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발사 기술 독립 선언한다

주영재 기자 2021. 1. 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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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첫 국산 누리호 올 10월 발사… 발사체 기술 자립 원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2021년 10월 발사되는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했다. / 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엔진을 포함해 3단으로 구성된 발사체 전체를 스스로 개발한 첫 국산 발사체에 해당합니다. 올해 계획된 시험발사가 성공한다면, 발사체 분야에서 첫 스페이스 헤리티지(우주 검증 이력)를 갖는 역사적인 일이 되겠고, 우주 발사체 기술 자립 원년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이복직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올해 10월 발사된다. 누리호는 정부가 2010년부터 총 1조9572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해온 한국형 우주발사체로, 1.5t급 실용위성을 고도 600~800㎞의 지구 저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게 된다.

발사체 기술 자립, 누리호 성공에 달려

당초 올해 2월과 10월 두 차례 발사일이 잡혀 있었지만 충분한 준비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1차 발사가 10월, 2차 발사는 2022년 5월로 조정됐다. 누리호는 추력 75t 엔진 4기를 결합(클러스터링)한 1단과 75t 엔진 1기의 2단, 7t 엔진 1기의 3단으로 구성된다. 현재 2단은 인증모델 조립을 완료했고, 3단은 인증모델 조립과 성능 확인까지 마쳤다.

발사 일정 조정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발사체의 1단부 개발이다. 가장 큰 추력을 내는 1단부는 클러스터링 된 구조로 체계 복잡성이 높아 인증모델 개발까지 분해와 재조립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극저온 환경에서 기체 건전성을 확인하는 시간도 더 필요했다. 고정환 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은 “국내는 아직 발사체 기술이 없어 한국형 발사체 사업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는 단계”라면서 “현재 1단 엔진 4기가 기체에 조립된 상태에서 잘 작동하는지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사체 기술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술로 활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기술’의 특성을 갖고 있어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따라 국가 간 기술이전이 제한된다. 나로호 발사 때도 기술이전이 이뤄지지 않아 러시아 엔진을 가져와 국내에서 발사했다. 로켓 엔진이 있는 곳에는 우리나라 우주센터인데도 접근이 불허됐다.

미·중·러·일·유럽연합 등 우주 선진국은 그들 간에만 기술을 공유한다. 자력으로 발사체 발사에 성공한 국가들만 국제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 고 본부장은 “결국 우리 스스로 어느 수준에 올라가지 않으면 그런 나라들과 기술을 교류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 소위 ‘우주 카르텔’에 입장할 자격을 얻게 되는 셈이다. 1.5t 이상을 우주에 쏘아올리는 발사체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6~7개국에 불과하다. 한국이 2013년 시작해 75t 엔진을 자력 개발한 것은 비록 미·러에 비하면 크게 뒤지지만, 발사체 기술 독립이라는 평가를 듣기엔 부족하지 않다.

한국형 발사체는 저궤도에 위성을 발사하는 용도라 또 다른 주요 우주 프로그램인 달 탐사 등에 쓰기엔 성능이 모자란다. 그래서 후속 사업으로 누리호의 성능 개량 사업이 예타 심사를 받고 있다. 고 본부장은 “한국형 발사체 개량형으로 달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서 “개량형은 82t 엔진으로 톤수는 큰 차이가 안 나지만 설계변경 등으로 ‘연비’를 개량해 발사체 성능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스페이스 시대, 경제성 확보 과제로 부상

한국형 발사체 사업이 시작된 때는 ‘뉴스페이스’가 본격화하기 전이다. 뉴스페이스란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시대를 말한다. 당시만 해도 발사체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올드스페이스)가 상식이었다. 그러나 10년 사이 스페이스X가 재활용 발사체로 발사단가를 낮춰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위성 제작과 발사장 운영까지 민간이 맡는 시대로 급변했다. 로켓 발사 성공으로 기술 보유국에 진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고가의 기술과 부품을 쓰는 방식이 틀렸다고 할 순 없다. 비용과 상관없이 보안이 중요한 군사·안보 분야의 경우 비싸더라도 한국형 발사체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상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충분한 발사 수요를 확보하기 어렵다. 민간에 기술을 이전해 우주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목표도 이루기 어렵다.

발사단가는 발사체 크기가 커질수록 줄어든다. 여러개 위성을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중대형 로켓의 경우 대개 1㎏당 2만달러 안팎이 든다. 스페이스X는 이를 5000달러 수준까지 낮추기로 해 가격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의 발사체 기술이 스페이스X 같은 파괴적인 혁신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중대형 발사체의 경제성을 높이고, 수요가 급증하는 소형 발사체 분야에서도 민관의 협업이 필요하다. 박재성 항우연 미래발사체연구단 단장은 “한국형 발사체가 발사에 성공해도 상업서비스의 빈도가 높지 않고 전체 위성 수요를 다 흡수하긴 어려워 이를 보완하기 위한 소형 발사체 기술 개발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단장에 따르면 미래발사체연구단은 3차원 프린터를 사용한 적층 제작 방식으로 비용을 낮추는 기술과 함께 추력 조절, 유도 제어, 공력 환경하에서 지상에 되돌아오는 비행 기술, 랜딩 레버를 전개해 지상에 착륙하는 구조개발 등 발사체 재사용에 필요한 선행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결국 급변하는 우주산업을 쫓아가려면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복직 교수는 우주 선진국이 거쳐간 ‘올드 스페이스’를 따라잡을 때까지는 정부가 동력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달에 인류를 보낸 아폴로 계획은 1969년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스무 배 정도를 투입했다”면서 “그렇게 수십년간 축적돼온 도전과 실패의 경험 없이 갑자기 뉴스페이스 시대에 편승할 묘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반도체 굴기를 주창하며 돈과 인력을 투입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최근 중국 사례에서 보듯이 하루아침에 투자만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대표적 기술 중 하나가 우주 발사체 기술”이라면서 “개발 리스크가 크고 시장성 또한 불투명한 우주 발사체의 개발은 위성 자력 발사와 우주 주권 확보를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스페이스 헤리티지가 충분히 쌓일 때까지 정부가 흔들림 없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일관되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독립적인 상설 의사결정기구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정열 부산대 항공우주공학과(로켓추진실험실) 교수는 우주기술 고도화를 위해선 정부 주도로 우주산업에 대한 수요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수요가 아직 부족해 지금은 모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국토부와 해양수산부, 국방부, 국정원 등 다른 부처에서도 주도적으로 위성 사업에 투자해야 위성 제작과 발사체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성장한다.” 우주 관련 정책에서 다른 부처를 통할할 수 있도록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나 대통령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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