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脫원전용 ‘날치기’ 전력 계획

안준호 산업부 차장 2021. 1.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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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달 28일 전력정책심의회를 열고 2034년까지 15년간의 국내 전력 수급 전망과 발전 설비 계획을 담은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9차 계획은 원전 대신 태양광·풍력 발전을 대폭 늘리고 석탄 발전 대신 LNG 발전을 확충하는 것이 골자다.

전문가들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할 수 없고, LNG 발전 확대는 탄소 감축 효과는 미미하고 전기료 인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원점 재검토를 촉구해 왔다.

원자력노조연대 회원들이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린 지난 달 24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앞에서 공청회 취소와 9차 계획 원점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원자력노조연대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는 군사작전하듯 9차 계획을 밀어붙였다. 이 계획을 심의·의결하는 전력정책심의위원들에게조차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다가 심의회 전날 밤 9시 33분에야 20쪽짜리 요약본을 이메일로 보냈다. 106쪽짜리 최종본은 자정 무렵인 11시 55분에야 보냈다. 심의회를 28일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했으니, 안건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날 심의회에서는 재생에너지와 LNG 발전 급증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결국 정부 원안대로 확정됐다.

전기사업법은 전력 계획을 수립하려면 국회 상임위 보고와 공청회를 통해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전력정책심의회를 거쳐 확정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9차 계획 수립 과정에선 이 모든 과정이 요식행위에 그쳤다. 9차 계획을 논의하는 심의회는 2019년 12월 이후 작년 11월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야 첫 회의가 열렸지만 산업부는 20여쪽짜리 자료를 나눠줬다가 1시간여 만에 비공개라며 도로 걷어갔다. 그리고 심의회 바로 전날 자정 무렵에야 안건을 공개한 것이다.

자료를 늦게 배포한 데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숫자와 오타 등을 고치느라 최종본이 늦게 나왔기 때문”이라며 “11월 심의회에서 관련 내용을 설명했기 때문에 위원들이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 심의위원은 이에 대해 “1시간 동안 20쪽짜리 요약본만 보고 15년 전력 수급 계획을 숙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회 상임위 보고도 코로나로 상임위가 열리지 않아 개별 서면 보고로 대신했다. 국회 논의가 생략된 것이다. 이어 공청회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시민단체와 학계는 “정부가 크리스마스와 연말 어수선한 틈을 타 9차 계획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며 “9차 계획은 탈원전 명분 쌓기용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2017년 12월 탈원전을 공식화한 8차 계획 수립 때의 데자뷔다. 당시에도 12월 27일 국회 보고, 28일 공청회, 29일 심의회 통과 등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만든 8차 계획은 수립 2개월 만에 최대 전력 수요량 예측이 빗나갔다. 2년마다 수립하는 전력 계획이 이 정부 임기 내에선 이번이 마지막이란 게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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