도 못 지키는 상황에서 올해 2030년 감축 목표를 강화하고 2050년 탄소중립 로드맵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1990년 대비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배 넘게 증가해 7억t을 넘어섰는데, 30년 안에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럽연합이 60년 걸려서 하는 일을 우리는 30년 만에 해내야 한다.

1년 전 2020년이 밝았을 때 우리는 코로나19와 경제난, 기후위기를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지구의 한계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 사회는 어떤 사회일지, 어떤 사회여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린 뉴딜’을 발표했지만 아직 ‘그린’이 무엇인지 ‘새로운 합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과 합의가 진행된 적이 없다. 2050년은 온실가스 순증 제로 사회여야 하지만, 동시에 살 만한 사회여야 한다. 탄소중립 사회로 어떻게 갈지 그리고 아무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을지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기업과 산업 중심으로만 방향을 잡아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정부 부처가 주도해서 초안을 작성하고, 자료는 대외비로 하고, 마지막에 공청회를 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안 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탈탄소사회를 향한 소통과 토론을 위한 플랫폼부터 마련해야 한다. ‘생존가능한 미래’, ‘살 만한 미래’를 같이 설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하는 사회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합의가 있어야 2050년 탄소중립 로드맵도 실행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정부만 믿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급성에 공감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 세력을 형성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경제도 사회도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처한 현실의 절박함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만큼 행동을 위한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