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뉴 아메리카] 미국에서 폴리페서가 되려면

한겨레 2021. 1. 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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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 지명자. AFP 연합뉴스

유혜영 ㅣ뉴욕대 정치학과 교수

20일 취임을 앞둔 조 바이든 당선자의 인사에선 여성, 유색인종의 비중을 높여 다양성을 키우려는 노력이 보인다. 30대 교통부 장관 등 젊은 인물의 발탁도 눈에 띈다. 교수 출신 인사들도 주요 보직에 지명됐다.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재닛 옐런이 대표적이다.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인 옐런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여성 최초로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맡았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자 미국 재무부 232년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된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으로는 프린스턴대 경제학자이자 정책대학원 학장인 시실리아 라우스 교수가 지명됐다.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백악관 경제자문위를 이끌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 가운데는 이른바 ‘폴리페서’들이 더러 눈에 띈다. 정치권을 오가는 교수(출신)를 폴리페서라 부른다면, 나아가 선출직 너머 임명직 등까지 포함하면 미국에도 폴리페서가 꽤 많다. 그렇다면 교수의 정치 참여를 둘러싸고 미국에서도 ‘폴리페서 논쟁’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과 비교해 미국에서의 폴리페서 논쟁은 미미한 수준이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미국에선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학자가 되지 않는 한 폴리페서가 되기 어렵다. 재닛 옐런 교수의 경우 실업과 노동 시장을 거시경제 시각에서 연구하는 학자로 이름을 날렸고, 연준에서 연구와 정책을 접목해 미국의 통화정책을 주관했던 경험도 있다. 시실리아 라우스 교수 역시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대 조교수로 임명된 뒤 노동경제학자로서 주요 경제학 저널에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학자로서의 명성과 리더십으로 정책대학원 학장까지 올랐다. 과거 미국 정부에서 일했던 다른 ‘폴리페서’들도 비슷하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자문이었던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이나 재정정책과 같은 공공경제학에서 큰 업적을 인정받은 학자였고,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은 오스턴 굴즈비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도 세금, 인터넷의 등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경제와 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관련해 중요한 논문들을 썼다. 이렇게 전문가들 사이 경쟁이 매우 치열한 미국에선 아무나 폴리페서가 될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교수가 맡는 역할이 본인의 전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시 미국 국무부 내의 싱크탱크에 해당하는 정책기획국의 국장을 지낸 스탠퍼드대의 스티븐 크래즈너 교수는 국제정치 이론과 안보 분야 전문가다. 오바마 행정부 때 같은 보직을 맡은 앤마리 슬로터 프린스턴대 교수는 국제법과 국제협력 분야의 전문가로 이 대학 정책대학원 최초의 여성 학장을 지낸 뒤 2009년 국무부에 들어가 연구와 정책을 접목해야 하는 일을 맡아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했다. 아무리 탁월한 업적을 가진 전문가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폴리페서들은 정부나 정치권에 가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선을 넘지 않는다. 어떤 전문가를 발탁해서 그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정책을 세우거나 고치는 시스템이 잘 갖춰졌기 때문에 폴리페서 관련 논쟁이 적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에선 폴리페서 논란이 종종 불거졌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관행을 무시하고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인물들을 주요 보직에 임명한 탓이다.

트럼프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고 더 나은 미국을 건설하겠다는 슬로건으로 당선된 바이든이 실력에 관한 한 논란이 없는 폴리페서를 적재적소에 임명해 더 나은 정책을 펼 수 있을까? 재무장관은 인사청문회 대상이다. 폴리페서의 실력을 검증해보는 것이 청문회의 재미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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