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세진다' 소액주주들이 기업에 맞선 까닭

김찬호 기자 2021. 1. 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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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수익 위한 소액주주운동 활발… 임시주총 소집 등 집단행동 펼쳐

2020년 3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진단키트 제작업체 씨젠을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코스피지수가 2900에 육박하며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2020년 마지막 장인 12월 30일 종가는 2873.47포인트였다. 코로나19 충격으로 폭락했던 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마감한 것이다. 증시의 드라마틱한 상승 배경에는 이른바 ‘동학개미’가 있다. 폭락한 증시를 틈타 유입된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에서 47조5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종전 최대치보다 7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커진 것은 투자 규모만이 아니다. 개인투자자들은 보유 종목에 대한 목소리도높이고 있다. 이들은 투자한 기업에서 주가 하락이 발생한 경우 집단행동도 불사한다. 면담, 임시주주총회 소집, 소송 등 방법도 다양하다. 수익을 목표로 한 소액주주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모이는 소액주주들

코로나19 진단키트 제작업체 씨젠은 지난해 주가가 32만2000원까지 상승했다. 저점 대비 10배 이상 상승이다. 하지만 백신 개발 소식과 함께 주가는 지난해 12월 30일 기준 고점 대비 30% 넘게 하락했다. 이에 일부 소액주주들은 회사에 주가 관리 등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씨젠 소액주주들이 집단행동을 준비하는 곳은 인터넷 카페다. 회원수만 8800여명에 달한다. 몇몇 회원은 카페를 대표해 지난해 12월 4일 씨젠 측과 1차 면담을 진행했다. ‘공매도’, ‘배당’, ‘무상증자’, ‘자사주 매입’ 등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의견이 전달됐다. 이와는 별도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위한 절차도 시작됐다. 상법 제366조 1항에 따르면 발행 주식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의 주식을 가지면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카페 운영진을 중심으로 변호사 선임이 완료됐고, 의결권 위임도 진행 중이다. 카페 매니저 조상철씨는 “발행 주식 총수의 3%를 모으는 데 3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며 “총 80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했고, 위임된 주식수는 80만주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1월 말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위한 주식을 확보했음에도 위임은 계속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주식을 확보해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씨젠 소액주주들의 행동에는 주식회사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반영돼 있다. 조씨는 “지난해 4월쯤에 씨젠이 해외에서 진단키트 승인을 받아 이를 홍보해달라고 했더니 ‘우리가 왜 그런 것을 해야 하느냐’는 답을 들었다”며 “공매도 등으로 주가가 하락해도 회사의 대응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지적도 알고 있다”며 “씨젠처럼 우수한 기업이 주주의 요구를 수용해 함께 성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액주주 김민성씨는 “씨젠 측은 소액주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지만, 전혀 체감할 수 없다”며 “회사의 장기적인 방향이 시장에 공유되지 못하며 주가도 하락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의 집단행동에 씨젠 측은 “주주들이 법적 절차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는 입장이다. 씨젠 측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며 “주주와 회사가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회사의 방안과 단기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주주 간의 현실적 괴리는 어쩔 수 없다”며 “소액주주들이 요구하는 무상증자 등은 합리적인지 의문이 있기에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한편 씨젠은 지난해 12월 28일 임원들의 장내 주식 매수를 공시했다. 회사 측은 “주주들의 주가 방어 요구에 대한 대응은 아니다”면서도 “이러한 행보가 주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긍정적으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씨젠 측이 주식을 매수하면 시장에서는 주식수가 줄어들어 주가가 부양되는 효과가 있다.

소액주주들이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사례는 또 있다. 현대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은 현대오토에버, 현대오트론과의 흡수합병이 불공정하다고 반발한다. 합병가액이 장외주식가격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송 등 대응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LG화학의 물적 분할 당시에도 소액주주들은 국민청원, 전자투표 등을 통해 반대 운동을 펼친 바 있다.

씨젠 소액주주들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위해 주식 의결권 위임을 하고 있다. / 씨젠주주연합회 화면 캡처

전문가 “기대 반, 우려 반”

전문가들은 소액주주들의 적극적인 행동에 “나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소액주주가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며 “소액주주들이 모여 임시주주총회를 여는 등의 정당한 권리행사는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기관들의 막대한 수익은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에서 비롯된다”며 “개인투자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보호가 없는 상황에서 소액주주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범진 순천향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배주주의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소액주주의 이익이 줄어드는 사건들을 목격해 왔다”며 “소액주주들이 경영 참여나 집단소송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액주주가 기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투자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시장이 옛날과는 문화 자체가 변하고 있다”며 “개인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임시주주총회를 여는 목적이 주주 가치 제고나 주가 부양이라면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반면 우려도 있다. 소액주주들의 개입이 회사경영 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소액주주가 과도한 배당 등의 사익만 요구하면 일시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그 피해는 기업과 주주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 문제는 기업이 풀어야 할 숙제다”며 “주주와 소통을 하고 거기에 따른 적절한 경영 정책이나 대응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소액주주가 지분 3%를 모으기 위해서는 의결권 위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문제도 있다. 소액주주들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임시주주총회를 준비하는데 이때 들어가는 비용을 투명하게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 사기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위험 속에서도 소액주주들은 모이고 있다. 씨젠 소액주주 김씨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은 주주들의 불만을 전하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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