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지식 전문점과 도매상은 어떤가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1. 1.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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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민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꾸짖는다. 우리나라에서 좀 읽었다는 자들이 쉼 없이 하는 일이다. 옆 나라에 비해 적게 읽는다고 불평이고, 다른 나라에 비해 책값을 안 쓴다고 불만이다. 정작 그 꾸짖음에 취한 자들끼리 얼마나 읽을 만한 책들을 썼는지, 썼다면 또한 얼마나 읽혔는지 묻지 않는 게 예절이지만 말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읽었다는 자들이 쓰지 않아서 그런가. 요새 시민들은 서로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뭔가 아는 체하는 이가 옆에 있으면 물어보자. 도대체 그 재밌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배웠는지. 공동체 게시판, 뉴스댓글, 팟캐스트, 교류매체, 위키, 그리고 동영상 채널이라고 매체를 특정한 답변을 들으면 다행이다. 인터넷에 다 있다는 응답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그 인터넷에 있다는 내용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식 소매상이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원래 누군가 스스로 아는 체하는 바를 겸양해 만든 말인 것 같은데, 요즘 용례를 따르면 제대로 읽지도 않고 여기저기 떠들며 돈을 버는 자를 지칭한다. 최근 이들이 불량품을 팔아서 문제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지식 소매상이란 용어가 재밌는 이유는 지식을 도매상에서 구입할 수 있다거나, 아니면 전문점이 별도로 있으니 거기에서 거래하는 게 좋겠다는 함의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학술대회의 발표장이나 학술논문집이 지식의 전문점이라면, 확실히 그런 경로가 별도로 존재한다. 그러나 학술논문에 접근할 수 있는 시민이 얼마나 되는가. 만약 주류 매체가 지식의 도매상이라면, 과연 도매상은 소매상보다 좋은 품질로 내용을 제공하고 있는가. 애초에 주류 매체가 섭외한 인물과 제작한 내용이 부실해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니었나.

지식 소매상에 개탄하는 목소리는 독서하지 않는 시민을 꾸짖는 목소리만큼 공허하다. 윗물이 본래 많지 않고 맑지도 않은데, 어찌 아랫물이 풍부하기만 바랄 수 있을까. 지식 소매상을 탓하는 이들은 스스로 돈이건 뭐건 되받고 팔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 쪼가리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유튜브 채널이나 블로그라도 만들어 점포를 낼 만한 용기와 능력은 또한 있는지 물어야 한다.

지식이 없고 용기마저 없다면 지식을 전한다는 사람에 대해 무작정 개탄하거나 비난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든 어디서든 배울 것을 찾아 열심히 배워서, 기회가 오면 용기를 내어 나누면 된다. 과외비나 학원비를 내지 않고 유튜브 광고에 클릭질을 해서라도 배울 수만 있다면 배워서 함께 나누면 좋다. 다만 배움이라는 게 그저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골라 보고 감격해 하거나, 자기가 믿지 못할 바를 접한 뒤 화를 내며 배격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배움이란 의심을 제도화한 것이다. 애초에 그것은 확신을 팔고 사는 일과 상관이 없다. 뭔가 안다고 주장하는 자가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됐는지, 그 앎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뭔지, 그 자료를 제삼자가 독자적으로 수집해서 확인할 수 있는지, 새롭게 알려는 자가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일이다. 안다는 게 원래 스스로 의심하는 일이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바가 왜 그런지 출처를 확인하고, 맥락을 따져보고, 그래도 의심스러운 나머지 타인의 검토를 요청하는 일이다.

지식 소매상을 대신해서 본격 배웠다는 자들, 학위가 있다는 자들, 어디에서 가르친다는 자들이 대신 등장해서 가르친다고 해서 크게 사정이 달라지는 게 없다. 이들이 제시하는 지식이라는 게 인용 없는 요약과 개인적 의견이 뒤범벅된 내용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나만의 출처에 의존해서 실 잣기 하듯 반복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자료와 반론에 응답하지 않으면 최악이다. 결국 무작정 지식 소매상을 매도할 일이 아니다. 이들이 누구로부터 무엇을 배워서 그러는지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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