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한국과 미국의 '통합정치' 실험
바이든 '두동강난 美' 통합 외쳐
양국 정가 "희망고문" 회의론 불구
통합·포용 시도 자체 평가 받을만
새해 한국과 미국의 정국 키워드는 ‘통합정치’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악몽의 한 해를 보낸 뒤 맞은 새해에 한·미 양국 정치 지도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통합의 불씨를 살려내고자 꿈틀거리고 있다. 한국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국민통합’을 내세워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새해 대국민 메시지도 통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유례없는 대선 불복으로 두 동강이 난 미국을 통합하겠다는 게 바이든 당선인의 새해 비전이다.
그렇지만 이 대표나 바이든 당선인은 성패를 떠나 정치 지도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는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출범했지만 집권 5년차를 맞아 더는 감내하기 어려운 분열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도 남북전쟁 당시처럼 둘로 갈라진 미국에서 새 정부를 꾸리면서 줄잡아 절반가량인 ‘트럼프 랜드’를 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 양국의 통합정치 실험은 반드시 거쳐야 할 민주정치의 과정이고, 성패의 열쇠는 여전히 국민이 쥐고 있다.
이 대표와 바이든 당선인이 야당,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에게 올리브 가지를 내밀려면 무엇보다 먼저 지지층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대표가 전직 대통령 사면을 관철하려면 최종 결정권자인 문 대통령과 그의 열혈 지지 세력인 ‘문파’의 협력을 얻어내는 데 성공해야 한다. 이 대표가 사면론을 꺼내기에 앞서 문 대통령과 사전교감을 나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 대통령이 사면에 동의해도 지지층과 국민이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바이든 당선인도 대선 승리 이후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여권 내부의 노선 투쟁을 이겨내야 한다.
이 대표가 통합의 정치를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고, 이를 차기 대권의 동력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바이든 당선인의 일관된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20대에 상원의원에 당선돼 36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그 후 버락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으로 8년을 재임한 뒤 트럼프 대통령 재임 4년간 쉬었다가 다시 78세의 나이에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워싱턴 정가의 ‘붙박이’이고, 미국의 기성 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바이든 당선인에게 신선미가 있을 수 없다. 대신 그가 내세우는 무기는 극도의 혼란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경륜’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줄곧 온건·중도 노선을 고수했다.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내 좌파의 거센 도전을 받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민주당의 내부 결속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내각 구성을 하면서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당 내 좌파 진영 인사를 중용하라는 압박을 받았으나 단호히 거부했다. 되레 민주당 내부보다는 대선 불복 입장을 고수하는 ‘다이 하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 및 공화당을 겨냥한 내각을 구성했다. 보수 성향의 월스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당선인이 ‘중앙에 깃발을 꽂았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 처벌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랜드’에 내민 올리브 가지는 곧 시들어버릴 가능성이 큰 게 현실이다. 하지만 통합정치 시도는 그 자체로 역사의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 올리브 가지가 시들어가는 과정 역시 이 대표 등 한국 정치 지도자들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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