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찢긴 '메탄 저장고', 북극 온난화 부채질했다

이정호 기자 2021. 1. 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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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스웨덴 북부 마을 ‘아비스코’의 영구동토층. 최근 북극권 영구동토층에 매장된 메탄가스가 지진 충격으로 방출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네이처 컨서번시’ 제공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강렬한 햇볕 아래에서 물장구를 치고 허리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첨벙첨벙 걸어 다닌다. 주변 모래톱에는 파릇한 풀들이 듬성듬성 자란다. 러시아 북극권 도시인 베르호얀스크의 지난해 여름 모습이다. 베르호얀스크에선 6월20일 낮 최고기온이 섭씨 38도를 찍었다. 같은 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10도 가까이 낮은 29.7도였다. 과학계에서 진단하는 북극 더위의 가장 큰 이유는 인간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이다.

■ 동토층·하이드레이트서 메탄 ‘폴폴’

지난 100년간 일어난 강진에
영구동토층 파괴돼 틈 생겨
메탄이 대기로 튀어 나가

그런데 북극 온난화 원인이 이뿐만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말 러시아 모스크바물리기술연구소(MIPT)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지오사이언스’를 통해 북극권에서 지난 100여년간 일어난 규모 8.0 이상의 강진이 온난화를 부채질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의 핵심은 지진이 만든 충격이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능력이 20배나 강한 기체인 메탄의 ‘자연 저장고’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저장고 중 하나는 ‘영구동토층’이다. 지진 충격이 연중 꽁꽁 언 영구동토층을 깨뜨리면서 메탄이 대기로 튀어 나가도록 틈을 벌렸다는 뜻이다.

연구진이 지목한 또 다른 저장고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다. 낮은 온도와 높은 압력이 유지되는 북극권 해저에 다량 분포하는 고체인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겉보기엔 평범한 눈덩이다. 하지만 주성분이 메탄이고 특유의 가연성 때문에 ‘불타는 얼음’으로 불린다. 가스 하이드레이트 가장 바깥쪽은 얇은 수분막이 감싸는데, 두께가 1000분의 1㎜에 불과하다. 지진 충격으로 수분막이 부서지면서 방출된 메탄이 북극권 온난화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 강진 20년 뒤 기온 ‘껑충’

알류샨 열도서 강진이 난 뒤
충격파가 암석을 타고 이동
20년 뒤에 북극권 기온 급등
이산화탄소 증가와 기온 상승
추세가 잘 안 맞은 이유 규명

연구진은 북극 온난화와 지진을 어떤 근거로 연결했을까. 열쇠는 이산화탄소 증가와 기온 상승 추세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은 데 있었다. 지난 100여년간 언덕길을 오르듯 꾸준히 증가한 이산화탄소와는 달리 북극권 기온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한 번, 1980년대부터 현시점까지 또 한 번 계단처럼 껑충 뛰었다. 게다가 급격하게 기온이 뛴 뒤에는 갑자기 추워지는 널뛰기 현상도 나타났다.

연구진은 북극권 주변의 각종 자연 관측 자료를 분석했다.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 외 다른 변수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짚어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목된 게 바로 지진이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밧줄처럼 잇는 태평양 섬인 알류샨 열도에서 규모 8.0 이상 강진이 나고 약 20년이 흐른 뒤 북극권 기온이 크게 올라가는 흐름을 발견한 것이다. 알류샨 열도는 북극권 지진을 통제하는 맨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연구진 분석에 따르면 알류샨 열도에서 발생한 강진 충격은 지하 암석을 타고 1년에 100㎞씩 천천히 이동했다. 알류샨 열도에서 영구동토층과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집중된 지역까지는 대략 2000㎞이다. 지진이 일어나고 북극권의 기온이 급격히 오르기까지 20년의 시차가 생긴 이유도 규명된 것이다.

■ “그래도 온난화 주범은 인간”

하지만 연구진은 논문에서 “지진이 북극과 지구의 온난화를 만드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연구는 인간에 의한 온난화라는 현상에 추가되는 보조적인 근거라는 얘기다. 자칫 온난화를 자연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시각을 경계한 것이다.

지진처럼 예기치 못한 이산화탄소 방출 요인에 대응하도록 발전소 굴뚝 등에서 나오는 탄소를 잡아내 지하에 매설하는 연구를 확대하는 건 어떨까.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이라고 부르는 이 방법은 화석연료를 쓰면서도 이산화탄소를 줄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기술적 완성도가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 게 문제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는 “CCS 기술이 제기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확실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차라리 개발에 드는 비용을 신재생에너지나 친환경차를 늘리는 데 쓰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는 근본적 대책의 실천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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