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미술계] 윤석남·정상화·삼성미술관..대가는 위기에 나선다
거장 정상화·박수근 대규모 회고전도 계획
학고재, 여성주의미술 대모 윤석남 개인전
갤러리현대, 이강소·이건영 등 연이어 선봬
3월 '삼성미술관 리움' 재개관도 이목 쏠려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예상은 했다. 하지만 충격은 크다. 성적표라는 게 그렇다. 손에 쥐기 전까지는 쥐꼬리만 한 기대라도 얹어두는 법이니까. 세밑을 얼린 ‘2020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연말결산’ 얘기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아트프라이스와 함께 지난해 온·오프라인 미술품 경매 낙찰액을 합산한 결과로 1153억원을 발표했다. 서울옥션·케이옥션·마이아트옥션·아트데이옥션 등 국내 경매사 8곳의 매출을 탈탈 털어 보탰지만, 최근 5년래 가장 낮은 낙찰총액이란 타이틀은 피해가지 못했다. 국내 경매시장 낙찰액은 2014년 971억원을 찍은 뒤, 2015년 1880억원, 2016년 1720억원, 2017년 1900억원, 2018년 2194억원으로 더디지만 꾸준한 증가세였다. 그래프가 꺾인 건 2019년부터. 1565억원으로 예고편을 날렸다. 수치야 높다지만, 어찌 보면 지난해보단 2019년 통계가 더 결정적 한방이긴 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도 전 큰 추락이었으니까. 바꿔 말하면 되레 지난해 미술계는 ‘코로나를 무릅쓴 선방’이란 뜻도 된다.
그 가파른 희망을 2021년 새해에 이어간다. 국내 미술관과 화랑들이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전시에서 엿봤다. 키워드라면 회복·치유·동반·융합 등이 될까. 어두운 그림자를 완전히 거둬내진 못하지만, 홀로 싸우는 외로움은 떨쳐내자고, 몸은 떨어져도 붓은 모아보자고 하는 마음들이 읽힌다.
△‘팬데믹 뚫어보기’ 본격화…치유 혹은 성찰
무엇보다 굵직한 기획전이 그렇다. 코로나 블루에 대한 위로, 팬데믹이 바꿔버린 일상 혹은 그 이후를 가늠하는 시선들이 눈에 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에두르지 않고 정면으로 코로나를 직시한다. 5∼8월 서울관에서 예정한 ‘코로나19, 재난과 치유’ 전이다. 팬데믹이 뒤바꾼 삶의 내용과 방향을 예술이란 스펙트럼으로 들여다보는 대규모 전시로 기획했다. 미술관은 “팬데믹이 개인과 사회 전체에 미친 영향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조망하는 주제전”이라고 소개했다. 인류가 같은 시기에 같은 처지에 놓인 만큼, 국제전으로 방대하게 내보일 예정이다. 당장 작가그룹 무진형제, 작가 에이샤-리사 아틸라 등이 관심을 끈다. 무진형제는 2019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과 스페인 한네프켄재단이 공동주최한 비디오아트예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핀란드 출신 영상작가인 아틸라는 베니스비엔날레(1999·2005), 상파울루비엔날레(2008), 시드니비엔날레(2002·2018) 등을 거친 작가이자 영화감독. 국내에선 지난해 ‘수평의 축’이란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을 통해 6분 분량의 채널영상 ‘수평-바카수오라’(2011)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화랑가에선 학고재갤러리가 기획한 ‘38℃’ 전이 가장 먼저다. 갤러리 소장품을 중심으로 팬데믹 시대가 던진 세상과 인류의 고민거리를 풀어낸다. 갤러리는 “2020년 디스토피아는 외계 생명체나 로봇, 신화적 존재가 아닌 현실세계의 작은 균에서 시작됐다”며 “사람의 몸에 감염의 지표가 되는 38℃를 주제로 소장품과 국내외 동시대 작품을 몸·정신·물질·자연이란 범주로 살핀다”고 밝혔다. 1월 6일부터 31일까지 오프라인, 2월 28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진행할 전시에는 이우성의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2017), 박광수의 ‘단단한 나무’(2019), 안드레아스 에릭슨의 ‘세마포어 지리산’(2019) 등 30여점을 내건다.
△개인전 혹은 개인기…대가들 신작, 삼성미술관 재개관
그래도 위기에는 거장의 큰 획이 위로가 된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시대를 함께 견뎌온 성찰과 혜안이 보이는 덕이다. 갤러리현대가 앞장서 이들 대가의 개인전을 차례로 띄운다. 작가 김민정(59)이 스타트를 끊는다. 김민정은 유럽·미국을 무대로 한국화·서예의 전통을 서구 추상미술과 결합해 먹·불 등으로 완성해왔다(2. 19∼3. 28). 한국 실험미술을 주도해온 작가 이강소(78)가 그 뒤를 잇는다. 이강소는 ‘생성과 소멸’이란 주제로 특정 행위와 과정, 발생의 흔적을 좇는 회화·조각·설치·퍼포먼스 등을 다채롭게 발표해왔다. 1970년대 실험작품을 선보인 2018년 ‘소멸’ 전을 잇는 이번 전시에선 최근까지 주력해온 신체·정신·환경을 더듬는 회화·조각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4. 9∼5. 23). 1세대 전위예술가로 꼽히는 이건용(79)도 놓칠 수 없다. 지난해 미국 미술매체 아트시가 선정한 ‘지금 주목해야 할 예술인 35인’에 이름을 올린 이건용은 ‘미술의 본질’을 끊임없이 물으며 한국 입체·설치미술 확장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친 인물. 이번 전시를 위해 신체를 둘러싼 성찰을 담은 신작을 준비 중이란 갤러리의 귀띔이 있다(9. 3∼10. 24).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인 윤석남(82)도 새해에 자주 오르내릴 이름이다. 2월에는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10월에는 일민미술관에서 홍승혜·이은새와 함께 기획전을 예고했다. 학고재에선 역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초상 연작과 설치작품을 걸고, 일민에선 각기 다른 세대를 대표한 여성작가들과 개인·사회를 대면해온 방식을 드러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새해에 주목한 거장은 정상화(89)와 박수근(1914∼1965). 이우환·박서보와 함께 ‘단색화 3인방’에 드는 정상화는 지난 10년간 세계미술시장에서 작품값이 많이 오른 미술가 100인에 꼽혔다. 하지만 정작 60여년 화업을 통해 추구한 건 ‘보이지 않는 그림’. 색이 아닌 시간을 쌓고 비워낸 대규모 회고전을 기대해봄 직하다(5∼8월 서울관). ‘국민화가’ 박수근은 설명이 더 필요치 않은 작가. 거친 화강암 표면 같은 우툴두툴한 질감에 우리네 삶의 질박한 정경과 절박한 정서를 무던히도 아프게 새겨놨더랬다(11월∼내년 2월 덕수궁관).
개인전은 아니지만 ‘개인기’가 도드라진 기획전이 바투 오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5월 덕수궁관에서 여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이다. 사실 이는 지난해 말 계획했던 전시. 코로나로 순번에서 밀렸다. 1930∼1940년대, 척박한 사회분위기에도 유독 풍요로웠던 미술과 문학의 상호관계를 조명한다. 김환기와 김광균, 구본웅과 이상, 이중섭과 구상 등 미술과 문학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 그들의 긴밀한 관계를 300여점 작품·자료로 끌어낸다.
전시 외에 새해 미술계를 가름할 굵직한 볼거리도 기다리고 있다. 3월 재개관을 목표로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이다. 2017년 홍라희 관장, 홍라영 총괄부관장이 차례로 물러난 이후 삼성미술관은 상설전만 열며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왔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서는 아예 휴관에 들어갔더랬다. 미술계는 이번 재개관을 신호로, 삼성미술관 운영위원장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점치고 있다. 아직까지 드러난 라인업은 없으나 이미 가장 주목받는 ‘전시’로 떴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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