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톡] 지난해 굳게 한 결심, 올해 좀 바꾸면 어때

이승희 마케터·'기록의 쓸모' 저자 2021. 1.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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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매우 재밌게 본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는 ‘쇼미더머니9′였다. 매년 열리는 ‘쇼미더머니'의 감상 포인트는 그해에 참여하는 프로듀서들과 래퍼들이다. 내가 제일 흥미롭게 여기는 부분은 절대 나오지 않겠다고 했던 래퍼들이 나올 때다. 과거에 ‘이 프로그램에 절대 나가지 않을 거야’ 했던 래퍼들이 나와서 신나게 랩을 하고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볼 때면 뭔지 모를 희열을 느낀다.

‘저렇게 잘할 거면서, 저렇게 즐길 거면서. 저렇게 멋지게 보여줄 거면서.’

자기가 했던 말을 번복하고 나와서 무대를 찢어버리는 래퍼들을 보면서 저게 바로 힙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맛 칼럼니스트가 여행 시작 전 ‘저는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은 먹지 않아요’라고 해놓고 바로 몇 분 뒤 장면에서 맛있게 휴게소 우동을 먹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삶은 모순입니다. 15살, 25살, 40살의 나는 각각 다른 존재이지요. 그 삶을 자세히 보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인생을 격정적으로 돌파하는 사람은 1년 전의 자기 말을 부정합니다. 한 인간의 삶을 그릴 때는 모순되고 비약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단절의 순간, 그 순간을 짚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일러스트=박상훈

김탁환 소설가의 ‘천년습작’에 나온 구절이다. 인생을 격정적으로 돌파하는 사람은 1년 전의 자기 말을 부정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우리는 그동안 절대 소셜미디어(SNS) 따위는 하지 않겠다며 시간 낭비라고 했던 사람이 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전국 방방곡곡 카페 찾아다니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가’라고 했던 사람이 동네마다 카페 지도를 그리며 커피 전문가가 되어 있고, 배달은 절대 하지 않겠다던 레스토랑이 배달을 시작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자기 번복을 통해 성장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공지 게시물을 봤다. 속초 ‘루루흐’라는 비건 카페가 올린 게시물이었는데, 원래 이곳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음료 테이크 아웃은 텀블러 이용 시에만 가능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매장 이용이 불가하고 포장 판매만 가능하게 되니 생분해되는 종이컵을 쓰게 되었다며 다시 공지를 올린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변화한 상황에 맞춰 바뀌어야 하지만 본인들이 생각하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고 전했다. 코로나 상황에 카페 운영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환경을 지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과거에 했던 자기 말을 번복을 하는 사람들은 변화한 세상에서 저마다 돌파구를 찾는다.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해보지 않았던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잠깐씩 단절 순간을 겪으며 격정적으로 삶을 변화시킨다. 살아가는 데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때론 내가 세운 그 기준이 나에게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이미 많이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도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말한 것을 번복하는 것이 웃기고 창피하다고? 말을 자꾸 바꾸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가 한 말 번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끊임없이 번복하고 또 번복하고, 자기 번복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성장한다고 믿는다. 번복하는 과정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자기 번복,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자기 결정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 우리가 코로나로 배운 교훈은 세상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좀 더 내가 뱉은 말을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한 자세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마음의 갱신(更新)이 필요하다.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하는 마음. 앞으로 더욱더 자기 부정을 하는 사람만이 이 시대에 살아남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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