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이 서려있는 성당

허연 2021. 1. 3. 16: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답사기 '성당 평전' 출간
"14세기 초. 이탈리아 시에나의 신앙인들은 미사 시간 내내 신비로움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범어사 탱화 앞에서 수없이 절을 했던 것처럼, 중세 시에나의 신자들도 두초의 제단화 '마에스타' 앞에서 수없이 손을 모았을 것이다."

최근 출간된 '성당 평전'(시공사 펴냄)의 저자는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를 보면서 어머니가 사찰의 탱화 앞에서 기도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인간의 믿음과 영성은 경건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과 건축물을 만들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영성의 미학이 사찰에 있었다면 유럽은 당연히 성당에 있다. 특히 로마 가?릭이 굳게 뿌리 내린 이탈리아의 성당들은 그 자체가 '영성의 기념물'이다.

이 책은 수도회 신부 최의영과 칼럼니스트 우광호의 합작품이다. 책은 이탈리아 각 도시의 중앙광장에 랜드마크로 버티고 선 성당에서부터 골목골목에 보석처럼 숨어 빛나는 작은 성당들 80곳을 답사해 소개한다. 각 성당에 얽힌 사연들은 40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천년의 인간사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저자는 베네치아의 성당을 이렇게 소개한다.

"살기 위해 갯벌 위에 말뚝을 박고 집을 지었다. 갯벌 위에 듬성듬성 보이는 땅에 흙을 보태 섬을 만들었고, 섬과 섬 사이는 다리로 연결했다…집 지을 땅도 부족했지만, 베네치아인들은 간척을 통해 여유 땅이 생기면 가장 먼저 성당부터 지었다…그 유배의 땅이 그들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유배의 땅이자 고난의 현장이었던 베네치아를 처음 개척한 사람들은 오로지 영성의 힘으로 역경을 견뎠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난의 갯벌에 쌓아올린 성당이 훗날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명소가 될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당 평전'에 소개되는 이탈리아 성당들은 5년에 걸친 발품의 산물이다. 책은 피렌체·나폴리·베네치아·바리·밀라노 등 크게 5개 지역으로 구분돼 구성됐다. 전설적인 피렌체 대성당, 베네치아 바다에서 솟아난 듯한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트 성당,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대성당, 135개의 첨탑과 3000여 개 조각상의 밀라노 대성당 등 다양한 성당의 면모가 담겨 있다. 동시에 피렌체의 서민 성당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이 된 아레초 성당 등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성당도 등장한다.

저자들은 때로는 인물에 대한 평전을 쓰듯, 때로는 성지순례를 안내하듯, 때로는 역자학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듯 책을 써내려간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둘러본다는 것은 성당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온 유럽 서민들의 생생한 삶을 엿보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우리의 돌잔치처럼, 새로 태어난 아기의 세례를 성당에서 받았고, 일상의 대소사를 성당에서 치렀다. 전쟁이 나거나 자연재해로 목숨이 위태로워졌을 때는 종탑으로 피신했다. 성당은 그들이 삶을 헤쳐나가는 실질적인 기반이었고, 기쁨과 슬픔을 이웃과 나누며 신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