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수학으로 악보를 그리다

김연진 기자 2021. 1.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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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원 제공

과학과 음악은 전혀 다른 분야인 것 같지만 두 분야는 공통점이 많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올 4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연구팀은 ‘음향화’ 기술을 이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에 음계를 부여하고 단백질의 3차원 구조는 음의 길이와 세기로 나타냈다. 연구팀은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음악으로 표현하면 항체나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 부위를 보다 직관적이고 빠르게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에 음악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과학적 아이디어를 음악에 접목할 수도 있다. 지난달 8일 오전 10시 서울 신사동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공연기획사 스테이지원이 주최한 ‘과학×음악 콘서트’ 사전 녹화 에서는 프랙털, 개미수열, 극야현상, 기후변화, 끈 이론 같은 과학·수학 개념이 음악으로 탄생했다.

프랙털이 만드는 음악의 비결은 2대2대1이 만드는 화음

김택수 작곡가. 스테이지원 제공

김택수 작곡가는 프랙털을 음악으로 표현한 '프래탈리시모'를 작곡했다. 프랙털은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도형이다. 김 작곡가는 어느 측면에서 봐도 같은 부분이 나타나는 프랙털의 ‘자기 유사성’을 활용해 곡을 만들었다.

프랙탈리시모는 부드러운 선율 대신 웅장하고 무거운 음이 조각조각 끊겨서 나온다.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 퍼커션 등 4개 악기가 동시에 연주되는 부분에서는 박자가 맞지 않아 불안한 기기분 마저 든다. 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지 않아 각자 따로 연주해서 동시에 재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김 작곡가가 음의 높이, 리듬, 화성에 2대2대1이라는 비를 적용해 작곡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주자가 연주하는 음 사이의 시간 간격을 4초, 4초, 2초로 하거나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온음, 온음, 반음으로 하는 식이다. 온음은 ‘도’와 ‘레’처럼 두 건반 사이에 다른 하나의 건반(도#)이 있는 관계고, 반음은 ‘도’와 ‘도#’처럼 두 건반 사이에 아무 건반도 없는 관계다. 악기의 변화를 줄 때도 첫 3초는 클라리넷이 연주하고 다음 3초는 첼로, 다음 1.5초는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방식으로 2:2:1의 비를 유지했다.

김 작곡가는 프래탈리시모가 완벽하게 프랙털의 성질을 가지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작곡가의 선택에 따라 4대4대2의 비 적용하거나 3대3대1.5의 비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2대2대1과 같은 비를 나타내지만 숫자가 달라 자기 프랙털의 자기 유사성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김 작곡가는 "곡에 2대2대1이라는 비율을 적용할 때 어떤 부분에는 4초, 4초, 2초로 간격을 잡고 다른 곳은 3초, 3초, 1.5초로 잡은 이유를 묻는다면 자의적 선택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작곡가는 "음악을 들었을 때 수가 연상되지 않는 것을 프래탈리시모의 묘미"라며 "이 곡을 들으면 밀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밤바다의 크고 작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플래탈리시모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박진형 피아니스트는 “선율이 이어지지 않고 음이 조각조각 살아있는 느낌이 프랙털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작곡가는 프랙털 이외에도 알고리즘, 불확정성의 원리 등을 음악으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김 작곡가는 "보통 작곡가와 다르게 곡을 작곡할 때 항상 숫자 계산을 한다"고 밝혔다.

하프 선율로 탄생한 '개미수열' 

안성민 작곡가

개미수열은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등장해 유명해진 수열이다. 개미 수열의 원래 명칭은 ‘읽고 말하기 수열’로, 앞의 항의 수를 연속한 같은 수의 개수로 묶어 읽는 방식으로 다음 항을 구한다. 첫째 항이 1이면, 둘째 항은 첫째 항에 1개의 1이 있다는 뜻인 11, 셋째 항은 둘째 항에 2개의 1이 있다는 뜻인 21로 진행됩니다. 처음 몇 개의 항을 나열하면 ‘1, 11, 21, 1211, 111221, 312211, 13112221, 1113213211이다.

안성민 작곡가는 개미수열을 활용해 하프 연주곡인 L.A.S.S.14와 L.A.S.S.1-20을 작곡했다. L.A.S.S.14는 1을 시작으로 만든 개미수열에서 처음 14개 항에 등장하는 수 64개를 이용한 곡이다. 이 수열에는 1, 2, 3 이외의 수는 나타나지 않는다. 안 작곡가는 1, 2, 3에 자신이 좋아하는 화음을 적용한 후 그 위에 자유롭게 만든 선율을 얹어 곡을 완성했다.

L.A.S.S.1-20은 1을 시작으로 만든 개미수열의 처음 20개 항을 적용해 만든 곡이다. 개미수열에 등장하는 수는 개수를 나타내는 수와 진짜 수로 구분할 수 있다. 안 작곡가는 개수를 나타내는 1, 2, 3과 진짜 수에 해당하는 1, 2, 3을 구별해 서로 다른 6개의 음을 각 수에 대응시켰다. 개수에 해당하는 수 1, 2, 3에는 각각 솔, 레, 파를 대응시켰고 진짜 수에 해당하는 1, 2, 3에는 시, 라#, 도#를 대응시켰다. 6개의 음으로만 곡을 구성했을 때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음역을 넓혀서 곡을 구성했다.

안성민 작곡가는 개미수열을 활용해 하프 연주곡인 L.A.S.S.14와 L.A.S.S.1-20을 작곡했다. 수학동아DB

안 작곡가는 "음악은 수학과 관련이 없어 보여도 실제 작곡 과정에는 수학적 논리를 다양하게 적용한다"며 "이번 콘서트에서 작곡 과정에 녹아있는 수학을 청중과 공유하고 싶어 개미수열을 활용한 곡을 썼다"고 말했다. 개미수열을 고른 이유는 다른 복잡한 수열과 다르게 간단하고 직관적인 논리로 구성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다음 항에 들어갈 숫자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작곡가는 다른 수열에도 관심이 많아 피보나치 수열을 이용한 곡을 만들기도 했다.

안 작곡가는 작곡할 때 가장 어려운 점으로 개미수열의 20개 항을 직접 구한 것을 꼽았다. 16번째 항부터 수의 개수가 100개가 넘어가면서 오류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번째 항은 무려 302개의 숫자로 구성돼 있다.

 

과학을 사랑했던 음악가 "사회가 만든 틀을 깨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음악에 수학이나 과학을 활용하는 건 종종 볼 수 있지만 실제로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음악에 종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앞서 프랙털을 음악으로 표현한 김택수 작곡가가 이런 경우다.

김 작곡가는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과학 영재로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과학을 좋아하고 전공한 김 작곡가는 서울대 작곡과에 다시 입학해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다. 현재는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택수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음악대학 교수. 수학동아DB

김 작곡가는 어렸을 때부터 과학과 음악에 두루 관심이 많았다. 피아노는 4살부터 쳤고 7살 때는 바이올린도 배우기 시작했다. 김 작곡가는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과학과 음악을 배우고 즐기는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다"며 "과학고에 진학해서도 취미로 피아노를 쳤고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할 때도 종교 음악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말했다.

김 작곡가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덕분에 작곡할 때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며 "작곡을 잘하려면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작곡가는 마지막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려면 틀을 깨야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김 작곡가는 "피타고라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과학자가 과학과 음악을 모두 가까이했다"며 "사회가 편의상 나눠 놓은 분야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수학동아  2021년 1월호, [방구석 과학×음악 콘서트] 수학으로 악보를 그리다!

[김연진 기자 yeon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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