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 한국증시]② 320조원 퇴직연금·공적기금, 대부분 예·적금에 방치

김소희 기자 2021. 1.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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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조원으로 커진 퇴직연금, 2019년 수익률 2%대
선진국은 주식 비중 40%… "ETF 장기투자 해볼만"
"100조원 넘는 공적기금, 외부위탁운용 활성화 해야"

지난해 코스피지수는 코로나 팬데믹을 뚫고 사상 첫 2800고지를 밟았다. 2011년부터 1800~2600선을 오르내리며 박스권에 갇혀 있던 증시가 2800을 넘어선 것은 ‘동학개미’로 불린 개인투자자의 역할이 컸다. JP모건 등 국내외 증권회사들은 2021년 증시가 가뿐히 3000선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하지만 증시가 장기적으로 꾸준히 우상향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개인투자자가 상승장을 기대하고 빚을 내 증시에 들어간 자금이 19조원을 넘었고 이런 자금들이 투자된 주식들은 조금만 주가가 하락해도 반대매매로 대량 매도물량이 나올 수 있다. 증시가 꾸준히 상승할 수 있는 방안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국민연금이 지난해 12월 16일 제10차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회의에서 지난해 수익률을 7% 내외 수준으로 전망했다. 예·적금 금리가 1%대 이하인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익률이다. 국민연금은 700조원대 자산을 등에 업고 노르웨이 국부펀드, 일본 공적연금과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과 같은 대형 기관 투자자가 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장 가능성 있는 기관 자금이 200조원대의 퇴직연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규모는 2019년 기준 221조2000억원에 달한다. 2016년 147조원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10년 후에는 700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덩치가 크지만 수익률은 미미하다. 2016년 1.58%에 불과했던 수익률은 2019년에 겨우 올라 2.25%를 기록했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사업자는 퇴직연금 운용 형태에 따라 세 가지 유형에 가입할 수 있다.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이다. DB형은 근로자가 받는 연금이 정해진 상태에서 사업자가 운용 이득이나 손실을 가져가는 제도다. DC형과 IRP는 근로가 직접 자산을 투자하고 운용 성과에 따라 퇴직금이 결정된다. 국내에서는 전체 가입자의 62.4%가 DB형이다.

최근 DC형과 IRP 가입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적극적으로 자산을 운용하지 않는 가입자도 많다. 이 경우 투자 자산은 대부분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방치’돼 있다.

국내 원리금보장형 투자 규모는 198조2000억원(89.6%)에 달하고 주식·채권 등에 해당하는 실적배당형 상품 투자는 23조원(10.4%)에 불과하다. 실적배당형 상품의 2019년 수익률은 6.38%에 달하는 반면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1.77%에 불과했다.

선진국의 자산 구성은 다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998년부터 2018년까지 20년 동안 연금 선진국의 퇴직연금 상품 구성을 보면 주식이 41%였고, 채권 31%, 대체투자 26% 등의 순이었다. 원리금보장형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을 저이율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현재 30대를 중심으로 주식에 단기적으로 직접투자하는 양상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퇴직연금을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자산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경우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제(사전지정운용제도)’와 같은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디폴트옵션제는 DC형 가입자가 일정 기간 스스로 자산을 운용하지 않으면 사업장이 지정한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제도다. 각 사업장이 장기 분산 투자 상품을 선택하면, 퇴직자는 이를 따르면 된다. 운용사는 수익률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니 원리금보장형 상품보다는 자연스럽게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게 된다.

이미 호주에선 2013년부터 DC형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100개 이상의 연기금이 디폴트옵션을 가입자에게 제안하면, 가입자가 별다른 지정을 하지 않을 경우 의무적으로 해당 상품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상품의 안정성은 금융감독청의 인가를 통해 담보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2018년 호주의 사적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주식 투자 비중은 43%에 달한다. 이 기간 사적연금 연평균 수익률은 8.7%였다.

이경희 상명대 글로벌금융경영학부 교수는 "디폴트옵션 체계가 성과를 내기 위해선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면서 "가입자가 직접 선택하지 않은 상품인 만큼 책임 있는 자산 운용을 기대할 만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중퇴기금)’는 중소기업 퇴직연금의 주식 투자 유입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다. 지난해 퇴직연금 가입 대상 1093만명 중 561만명은 미가입 상태로 가입률은 51%에 불과하다. 미가입 근로자 70%는 100인 미만의 중소기업 근로자에 해당한다.

중퇴기금은 이런 중소기업의 퇴직연금을 모으는 수단으로 기금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 기금은 국민연금처럼 운용수탁사를 선정해 집합적으로 운용한다. 대기업과 달리 전문성이나 비용 등의 문제로 운용사를 구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의 한계를 반영한 것이다.

공적기금도 주식 시장 유입을 기대할 만한 기관 투자자 가운데 하나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19년 발간한 ‘국내 OCIO 제도 정착을 위한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정부 부처의 공적기금은 60개를 넘는다. 국민연금을 제외하더라도 전체 기금 규모는 100조원을 상회한다.

조선DB

전문가들은 공적기금을 민간 영역에 맡겨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안정적 투자처를 선호하는 연기금투자풀 대신 외부 자산운용사, 증권사에 자산을 위탁 운용하는 것이다.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아웃소싱한다는 의미로 외부위탁운용(OCIO·Outsourced Chief Investment Officer)라고도 불린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포트폴리오를 다변화시킨다는 차원에서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환 위험이 있을 뿐더러 국내에도 주목할 만한 세계적인 기업들이 많다"며 "전문적인 투자자 유치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 등을 고려하면 OCIO를 활용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최근 OCIO를 도입하는 공적기금도 늘어나는 추세다.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방폐기금)은 2018년 연기금투자풀과는 별도로 재간접위탁운용사를 두는 OCIO를 도입해서 주목을 받은 바가 있다.

다만 공적기금이 OCIO를 이용하는데 현실적인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관련 기금인 공적기금 특성상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중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자금을 위탁하는 기금 입장에서 OCIO가 효과적인 운용 수단으로 인식되려면 양호한 수익성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구축이 제공된다는 신뢰가 확보돼야만 한다"고 했다.

최 센터장은 "단기적인 성과 평가 기준을 장기적이 기준으로 바꿔줘야 한다"며 "설령 올해 연초에 발생한 코로나 충격이 11월에 있었다면 장기 투자를 하지 못하고 중간에 손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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