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전망] 무관세 극적 합의, '자유진영 분열' 면했지만.. 금융·서비스 타격은 진행형

황준국 前 주영대사 연세대 객원교수 2021. 1.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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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300만 몰려 '통제 불능'되자 EU 탈퇴로 기울었던 영국
EU '상품 무관세' 주고 英 '군사·정보 협력' 남겨 自害 없이 이별
트럼프 퇴장에 나토 불협화음 해소· 美·EU·英 '새 출발' 기회

영국은 2021년 1월 1일을 기해 유럽연합(EU)의 단일 시장과 관세동맹에서 완전 탈퇴했다. 동시에 EU의 법, 관료 조직, 재판소와 결별하고 ‘독립국’이 됐다. 브렉시트를 주도해왔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47년 만에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고 선언했다. 반면, 경제력의 15%가 축소된 EU로서는 축하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었던 ‘노딜’(No Deal) 상황을 피한 데 안도하고 있다.

제2, 제3의 영국 막아야

지난 수년간 진행된 탈퇴 협상과 미래 관계 협상은 영국에 불리한 게임이었다. 무역과 공정경쟁 질서, 상품 표준, 데이터 교환 및 보호, 분쟁 해결 메커니즘, 어업권 등을 새로 정하는 협상에서 27개 EU 회원국을 상대해야 했다. EU 단일 시장은 상품, 서비스, 자본, 사람 등 네 가지 자유 이동을 보장한다. 미국과 맞먹는 거대 단일 시장이 주는 ‘규모의 경제’ 혜택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이유는 유럽인의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법과 규칙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만약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를 달성한다면 제2, 제3의 영국이 나올 수 있으므로 EU는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 교역에 제한을 두려 했다. 이 경우 EU의 딜레마는 자신들도 모두 조금씩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떠나는 자를 벌주기 위해 남은 자들이 얼마나 손해를 봐야 하는가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영국과 EU 주요국 교역량 / '브렉시트' 이후영국 실질 GDP 감소 전망

결국, 연 1000조원에 달하는 영국-EU 간 상품 교역에 통관 절차는 추가됐지만, 기본적으로 종전 같은 무관세, 무쿼터로 극적 합의를 봤다. 일단 영국이 큰 손해는 면한 것 같다. 그러나 상품 교역은 영국 경제의 20%만 커버한다. 영국은 금융, 법률, 학문, 문화, 첨단 기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한다. 이 분야는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 특히 세계 최고의 인프라와 생산성을 자랑하는 런던 금융가가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영국은 단기적 경제 손실에도 불구하고 미국, 아시아 등 유럽 밖 나라들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맺으며 경제 활로를 찾고자 한다. 한·영 관계도 더 긴밀해질 여지가 많다.

오만과 편견

필자가 주영 대사로 재직하던 2016년 6월 23일 EU 잔류냐 탈퇴냐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그 결과 52대48로 EU 탈퇴가 이겼다. EU 잔류가 이기리라고 예상했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오래 끌어온 국론 분열을 국민투표로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 투표 다음 날 필자가 만난 영국 의원들과 언론인, 교수 등은 충격에 싸여 있었다. 그들의 실망과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CC)에 가입했으니 영국민 중 다수는 날 때부터 유럽 시민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저소득, 저학력, 고령자, 시골 사람이 탈퇴를 더 많이 지지한 것으로 나오자 대영제국의 환상에서 못 벗어난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양식 있는 영국인의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을 눌렀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연 그럴까? 당시 영국은 EU 이민자로 고민이 컸다. 1,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었던 영국은 참혹한 치욕과 패배를 경험한 프랑스, 독일과는 달리 정치 통합보다는 단일 시장에 관심이 컸다. 유럽 합중국 창설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라고 봤다. 프·독을 중심으로 EU가 통합에 속도를 내자 영국은 2004년 EU를 동유럽으로 확대해 통합 물타기에 성공한다. 영국은 당시 동유럽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와서 살 줄은 몰랐다. 영어를 쓰고 의료, 교육, 각종 문화시설 등 무료 공공재가 풍부한 영국은 인기가 높았다. 2005년부터 10년간 순이민자 수가 300만명을 넘었고 EU에 속해있는 한 이를 통제할 수단은 영 정부에 없었다. 특히 소도시나 시골 지역으로 가면 이민자로 인해 영국민이 느끼는 의료, 교육 등 공공 서비스의 질은 빠르게 저하되고 있었다. 주권국가가 이런 문제에 아무 대책도 없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것이 EU 탈퇴로 기울어진 가장 직접적 이유다. 강자의 오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무력감과 소외감의 표출에 가까웠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

그해 11월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저소득, 저학력, 시골 사람, 고령자 등 트럼프 지지층은 브렉시트 지지자와 성향이 비슷했다. 두 현상의 공통점은 지난 20년 빠르게 진행된 경제 세계화가 배출한 승자와 패자 간 갈등의 심화였다. 경제의 세계화가 정치의 로컬화를 견인했다. EU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럽 대륙 남북 간 경제 격차가 벌어지고 각국의 민족주의 경향이 강해졌다.

최근 EU 위상은 브렉시트, 이란 핵 문제, 코로나로 연속 타격을 입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의 일방적 파기와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 재도입으로 유럽은 약체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란과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유럽 기업들은 미 금융 시스템 접근권을 상실하게 될까 봐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유로화의 파워가 달러화와 엇비슷하기만 했어도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2021년 새 출발 하는 서방 진영

‘노딜’로 영·EU 간 상호 자해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과 비교하면 미래 관계 협상 타결로 협조 관계가 유지된 것은 큰 다행이다. 영국은 군사, 정보 등 비교 우위 분야는 협상 레버리지로 사용하지 않았고, EU도 영국을 오랜 친구로 인정했다.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대국과 북한, 이란, 시리아 등 불량 국가를 상대로 한 범세계적 경쟁과 대립 국면에서 일단 자유민주진영의 분열은 막았다. 트럼프의 퇴장으로 나토 동맹국 간 불협화음도 해소될 전망이다. 브렉시트 타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코로나 백신 접종 개시와 함께 2021년 미국·유럽·영국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새 출발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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