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을 깃털처럼 여기는 게 정상인가"
[경향신문]
국민의힘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주장이 나온 이후 속내가 복잡하다. 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감안하면 환영해야 하겠지만 외연을 확장해야 할 중도층을 고려하면 앞장서서 찬성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특히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사과를 두고 균열을 겪었던 만큼 여권의 ‘정치적 노림수’도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3일 사면에 ‘당사자 반성’ 등의 조건을 달면서 한발 물러서자 “비겁한 행태”라며 이 대표를 거세게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현재까지 사면 주장에 대한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가 잇따라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당의 공식 입장은 없다. 4일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할 가능성이 있지만 거론하더라도 원론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면’의 의사결정 주체인 청와대가 언급한 것도 아니고 여당 대표가 앞으로 제안하겠다는 수준인데 관련 입장을 낼 상황이 아니라는 게 당의 설명이다. 배준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면 언급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이 대표의) 건의가 이뤄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당 대표가 먼저 언급한 사안에 괜히 나섰다간 비판만 받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면론에 말을 보탰다가 사과의 진정성을 해칠 우려도 있다. 당이 지지율 상승세를 탔고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가려는 찰나에 다시 중도층이 외면할 수도 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통적 지지층을 고려하면 여권에서 제기된 ‘사면’ 주장을 마냥 모른 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면을 하겠다고 말한 것도 아니니 지금 국민의힘으로선 한발 물러서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선 이날 민주당에서 ‘당사자 반성’을 사면 추진 조건으로 달자 이 대표를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배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 문제를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는 모습이 과연 정상인가”라고 말했다. 친박(박근혜)계 박대출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겁하고 잔인한 처사다. 들었다 놨다 뭐하는 행태인가”라면서 비난했다. 친이(이명박)계 장제원 의원도 “사면 문제를 청와대 교감 없이 던져본 것이라면 대표 자격이 없는 것이고, 교감을 갖고 던졌는데도 당내 이견을 조율하지 못했다면, 이 대표는 물론이고 문 대통령 또한 레임덕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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