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개미 연구소] 주식 39억 던졌다가 다음날 35억 되산 큰손, 왜?

이경은 기자 2021. 1. 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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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개미 연구소] 14

2020년의 마지막 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재미있는 공시가 떴다.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신약 개발 기업인 메지온의 임진수 사내이사가 12월 28일에 주식을 39억원 어치 팔았다가 바로 다음 날인 29일에 35억원 어치 되사들였다는 내용이다.

똑같은 종목을 특정일에 왕창 뺐다가 하루 뒤에 다시 샀다니, 공시 내용이 흥미로워 자세히 살펴봤다.

메지온은 유데나필(Udenafil)이란 약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허가신청(NDA) 재접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장사다. 유데나필은 원래 발기 부전 치료제이지만, 선천성 심장 기형(단심실증) 때문에 폰탄 수술을 받은 환자의 생리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고 보고 신약 허가를 신청했다고 한다.

FDA 기대감 때문에, 메지온은 수년째 적자 기업이면서도 시가총액이 1조6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시총 기준으로는 코스닥 28위 기업이다.

실적이 주가를 정당화하지 못하는 기업일수록 공시 대상 임원들의 자사주 매매는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엉뚱하게도 주식을 하루 간격으로 수십 억 팔았다가 다시 샀다는 내용의 단기 매매 공시가 나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12월 28일은 배당 자격을 결정하는 날이지만 동시에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최대 33%)을 부과하기 위한 대주주 확정일이기도 하다”면서 “공시 내용만 보면 대주주 요건을 피하기 위해 28일에 보유 주식을 대량 처분해 7억원 어치만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메지온은 적자 회사여서 배당을 하진 않으니까, 결국 해당 임원은 대주주가 되어 거액의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두려워서 28일에 주식을 정리했고, 다음 날 다시 샀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주식으로 수익을 내는 것도 좋지만, 사고 팔 때의 세금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

연말이면 나타나는 세금 회피성 주식 매도 트렌드는 최근 10년 동안 반복되어 왔다.

3일 한국거래소에 의뢰해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1년 동안의 배당락일과 그 전날의 코스피 개인 순매수 금액을 살펴봤다. 배당락일은 배당금을 받을 권리가 없어지는 날이다.

그랬더니 최근 11년간 연속해서 배당락일은 개인 순매수였고, 바로 그 전날은 어김없이 개인 순매도였다. 특히 작년의 경우 배당락 전날인 28일은 순매도가 9400억원이 넘었지만, 배당락일은 개인 순매수가 2조2000억원에 육박했다.

‘배당락일은 개인 순매수, 배당락 전날은 개인 순매도'라는 일종의 공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어도 세무서에 세금 신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10억 대주주 기준도 그렇지만, 이자나 배당을 많이 받으면 해야 하는 종합소득세 신고, 더 나아가 소득 때문에 늘어나는 건강보험료 부담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계좌를 깨끗하게 비웠다가 다시 채우는 방식을 선호하는 자산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지온 임원 임씨는 주당 17만원 선에서 2만2849주를 팔았는데, 다음 날 사들인 2만주의 평균 매입 단가는 17만6000원으로 다소 높았다. 만약 물량을 팔지 않고 계속 보유했다면 1억3700만원 가량 평가 이익이 났을 테지만, 최대 33% 세율이라는 무시무시한 대주주 요건에선 벗어났으니 속은 시원했을 것 같다.

현재 국내 증시에서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요건은 개별 회사 지분 기준 10억원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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