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능영어 '절대평가'는 실패 중이다

이영식 | 한남대 명예교수 전 한국영어교육학회장 2021. 1.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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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교육부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부터 영어영역에 절대평가를 실시해왔다. 당시 교육부는 수능 영어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취지를 단순히 높은 수능 점수를 받기 위한 학생과 학교 현장의 무의미한 경쟁과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고 영어 사교육을 억제하며, 의사소통 중심의 수업 활성화 등 학생들의 실제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학교 영어교육이 정상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변별력을 높이기보다 본래 수능의 목적인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절대평가로 전환했다. 하지만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등급이 막연하게 설정돼 기존의 상대평가 9등급과 다를 바 없고 단지 상당히 많은 고득점자를 배출하는 결과만 초래했다.

이영식 | 한남대 명예교수 전 한국영어교육학회장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1등급 비율을 살펴보자면, 2018학년도 10%, 2019학년도 5.3%, 2020학년도 7.4%, 2021학년도 12.7%로 나타났다. 이러한 1등급 비율은 수능 영어 절대평가 이전의 상대평가 1등급 평균 비율 4.6%와 대조된다(2014학년도 4.9%, 2015학년도 4.5%, 2016학년도 4.6%, 2017학년도 4.4%).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 영어시험은 수험자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고부담 시험이므로 점수 기준이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수능 영어능력 절대기준의 명확한 설정 없이 수능 영어에 절대평가를 실시하다 보니, 수능 국어 및 수학과 달리 영어영역의 난이도가 지나친 널뛰기를 하면서 절대평가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렇게 신뢰하기 어렵고 변별력이 없는 쉬운 수능 영어시험의 결과가 대학입학 전형 자료로 합당하지 않으므로, 상당수 대학들은 수능 영어시험 성적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타 과목의 수능시험 성적을 우선 고려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현장에서도 영어 과목을 경시하고 다른 과목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결국 국어와 수학과 같은 타 과목에서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고, 오히려 사교육 총량은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수능 영어 절대평가를 통해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게 되면 자기 전공영역을 영어로 공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좌절감을 겪기도 한다. 또한 현재와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대부분의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영어로 나오고 있는데, 영어 사교육을 받지 않거나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없는 우리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러한 영어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

특히 현재 세계의 여러 국가들이 한국의 우수한 기술을 필요로 하여 우리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초청되거나 파견되어 일하고 있는데,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인해 자신의 전문분야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발견되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중국·일본·대만·베트남 등은 젊은 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교육을 강조하고, 영어 표현력 위주의 대규모 국가시험을 개발하거나 시행하고 있다. 우리와 크게 대조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영어교육을 받고 영어 시험을 치르는 우리 젊은이들의 국제적 역량이 심히 우려된다.

이영식 | 한남대 명예교수 전 한국영어교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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