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년 "어느 가을날, 제 안의 불안이 음악으로 터져나왔어요"
휴대전화 벨 소리에 잠을 깼다. 친구였다. 전화기 저편에서 뭔가 슬픈 이야기가 들려왔다. 20대 청춘의 혼란과 불안, 자신이 처한 어려움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멍하게 누워 있었다. 잠결에 받은 전화였던 탓에 친구의 이야기는 어렴풋했다. 하지만 슬프고 두려운 감정만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오후 6시, 그렇게 낮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으론 어둠이 스미고 있었다.
통기타를 배 위에 올려놓고 누운 채 기타 줄을 퉁겼다. 떠오르는 대로 멜로디와 노랫말을 써나갔다. “어디쯤 왔을까 우리의 밤은/ 여길까/ 난 가끔, 가끔 정말 모든 게 무서워 눈을 꼭 감아버려/ 덜컹덜컹 지나간 오늘의 언덕/ 저무는 하루 토해낸 공허함// 자라나는 절망은 나를 먹고 피어나 밤으로 가네/ 밤으로 쏟아지네.” 노래엔 ‘심야행’이란 제목을 붙였다. 2018년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전화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이 ‘트리거’(방아쇠)가 됐다고 할까요. 제 안에 있던 두려움, 불안이 음악으로 터져 나왔어요.” 지난달 27일 온라인으로 만난 그룹 새소년의 황소윤(보컬·기타)이 말했다. 유수(드럼)와 박현진(베이스)은 다른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심야행’은 새 앨범의 기본 정서가 됐다. 새소년은 이 곡을 시작으로 ‘집에’ ‘이방인’ ‘눈’ ‘엉’ ‘덩’ ‘이’ 등 모두 7곡을 차례로 써내려갔다. 각각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주제로 한 노래들이다. 그리고 이를 <비적응>이란 이름으로 한 앨범에 묶은 뒤, 지난해 2월 세상에 내놨다. 앨범을 내면서는 씨제이(CJ)문화재단의 음악가 지원 사업인 ‘튠업’의 도움을 받았다. “앨범 타이틀을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노래에 담은 감정과 관념을 어떻게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그러다가 ‘비적응’이란 말이 불현듯 떠오른 거죠.”
비적응은 ‘부적응’과 달리 주체성을 담은 표현이다. 부적응이 사회나 일정한 조건에 ‘적응하지 못함’을 의미한다면, 비적응은 스스로 ‘적응하지 않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데, 사회생활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 있잖아요. 그 간극을 고민한 거죠. 적응에 맞서는 대안적인 삶의 태도가 뭘까. 사회의 기준과 시선이 아니라 내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고민이 담긴 강렬한 사운드의 결과물에 국외 평단이 주목했다. 미국 주요 음악 매체인 <피치포크>는 지난달 15일 <비적응>을 ‘올해의 록 앨범’으로 선정했다. 전세계 록밴드 음반 가운데 35개를 뽑았는데, <비적응>이 포함된 것이다. 35개팀 가운데 국내 가수는 새소년이 유일하다. <피치포크>는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 같은 세계적인 팝 그룹이 지배하는 음악 시장에서 이 앨범은 제목에 담긴 뜻처럼 급진적”이라며 “새소년은 존경과 예의를 기대하는 사회에서 젊고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예술가는 어떠해야 하는지 물음을 던진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또 다른 음악 매체인 <페이스트 매거진>도 같은 달 23일 ‘올해의 록 앨범 40선’에 이 앨범을 꼽았다.
새소년은 한국 록밴드에서 드문 존재다. 여성 로커가 이끄는 밴드는 자우림과 이들 정도가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록밴드의 중심에서 주목받는 여성이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은 로커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로커의 ‘마초성’과 ‘카리스마’ 등과 같은 고정관념이 강하죠. 이를 좀 깨고 싶어요. 밴드 활동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충분히 즐길 수 있거든요.”
밴드 이름에 ‘소년’을 붙인 것도 보컬의 성별을 의도적으로 가려, 고정관념을 가진 이에게 일종의 충격을 주려는 뜻에서였을까. “아니요. 밴드 이름은 (1970~80년대) 잡지 <새소년>을 접하고, 그 단어가 주는 힘이 좋아서 따왔을 뿐이에요.(웃음)”
그는 초·중·고 학창 시절을 대안학교에서 보냈다. 이곳에서의 배움을 통해 그는 세상을 좀 더 주체적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었을 터다. “9~10살 때 학교에서 ‘차별에 저항하라’는 문장을 배웠으니까요. 저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말들이 제게 너무 무겁고 강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의 저를 만든 중요한 역사죠.”
앞으로의 꿈이나 포부를 물어보자 “딱히 없다”고 했다. 다만, “나중에 나이 들어 친구들과 한마을에 모여 살고 싶다”는 소년(소녀) 같은 답이 돌아왔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큼 인생에서 큰 축복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늙었으면 좋겠어요.” 청춘들이 꿈을 꾸기 어려운 시대, 비적응의 궁극적 목적은 나 홀로 동떨어져 사는 삶이 아닌, 주체성을 회복한 ‘화합’이고 ‘연대’인가 보다. 새소년은 조만간 새 싱글 앨범을 내놓을 계획이다. 심야행을 마친 이들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한해의 첫머리에서 새소년의 새날도 다시 시작되고 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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