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대체한 재테크·자기계발

구환회 2021. 1. 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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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출간된 〈목소리를 드릴게요〉의 정세랑 작가는 “2020년은 SF 단편집을 내기에 완벽한 해가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 1년간 세상은 한 편의 SF 소설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열린 2020년대의 첫해,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독자들은 어떻게 책을 통해 세상과 싸우고, 화해하고, 공존했는지 네 개의 분야를 중심으로 되짚어봤다(순위 등 모든 판매 데이터는 교보문고 판매 기준이다).

비즈니스 분야 (경제·경영, 자기계발)

비즈니스 서적은 2020년 베스트셀러를 살피며 가장 먼저 짚어야 하는 분야다. 경제·경영은 특히 올해 출판 장르 가운데 가장 성장한 분야 중 하나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그에 따른 경제 충격의 영향으로 위기감을 느낀 개인이 ‘투자’에 주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재테크 도서가 휩쓸었다. ‘최상위 부자가 말하는 돈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달린 〈돈의 속성〉은 이 분야 판매량 1위,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이어 10위권에 든 〈존 리의 부자 되기 습관〉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 하기〉 〈재무제표 모르면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 마라〉 등도 제목에서부터 뚜렷한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재테크 책들과 달리 자기계발 분야 1위 〈더 해빙〉은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저자가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법칙으로 제시한 ‘해빙(Having)’이라는 개념에 불안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수많은 독자가 열광했다. 이 책은 2020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지난해 1위가 여행 장려 도서 〈여행의 이유〉임을 떠올리면, 코로나가 가져온 1년 사이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라’고 적은 〈김미경의 리부트〉도 코로나19 시대를 대변하는 자기계발서 중 하나다.

인문·사회·교양 분야 (인문, 정치·사회, 역사·문화, 예술·대중문화)

인문 분야 1위는 ‘돌아온 지대넓얕’이다. ‘가장 쉬운 인문학 입문서’를 표방했던 인기 시리즈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신작 〈지대넓얕 0(제로)〉 편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비슷한 인문 교양서들이 분야의 새 흐름을 이뤘다.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1일 1클래식 1기쁨〉 등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쉬운 독서의 도우미’를 표방한 tvN 프로그램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의 영향력도 컸다. 인문 분야 〈팩트풀니스〉 〈사피엔스〉 〈정의란 무엇인가〉, 정치·사회 분야 〈지리의 힘〉, 역사·문화 분야 〈총, 균, 쇠〉 〈징비록〉 등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책 모두가 고르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메인 MC 설민석씨의 책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도 분야 내 최상위 판매고를 이어갔다.

정치·사회 분야에서는 현실 정치의 첨예한 논쟁이 책으로 이어졌다. 대결 구도를 이룬 〈검찰개혁과 촛불시민〉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대표적이다. 올해 치러진 미국 대선도 영향을 끼쳤다. 10월 나온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연합뉴스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진열된 바이든 관련 서적.

문학 분야 (소설, 시·에세이)

소설 분야의 키워드는 ‘젊은 작가’와 ‘고전문학’이다. 두 편의 신작(〈시선으로부터,〉와 〈목소리를 드릴게요〉), 영상화된 〈보건교사 안은영〉, 그 외 스테디셀러까지 거의 모든 작품이 전폭적 호응을 얻은 정세랑은 2020년대 흥행 작가 타이틀을 예약했다. 김초엽, 장류진, 강화길 등 팬 층이 두꺼운 젊은 작가들이 ‘책 읽는 젊은 독자 증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코로나19와 겹치는 이야기로 ‘역주행’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등 고전문학의 수요가 급증했다. 위기의 시대, 안전하게 검증 완료된 클래식을 선택하려는 심리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10월 발표된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은 국내에 작품이 출간된 적 없는 시인 루이즈 글릭이었다. 그의 시 ‘눈풀꽃’이 수록된 사실이 알려지며 판매에 힘을 받은 〈마음 챙김의 시〉가 연말까지 시 분야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AFP PHOTO202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루이즈 글릭.

에세이 분야에서는 1위 〈1㎝ 다이빙〉 등 감성과 위로 에세이가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한편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가 쓴 〈죽은 자의 집 청소〉와 자신의 투병 경험을 단단한 응원 메시지로 옮겨낸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응시하는 깊이 있는 시선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어린이·청소년 분야 (유아, 어린이, 청소년)

비대면의 일상화와 등교수업 축소로 어린이와 청소년이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던 해였다. 유아(0~7세) 분야 도서 가운데에는 백희나의 그림책이 화제였다. 작가가 세계 최대 어린이·청소년 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그드렌 추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알사탕〉을 비롯한 주요 작품들의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

어린이 독자는 학교 대신 집에서 책으로 놀고, 책으로 공부해야 했다. 유튜브 콘텐츠를 책으로 옮긴 〈흔한 남매〉 시리즈는 폭발적 인기를 이어갔다. 〈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나무 집〉 등 코믹 시리즈들은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마법천자문〉 〈Go Go 카카오프렌즈〉 등 공부와 놀이를 결합한 학습만화의 강세도 계속되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의 확대 시행과 함께 급성장한 청소년 소설 시장은 〈아몬드〉의 소설 분야 1위 등극에 일조했다. 청소년 소설이 소설 분야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례적이다.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까지 함께 읽는 소설로 꼽힌 이 책은 방탄소년단 추천이라는 강력한 ‘입소문 요소’가 추가되면서 메가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코로나 전망서’가 쏟아져 나온 한 해이기도 하다. 11월 말 기준, 온라인서점에서 ‘코로나’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도서를 검색하면 300종이 넘는 결과가 나온다. 불확실한 미래를 점치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구환회 (교보문고 도서 M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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