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가구1주택과 경자유전, 무엇이 위헌인가 / 오수창

한겨레 2021. 1.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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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수창 ㅣ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지금부터 약 350년 전, 전라도 부안에 살던 유형원은 <반계수록>을 지어 나라를 근본적으로 다시 조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첫머리가 토지의 세습은 물론 사유제 자체를 철폐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는 토지가 소수 부자에게 집중되고 가난한 사람은 송곳 꽂을 자리도 없어서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필요한 사람에게 국가가 토지를 분배하는 공전제를 실시하자고 했다. 유형원의 공전제는 지배층의 대규모 토지 소유를 허물어버리는 현실적 파괴력뿐 아니라 그 논리도 논란의 소지가 컸다. 토지 사유제 또한 유구한 역사와 중요한 의의를 지닌 사회 운영의 기초 원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형원은 반역죄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인물의 아들이며, 과거에 거듭 낙방하여 말단 관직 하나 가져본 적 없는 민간의 일개 선비였다.

그런데도 유생에서 고위 관리까지 여러 인사가 유형원의 개혁안을 시행하자고 거듭 건의했다. 국왕과 신하들은 국정을 이끄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반계수록>을 검토하고 논의했으며, 13책이나 되는 분량을 국가에서 간행해 널리 배포했다. 오늘날 시민들은 조선이 왜 망했는지 끊임없이 물으며 당시 통치자들이 체제 개혁에 소홀했다는 사실에서 답을 찾곤 한다. 그런 조선 후기에도 국가 체제를 허물어 다시 세우자는 무명 선비의 제안을 놓고 그 정도 고민은 했다.

지금은 21세기, 국회에서 1가구 1주택의 원칙을 천명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유형원이 토지 사유를 막자고 한 것과 달리, 헌법이 명시한 모든 국민의 쾌적한 주거생활을 구현하기 위해 주택 정책의 큰 원칙이자 기준을 밝히는 법률안이다. 발의자는 유형원처럼 숨은 선비가 아닌 국민의 대표다. 그런데도 당장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위헌적 발상’이라거나 ‘공산국가 말고는 이런 나라 없다’ ‘이젠 대놓고 사회주의냐’ 하는 표제들이 뉴스 화면을 뒤덮었다. 발의한 의원이 속한 여당은 그 큰 덩치가 무색하게 화들짝 놀라 앞으로 소속 의원은 법안 발의에 앞서 지도부와 협의를 강화하라고 했다. 이대로는 그 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도 못 할 듯하다.

우리 헌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하고 농지의 소작제도를 금지한다. 일찍이 제헌 헌법에서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고 선언한 이후, 농사짓는 사람만이 논과 밭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이 헌법에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유형원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긴 세월 경제 정의를 위해 고민하고 싸워온 끝에 도달한 우리 사회의 합의다. 농민이 논밭을 가져야 하듯이,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람에겐 집이 필요하고 집 지을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집은 직접 들어가 살 사람이 소유하라는 원칙이 사회주의이고 공산주의라면, 농사짓는 사람만 논밭을 가지라는 헌법이 사회주의이고 공산주의이다. 1가구 1주택의 원칙이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위헌이라면, 논밭은 농사짓는 사람만 가지라는 대한민국 헌법이 위헌이다.

유형원이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한쪽에서는 제 한 몸 누일 공간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이 넘쳐나고 다른 쪽에서는 들어가 살지도 않을 집을 차지하여 재산을 불려가는 현실을 한탄하면서 주택의 세습과 매매, 사유를 철폐할 개혁안을 내놓을 것이다. 의미가 큰 토지 사유도 부정했으니 집 문제 앞에서는 고민조차 없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정신은 주택과 땅으로 돈을 버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년 전 <반계수록>의 개혁안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온건한 원칙의 천명을, 왕조시대만큼이라도 고민하기는커녕 체제 부정이라고 험한 말로 찍어 누르는 우리 시대를 미래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1가구 1주택의 원칙을 천명하자는 쪽이 위헌인가, 걸핏하면 무시무시한 빨간딱지 위헌딱지를 들이대는 쪽이 위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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