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연대는 누가 가져갈까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2021. 1.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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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 이 책에선 능력대로 공정한 사회가 사실 공정한 사회가 아니고 계급사회처럼, 불공정함을 용인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공정하다고 믿는 현대사회가 성공한 사람에게는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는, 실패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부족해서 실패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누군가 성공했다면 개인의 재능 때문이건 노력 때문이건, 공공재 위에서 만들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그 성공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공의 오만함과 실패의 자책감은 공정한 사회를 방해하고 연대와 협력을 통한 공공선을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우리 사회는 어떨까. 능력사회의 오만함을 용인하고 있을까. 주권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공정함을 위한 제도적 노력에 신뢰를 보내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3개의 설문을 부탁했고, 작년 말 전국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했다.

첫 번째 질문. 법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면,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지 물었다. 긍정 51%, 부정 44%였다. 입법·사법·행정부가 지금의 사회시스템 안에서 아무리 법과 제도를 개선하더라도 불평등 해소라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주권자가 44%였다. 법과 제도의 개선은 불평등 해소라는 긴 여정에 필요한 한쪽 날개일 뿐, 나머지 한쪽 날개를 찾아야 한다. 두 번째 질문. 불평등 완화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공정하고 공평한 제도를 지속해서 만드는 일 55%, 정부·기업·시민이 배려하고 협력하는 일 41%였다. 배려와 협력, 즉 연대가 공정과 평등의 보완적 요소로 논의된 적은 많지만, 독립된 보편의제로 공론화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조사 결과일 것이다.

마지막 질문. 그렇다면, 연대를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목표, 가치관, 이념으로 볼 수 있을까. 앞으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물었다. 공정과 평등 42%, 협력과 화합 39%, 자유와 경쟁 17%였다. 협력과 화합, 즉 연대는 우리가 찾고 있는 나머지 한쪽 날개다.

흥미로운 점은 위의 3가지 응답을 주도한 계층이 이념적 중도층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양 끝단의 진보와 보수를 중앙으로 끌어당기며, 연대와 협력의 아름다운 정규분포를 만들어냈다. 자유로운 경쟁과 차별 없는 평등이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근대적 가치라면, 연대는 한 번도 주류가 되어보지 못한 중도의 가치이자 그 이념적 층위가 한 차원 높아진 신주류의 가치이며 미래의 가치일 수 있다.

대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고비마다 주권자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대기업이 코로나19로 분투하고 있는 주권자를 도울 차례다. 삼성, SK, 현대 등 대기업이 협력사회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보면 어떨까. 2022년 대선 경쟁도 이미 시작됐다. 다음과 같은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길 바란다. 숙의하고 토론하는 성찰적 사회문화를 주권자와 함께 만들 수 있는 후보,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목표를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후보, 계층·세대·직군·지역 간 합의로 새로운 사회적 약속을 이끌 수 있는 후보. 어떤 후보일까, 연대는 누가 가져갈까.

최정묵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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