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느끼는 신경세포는 '면역 형성 지원군' [신경과학 저널클럽]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2021. 1. 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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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 몸에서 신경계는 외부 환경에 대한 정보를 받아 감각을 형성하고 기억과 감정,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근육을 통제해 운동 능력을 만들고, 호르몬의 분비나 체온 등 생리적인 기능도 조절한다. 이는 중·고등학교 생물 교과서 수준에서 흔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최근 과학의 발전은 신경계가 우리 신체에서 일어나는 더 많은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면역계도 신경계와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면역계 작동의 출발점은 면역세포의 형성이다. 다양한 종류의 면역세포는 뼛속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에서 생겨난다. 면역세포는 우리 몸 곳곳에서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조혈모세포가 골수를 벗어나 면역세포들로 성숙해야 할 여러 위치를 향해 이동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간혹 조혈모세포가 뼈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골수이식수술의 성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미국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폴 프레넷 교수는 조혈모세포의 이동이 통증을 느끼는 통각신경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먼저 생쥐의 뼛속에도 신경이 지나간다는 점에 주목했고, 이 신경이 어떤 종류인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뼛속을 지나는 신경은 ‘CGRP’라는 유전자의 발현 여부로 판별되는 통각신경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통각신경은 주로 피부 아래나 잇몸 등에 분포하는데, 찔리거나 베이는 등 기계적 상처나 뜨거운 물체에 데었을 때 이를 감지해 두뇌로 ‘아픔’을 알려준다. 골수가 아픈 느낌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뼛속 통각신경의 존재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통각신경의 역할을 알아내기 위해 프레넷 교수 연구진은 먼저 신경 독소를 사용해서 통각신경만을 없애봤다. 그 결과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의 수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혈액 중 조혈모세포 수는 줄었다. 조혈모세포의 이동 기능이 약화돼 혈액 중의 조혈모세포 수가 감소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였다.

그렇다면 통각신경은 어떻게 조혈모세포의 이동을 초래할까. 통각신경은 통증 전달 과정에서 신경펩타이드이기도 한 CGRP를 통해 다음 신경세포로 통각 정보를 전달한다. 이에 착안해 CGRP를 생쥐에게 주사해봤다. 그러자 조혈모세포의 이동이 촉진됐고, 반대로 조혈모세포에서 CGRP를 감지하는 유전자를 제거했을 때는 이들의 이동이 감소했다. 즉 CGRP가 통증을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하는 것처럼 조혈모세포에 직접 작용해 이들의 이동을 촉진한 것이다. CGRP 주입은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생쥐에서도 세포 이동을 촉진했고, 기존에 쓰이고 있던 약물과 병행했을 때 세포 이동을 더욱 촉진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결과를 보였다.

그렇다면 통각신경이 원래 가지는 기능과 조혈모세포 이동 촉진 기능은 어떻게 연결될까. 골수를 꼬집거나 찔러서 아프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연구진은 통각신경을 활성화할 수 있는 화학 자극에 주목했다. 기계적 상처뿐 아니라 뜨거운 온도가 통증을 일으키는데, ‘TRPV1’이라는 유전자는 열로 인한 통증을 감지한다. TRPV1은 우리에게 친숙한 화학물질에도 반응해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데, 바로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다. 연구진은 캡사이신을 섞은 매콤한 사료를 쥐에게 먹이고 조혈모세포의 이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쥐 몸속 조혈모세포의 이동이 활발해졌다. 캡사이신의 능력이 사람에게도 적용될지 이 연구에서 직접 실험하지는 않았지만, 통증을 완화할 목적으로 TRPV1의 활성제를 임상에서 사용했더니 조혈모세포의 이동이 증가할 가능성이 엿보였다고 한다.

신경과학은 이처럼 다른 생명의 원리들과 깊게 연결돼 있으며, 이에 대한 앞으로의 연구가 인체에 대한 종합적 이해에 기여할 것이다.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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