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여성 일자리.. 오프라인 소매업의 종말.. 뉴-뉴노멀이 온다"
'애프터 코로나'의 시작점이 될 올해
어쩔 수 없이 바뀐 노동 환경과 새로운 소비 습관..
예전의 그대로 돌려보내진 않는다
희망과 두려움은 늘 공존하지만, 2021년은 특히 더 그렇다. ‘코로나를 종식시키고 활기를 되찾을 것’이란 바람과 ‘코로나 이전처럼 돌아가지는 절대 못 할 것’이란 비관이 맞부딪힌다. ‘애프터 코로나’의 시작점이 될 올해, 우리 사회와 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Mint가 6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사무실이 사라진다
코로나 영향으로 확실히 사라진 게 있다면, 그건 ‘사무실’이라고 린다 그래턴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주장했다. 출근이 재택근무로 대체됐고, 이제 ‘어디서든 근무’(work-from-anywhere)로 진화하고 있다. 줌과 슬랙 같은 업무 도구가 발전한 덕이다. 출근이 사라진다는 건, 상대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단 뜻이다. 직장 동료보다는 가족·이웃을 더 챙겨야 할 때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재택근무였지만, 출퇴근 시간과 출장 비용 절감, 업무 창의성 개선 등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았다. 기업 입장에서도 근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프리스위라지 차우두리 하버드대 교수는 “요즘 인재는 일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간다”며 “기업은 원격 근무가 잘 돌아가게 ‘원격 근무 책임자’를 새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장소와 환경은 바뀌었더라도, 일의 본질이 변한 건 아니다. 오히려 ‘노동의 그물’은 더 치밀하고 두터워졌다. 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직원 모두가 재택 근무를 하면 누가 성과를 내는 핵심 인재인지 더 명확하게 보인다”며 “코로나 종식 이후엔 기업들이 조직 슬림화에 나설 것이다”고 전망했다.
◇기업도 ‘거리 두기’를 한다
코로나로 원격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미국에선 본사를 지방 도시로 이전하는 기업이 늘었다. 휼렛 패커드엔터프라이즈(HPE), 오라클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텍사스로 본사를 옮긴다. 칼 아이컨, 데이비드 테퍼, 폴 튜더 존스 등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세계 금융 허브인 뉴욕을 떠났다. 골드만삭스 역시 핵심 자산운용 사업부를 플로리다나 텍사스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탈(脫) 도시화 현상이 올해 더 가속화하리라고 전망했다. 그래턴 교수는 “원격 근무가 확산하며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데 굳이 도시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겠느냐”며 “도시의 운영자들은 통근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대도시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탈도시화는 상업용 부동산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는 “온라인 교육과 재택 근무, 디지털 경제의 확산은 뉴욕·런던·서울 같은 대도시로의 이동을 감소시키고, 상업용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베시 마키 전 미 하원의원도 “재택 근무 확산과 소비 패턴 변화는 부동산 시장의 수요 곡선을 바꾼다”며 “역동적 활동을 위해 설계된 도심이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높아져만 가는 테크놀로지 의존
코로나 백신은 기존의 다른 백신보다 훨씬 빨리 개발됐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로 화학 합성한 유전정보 전달 물질 ‘mRNA(메신저 리보핵산)’로 만든 덕분이다. 단백질 배양 과정이 필요 없어 생산도 용이하고, 인체가 감당해야 할 부담도 적다. mRNA는 향후 암(癌) 백신 개발에도 쓰일 수 있다. 가상현실·자율주행·인공지능·로봇 등 ‘4차 산업’ 기술의 질주도 계속된다. 실험실 기술이 실생활로 확대 적용되면서, 다양한 제품·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다. 테슬라·애플 등 테크 기업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만큼, 기술 없인 살 수 없는 시대가 빨리 온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선진국들은 최근 몇 년간 인력보다 기술에 의존해 생산성을 높여왔다. 비벡 와드와 카네기멜런대 수석연구원은 “모든 산업이 기술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맞싸우는 기업은 쇠퇴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술 격차로 인한 양극화는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오프라인 소매업'의 종말
니만 마커스, JC페니, 로드앤드테일러 등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형 소매업체들이 코로나 타격에 줄줄이 파산했다. 부동산 업체 코스타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만 1만1000개 이상의 소매점이 문을 닫았다. 면적으로 따지면 1억5000만 제곱피트(약 422만평)에 달한다.
백신이 보급되더라도 오프라인 소매업의 부활은 쉽지 않을 것으로 많은 전문가는 내다봤다. 마키 전 의원은 “대면 소비는 극도로 제한됐지만 소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소비 욕구를 충족시킬 새로운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소비 습관이 기존 소매업 시장의 통폐합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반면, 디지털 경제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온라인 유통 공룡 아마존의 주가는 지난해 78%나 올랐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오프라인 소매업의 종말은 동시에 디지털 경제를 가속화했다”며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수년이 걸렸을 변화가 단숨에 일어났다”고 했다. 미래학자인 제이슨 솅커 프리스티지이코노믹스 회장은 “백신 보급으로 오프라인 소매점의 상황이 다소 개선되더라도 전자상거래 증가세는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여성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학교 문을 걸어 잠그면서 지난해엔 교육 분야에도 혁신이 일어났다. 세계 각국이 의도치 않게 원격 교육 실험에 참여하면서 교육에 기술을 접목한 ‘에드테크’(EdTech)가 급격히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원격 교육이 장기화하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은 3억2000만명에 달한다. 마키 전 의원은 “아동이 건강하게 발달하기 위해선 사회적 상호작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회화가 장기간 결여되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인적 자본 개발에 악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여성들의 노동 참여율도 떨어진다. 마키 전 의원은 “원격 수업 장기화로 늘어난 양육 의무를 대부분 여성이 떠맡으면서 성별 간 고용 격차가 확대됐다”며 “이는 인적 다양성을 저해해 경제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유럽연합의 경우 지난해 4월 여성과 남성의 실업률 격차는 0.2%포인트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0월에는 0.9%포인트로 확대됐다. 애덤 포젠 미 피터슨연구소장은 “경기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하려면 여성의 노동 참가율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뉴 뉴 노멀'이 온다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빠르게 번지고 있고, 백신 보급은 이제 막 시작됐다”며 “우린 아직 코로나 팬데믹을 과거 시제로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1년 키워드'로 ‘Normalcy(정상·正常)’를 꼽았다.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정상화되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다. 그는 “완전히 정상화된다는 뜻은 아니다”면서 “다만 최근 수년 간의, 너무나 이상하고 복잡했던 상황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존과는 다르지만 정상인 상태. 2010년대 이후 사람들은 그걸 ‘뉴 노멀’이라고 불렀다. 올해는 뉴 노멀에서 파생된 또 다른 ‘뉴 노멀’이 올 수 있다. 솅커 회장은 “2021년은 분명 2020년과는 다를 테지만, 그렇다고 2019년과 비슷하지도 않다”며 “결국 ‘뉴 뉴 노멀(New New Normal)’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류가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가진 못할 것이란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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