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새로운 시간의 시작
[경향신문]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을 보아라
하나둘 내리기 시작할 때
공간은 새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늘 똑같던 공간이
다른 움직임으로 붐비기 시작하면서
이색적인 선(線)들과 색깔을 그으면서, 마침내
아직까지 없었던 시간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열고 있다!
그래 나는 찬탄하느니
저 바깥의 움직임 없이 어떻게
그걸 바라보는 일 없이 어떻게
새로운 시간의 시작이 있겠느냐.
그렇다면 바라건대 나는 마음먹는 대로
모오든 그런 바깥이 되어 있으리니……
정현종(1939~)
허공(虛空)은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다. 공기로 가득 차 있으면서 나무가 자라고, 새 떼가 날 만큼 텅 비어 있다. 시인은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의 풍경이다. 안도 밖도 시간이 정지한 듯 무료하다. 그때 낮게 내려앉은 하늘에서 하나둘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허(虛)가 실(實)이 되는 순간, 시인은 허공에 새로 생겨난 공간에 주목한다. 눈의 결정체는 미시적 공간, 눈이 가른 허공은 거시적 공간이다.
시인은 “이색적인 선(線)들과 색깔”에서 “아직까지 없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감탄한다. 내리는 눈의 움직임에서 새로운 공간을 발견한 시인은 다시 “새로운 시간”을 떠올린다. 시인의 사색은 계속된다. “마음먹는 대로” 바깥은 안이 되고, 안은 바깥이 된다. 밖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 시인은 밖으로 나가 새로 시작하려 마음먹는다.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19로 여전히 힘들지만, 시인처럼 새로운 시간을 열어보면 어떨까.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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