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가치 알아본 혜안.. 헬리콥터 문화재 반열에 오르다
문화재를 대할 때 감지하는 시간은 대개 우리와는 무관해 보이기까지 하는 과거다. 멀게는 인류가 처음 이 땅에 살기 시작했던 수천 년 전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 시절을 짐작하고, 그것에 깃든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보는 흔적이 문화재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투입된 ‘최초의 소방헬기’
1971년의 크리스마스, 서울 중구 명동의 22층 건물 대연각 호텔에 불이 났다. 투입 가능한 거의 모든 소방차가 출동하고, 주한미군의 헬기까지 동원됐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고가 사다리차는 8층 높이까지만 도달했고, 옥상에는 헬기가 내릴 곳이 없었다. “9·11 테러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건물 화재 참사”는 사망자만 163명을 낳았다. 대연각 화재말고도 1970년대에는 시민회관, 라이언스 호텔 공사장 등에서 대형 화재가 잇따랐고, 서울시는 ‘대형화재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특히 급격한 도시화로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고층건물의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했다. 1억5000만원을 들여 구입한 까치2호는 까치1호와 함께 ‘한국 최초의 소방헬기’로 이때 도입됐다.
재난 사고에 대처하는 방식의 전환을 증언하는 까치2호는 1980년 현장에 투입돼 2005년에 퇴역했다. 재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인명구조 등의 역할을 했다. 25년간 인명구조 344회, 산불진화 450회, 소방훈련 309회, 방역방제 1512회 등 3091회 출동해 약 3000시간을 활동했고, 구해낸 사람만도 942명에 이른다.
까치2호의 문화재 등록을 심사한 보고서에는 “까치1호가 1996년 8월 방제작업 중 추락해 폐기되어 지금의 한국 최초의 소방헬기로 유일하다”며 “대형사고의 교훈을 반추할 수 있고, 소방대원들의 노고도 되새길 수 있다”며 문화재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화재청은 “최초의 소방 헬기이자 핵심적인 인명구조 역할을 했고, 소방역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역사적·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엔진만 팔고, 기체는 보존…문화재를 만든 ‘혜안’
2005년 7월 4일 까치2호의 폐기, 매각 계획이 수립된다. 노후화로 활용능력이 떨어졌고, 대체기종도 도입된 상황이었다. 정부 자산의 경우 중고 장비로 팔아 예산을 절감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였다. 당시 감정가격은 3억8600만원,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런데 같은달 20일 매각방법을 정하는 위원회에서 뜻밖의 결정이 나왔다. 엔진 등 부속품만 매각하고 기체는 보존하기로 한 것. 심사보고서는 “소방 최초로 도입된 헬기의 역사적 보존가치에 주목한 결정이었다”며 “부분 매각으로 기체 외형을 보전한 것은 관계자들의 상당한 결단이자 역사적 혜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엔진이 빠진 현재의 상태가 ‘원형 훼손’으로 지적될 가능성에 대해 “기체 존치를 통한 유물의 보존을 위한 노력, 협상이 결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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