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기후위기 시민의회를 제안한다

손제민 사회부장 2021. 1.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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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가 시민 삶에 미친 영향은 극적이고 가시적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백신이 도입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행동한다. 그 이후에는? 제2, 제3의 팬데믹이 오고 또 마스크와 백신을 찾을 것이다.

다행히 많은 시민이 기후위기도 코로나 못지않은 위협이고 서로 관련돼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학자들은 감염병의 확산과 빈번한 발생이 기후위기와 관계 있음을 알려줬다. 기후위기는 생태계를 교란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세균의 지리적 확산에 기여해왔다. 말라리아, 뎅기열, 웨스트나일병, 황열병, 지카 등 기후위기로 발생 지역이 확대된 감염병 목록에 코로나도 이름을 올렸다.

손제민 사회부장

기후위기는 중요성에 비해 정치가 무력함을 보여준 대표적 사안이다. 정치는 눈앞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몇십년 장기 과제도 다뤄야 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엔 코로나 백신에 쏟는 정도의 관심을 쏟지 않는다.

작년에 국회가 기후위기 비상결의를 채택하고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제시했다. 그나마도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행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조치는 구체적 행동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2020년 9월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2050년 순 탄소배출량을 0으로 하기 위해서는 비상결의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는 목표를 명시해야 한다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요구를 여당 의원들과 환경부 차관이 뭉개려고 한 모습이 확인된다.

“2050년 생각해보면 저는 80세다. 여기 계신 분들, 그때 여기 아무도 책임지실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국민들 앞에 ‘잘해보겠습니다’ 수준은 아니고 뭔가 구체적 목표는 있어야 된다”고 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인식이 차라리 정확했다. 2030년 목표를 명시하자는 요구는 끝내 관철되지 않았다. 대통령의 선언도 이를 넘지 못했다. 정부는 국내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을 중단하지 않았고, 베트남 등에 석탄발전소 투자를 결정함으로써 의지를 의심케 했다.

‘촛불’ 정부의 대응이라기엔 실망스럽다. 민주주의하에서도 소수가 권력을 독점할 수밖에 없고, 정권이 바뀌어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다. 비판만 하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기후위기 시민의회를 제안한다.

시민의회는 탁월성에 기초한 선출직 대표가 아니라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일반 시민들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고대 아테네 민회에서 따온 직접민주주의 제도이다. 시민이 스스로 통치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정신에 가장 가깝다. 선거 주기에 구애받는 선출직 대표와 달리 장기적 과제를 숙의하는 데 적합하다. 아일랜드가 임신중단 비범죄화를 다룰 개헌 국민투표 부의를 시민의회를 열어 결정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의회, 대통령의 요청으로 기후위기 시민의회를 열어 입법 권고를 했다.

의회와 행정부가 시민에게 권한을 떼어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신들이 잘 대응하지 못하고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문제를 방치함으로써 파국을 재촉하기보다 시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이다. 모든 문제를 직접민주주의로 풀자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시민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한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대의제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보면 된다.

기후위기 대책의 상당 부분은 시민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덜 만들며, 탄소세를 내는 등 불편을 감수하는 요소들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시민이 참여한다면 실행력을 더 담보할 수 있다. 시민의회는 시민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영국 시민의회를 분석한 과학저널 사이언스매거진을 보면 참석자 110명의 94%가 타인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자기 견해가 존중받는다고 느꼈고, 95%가 견해를 표출할 충분한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으로 인해 점점 더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의 양극화 시대에 특이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시민의회에 어린이, 청소년도 참여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세대, 지역, 계급에 따라 불균형하게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들은 30년 뒤 이 세상에 없을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린이, 청소년은 가장 오랫동안 그 영향을 받을 당사자이다. 새해에 더 미루지 말고 해야 할 일이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손제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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