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날 5·18 잃고 싶지 않아… ‘표현의 자유' 제약이 독재 첫걸음”

최보식 선임기자 2021. 1. 4.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최보식이 만난 사람]
‘나는 5·18을 왜곡한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자유와 민주 위한 광주 항쟁
5·18이 정치화돼 거꾸로 그 자유와 민주를 죽이고 있어
자신의 행위를 정의로 포장 하지만
각성되지 않은 정의는 각성된 불의보다 잔인할 수도
최진석 교수는 “문 대통령이 거짓말하는 것을 보고 정권 출범 석 달 만에 등을 돌렸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한파가 몰아치는데 최진석(62) 서강대 명예교수는 청바지 차림이었다. 원래 대중 강연을 잘하는 스타 철학자였지만, 보름 전쯤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도발적 시(詩)를 발표한 뒤로 그는 ‘뉴스의 인물’이 됐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저주한다/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 갇힌 5.18을 왜곡한다/ (…) / 기념탑도 세계 최고 높이로 더 크게 세우고/ 유공자도 더 많이 만들어라/ 민주고 자유고 다 헛소리가 되었다…’

-전라도 출신인 선생이 그쪽 주류 정서에 반하는 시를 발표한 것은 대단한 용기인데?

“나는 5·18이 정치 세력과 분리돼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5·18의 순수(純粹)를 지키고 싶고, 그 자유와 민주의 정신을 지키고 싶은 소망으로 썼다. 내 스물한 살 때의 5·18을 잃고 싶지 않다. 그래야 5·18이 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전유물 5·18

-이 시가 반어적(反語的) 표현으로 무엇을 얘기하려는지에 대해 오해는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광주에서는 민감했다. 이성과 논리로 5·18을 얘기하면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 내 글을 찬찬히 읽을 만큼 아직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닐 테고, 그로 인한 비난은 내가 감당할 몫이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 대학을 다녔는데, 5·18 당시 어디에 있었나?

“대학이 휴강이어서 집에 내려가 있었다. 나는 광주 시위 참가자는 아니었다.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함평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5·18에 대해 말한 적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지금껏 최선의 태도였다.”

-책 읽고 글 쓰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에 유독 예민해지는데, 5·18 왜곡처벌법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나?

“문재인 정권에서 전반적으로 민주와 자유가 퇴보한다는 기분을 갖고 있었다. 그 와중에 ‘5·18 왜곡처벌법’까지 통과됐다. 광주 항쟁은 좁게 전두환과 싸운 게 아니라, 자유와 민주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5·18이 정치화해 거꾸로 자유와 민주를 죽이는 방향으로 가니 불안한 거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일 수 있겠나.”

-여당은 5·18에 대한 왜곡·비방을 막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는데?

“천안함 사건은 민군합동조사단에서 북한 어뢰 공격으로 결론 났지만 음모론자들은 여전히 있다. 그러면 ‘천안함 왜곡처벌법’을 만들어야 하나. 6·25를 ‘북침(北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나. 역사적 사건마다 이런 식의 특별법을 만들어도 괜찮은가. 의사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것이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 객관적 사실로 판명된 경우라도 이설(異說)과 소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어도 그 입을 틀어막아선 안 된다. 다른 생각이 허용되는 게 자유민주 체제 아닐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민주와 자유는 숨 막히기 시작한다. 독재의 첫걸음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데서 출발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것은 역사 해석을 국가가 독점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에 강제적인 법이 개입해선 안 된다.”

-5·18왜곡처벌법을 만든 쪽에서는 ‘최악을 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이라고 주장하는데?

“과거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 때도 다 그런 이유를 갖다 붙였다. 이런 행위를 정의감의 발로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각성되지 않은 정의감은 각성된 불의보다 잔인할 때가 많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하고 피해자 보상을 해주는 법안은 우파 정권에서 만들어졌다.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 조사도 문재인 정권 전까지 여섯 차례나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도 사법적 처벌을 받았다. 5·18이 특정 정치 세력의 무기(武器)로 반복 이용되는 것처럼 비칠 때 내심 불편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타 지역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히 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광주에서는 ‘왜곡과 폄훼가 왜 계속 벌어지고 있느냐’고 말한다. 아픔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아픔이다. 광주의 아픔에 대해 좀 더 공감과 인내심을 보여줘야 한다. 광주에서도 ‘이제 5·18을 건너가자’는 마음을 내면 좋겠다.”

-햇수로 40년이 지났다. 감정적인 정리가 끝났어야 할 세월인데, 여전히 5·18은 민감한 현재형 사건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 사안을 현명하게 다루지 못한 탓이다.

“5·18이 특정 정치 세력과 일체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이 5·18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점은 존중한다. 하지만 5·18이 민주당의 전유물이 될수록 그 본연의 정신과 가치는 상실된다. 왜곡처벌법까지 만들어 아예 5·18을 못 건너가도록 멈추게 해버린 것이다.”

-5·18왜곡처벌법이 통과되자, 제주 4·3사건에 대해서도 그런 입법 움직임이 있다.

“현 정권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상황에 따라 의도를 갖고 법을 만들려는 것이다. 가령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권 후보로 뜨자, 여당에서 ‘검사는 퇴직 후 1년 안에 선거 못 나오게 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식이다. 법이 임의대로 만들어지고 적용되는 것이다. ‘법의 통치’가 아니라 ‘법을 이용한 통치’가 일상처럼 됐다.”

-현 정권 사람들은 이럴수록 자신의 지지 세력이 결집한다고 보는 것 같은데?

“국가 차원의 리더십이나 사유 능력을 보여준 것은 김대중 정권까지였다고 본다. 그 뒤로는 진영 레벨로 내려왔다. 현 정권에서 그런 퇴보가 가장 심해졌다.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다.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여야지 진영의 보스에 만족해서 안 되는 것이다.”

왕정 시대

-문재인 정권 출범 당시 기대를 많이 했을 텐데?.

“나는 촛불 시위에 나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인사 5원칙’을 스스로 제시해놓고 첫 인사(人事)부터 지키지 않는 걸 보고 정권 출범 3개월 만에 기대를 접었다. 이 정권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키지 못할 허언과 거짓말을 하지 않나?

“누가 문 대통령에게 그런 인사 원칙을 만들라고 강요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 만들고는 안 지켰다. 그 장면을 보니 앞으로도 이런 거짓말을 계속할 것 같았다. 역대 대통령들도 초반에 보여준 행태를 임기 말까지 그대로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그런 인사 기준에 맞추려면 현실적으로 장관을 시킬 사람이 없어 그랬다는 것인데?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했을 때, 나는 ‘이 정권은 대증(對症) 요법으로 가겠구나’로 받아들였다. 나라 운영은 상황을 지배하는 좀 더 높은 어젠다를 갖고 해야 한다. 상황을 극복해 나가려는 것이 지적(知的) 태도다. 이에 굴복해 변명하고 빠져나가는 것은 감정적 태도다. 일부 사람들이 5·18을 욕하기 때문에 민주와 자유는 잠시 포기하고 왜곡처벌법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런 상황 논리다. 이러면 우리 사회가 진전할 수 없다. 지도자는 상황을 압도하는 가치와 어젠다로 나라를 끌고 가야 한다.”

-정치가 국민을 나눠 진영(陣營)에 가두었고, 그 진영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아예 자기 생각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얄팍하고 유치한 말에도 맹목적으로 휩쓸리는 세태를 보면 무력감이 들 때가 많다.

“정치가 대중을 협박·회유해도, 대중이 생각하는 능력만 갖추고 있으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문제는 생각하는 능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왕정 시대에는 백성은 따르면 되고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민주주의에서는 성숙한 시민의 존재가 중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왕(王)의 생각에 따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지도자에게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이 생각하는 능력인데?

“세상에 존재하는 귀한 것들은 대답의 결과가 아니라 모두 질문의 결과였다. 우리나라는 제조 강국으로 많은 제품을 수출해왔지만, 우리가 처음 만들어 수출한 것은 거의 없었다. 이는 우리가 질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생각하는 능력이 바로 질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위대한 성취를 이뤄오지 않았나?

“짧은 기간에 건국·산업화·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런데 민주화에 갇혀 수십 년째 그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와 자유가 지금 와서 더 퇴행하는 것 같다. 민주화 다음의 어젠다를 갖고 건너가야 하는데, 현 정권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이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우리는 1등은 해봐도 일류는 못 해왔다. 중진국 상위 레벨은 됐지만 선진국은 못 됐다. 생각과 질문하는 능력 없이는 이뤄낼 수 없다.”

젊은 세대의 레드카펫

-질문도 경험·지식의 바탕에서 나온다. 자기가 아는 만큼 그 수준의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인데?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궁금증과 호기심 없이 지식을 습득하면 종속적 상황을 못 벗어난다. 대답은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을 기억했다가 전달하는 행위이지만, 질문은 자기만의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자기만의 황당무계한 생각과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나라의 앞날이 밝다고 본다.”

-우리 대학 시절에는 개인보다 사회·국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념에 너무 빠졌던 부작용이 있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우리 시절만큼의 사회적 부채 의식은 옅어졌다. 부모 덕분에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은 덜 겪었으나, 막상 사회로 나오려니 취업난·주거난 등에 직면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자조하는데?

“젊은이는 레드카펫이 깔린 세상으로 나올 수 없다. 어느 젊음도 자기 앞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어떤 젊은 세대는 나라가 없어 나라를 찾으려고 했다. 또 어떤 세대는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터에 나갔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먹을 것을 만들려고 했다. 국가 폭력이 일상화된 시절에는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어느 시대에도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를 불평한다고 그게 해결된 적 없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