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직업성 암 환자' 적은 진짜 이유, 아시나요?"

이하늬 기자 2021. 1. 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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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한국에는 직업성 암환자가 너무 적습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보건학 박사)의 말이다. 많은 연구에서 전체 암환자의 4% 정도를 직업성 암으로 추정한다. 이를 적용하면 국내의 연간 직업성 암환자는 9600명가량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2019년 산재를 인정받은 암 환자는 205명이다.

일하다가 암에 걸리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직업성 암을 찾아내는 시스템이 사실상 없다시피 해서다. 회사는 유해물질에 대해 잘 알려주지 않고 병원에서도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직업성·환경성암찾기 119’ 운동을 시작한 이유다.

그 시작이 포스코다. 최근 포스코 전직 노동자 11명이 집단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포스코는 이 소장과도 ‘인연’이 있는 곳이다. 1990년 포스코 발암물질 논란이 일자, 포스코에서 산업위생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회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해당 업무에서 배제됐고, 사건이 잠잠해질 때 즈음 회사를 관뒀다.

이번 집단 산재 신청에 대해 이 소장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싸움보다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철소에서 다루는 원료 자체에 발암물질이 들어 있어, 인과관계가 상대적으로 명확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중랑구에 있는 녹색병원 노동환경연구소에서 이 소장을 만났다.

-왜 지금 직업성 암환자 찾기 운동인가.

“국제노동기구(ILO) 2018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평균 질병 산재사망이 86%, 사고 산재사망이 14%다. 질병사망이 압도적으로 높다. 유럽만 놓고 보면 95% 이상이 질병사망이다. 선진화된 국가의 질병, 직업성 암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은 64%가 질병사망, 36%가 사고사망이다.”

-한국에서도 질병 산재사망 비율이 사고 산재사망 비율을 앞섰다는 게 놀랍다.

“2년 전부터 비율이 역전됐다. 그럼에도 한국은 직업성 암 승인이 너무 적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직업성 암 승인자는 평균 143명이다. 2019년에는 205명이 인정을 받았다.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한 이탈리아의 직업성 암 사망자는 1만610명(2014년)이다. 영국은 1만3336명, 독일 1만7700명이다. 우리보다 인구가 적은 핀란드도 한국의 10배인 2100명이었다. 직업성 암환자를 찾기 시작하면 지금 수치에서 최소 10배는 증가할 것이다.”

-이렇게 수치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일단 의료시스템에서 직업성 암 여부가 안 걸러진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공부해 알거나 회사가 알려줘야 하는데, 이 가능성도 매우 낮다. 지금은 시민사회나 일부 전문가가 직업성 암환자를 찾아다니는 게 전부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제기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대표적이다.”

-최근 금속노조 포스코 지회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10년 전에도 직업성 암환자 찾기 운동을 했다. 그때는 실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하려고 한다.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물질, 관련된 암 발생 부위 등 선택과 집중이다. 포스코에서 산재를 인정받기 시작하면 다른 제철소는 물론이고 철광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건설업까지 확대하려고 한다. 건설업에 직업병이 상당히 많다.”

1990년 포항제철에서 허용치보다 많은 발암물질이 배출된다는 서울대 보고서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1990년 12월 24일 경향신문 기사.


-제철소에서 취급하는 물질과 암 발병 사이의 연결고리가 궁금하다.

“쇳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코크스’라는 용광로 연료가 필요하다. 코크스는 석탄을 아주 오랫동안 구운 것이다. 석탄에는 결정형 유리규산이 들어 있다. 유리규산은 1급 발암물질이다. 쇠를 압착시키는 압연공정에는 절삭유, 윤활유가 사용된다. 여기에는 혈액암(백혈병,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을 일으킬 수 있는 포름알데히드와 벤젠이 들어간다. 역시 1급 발암물질이다. 공정에 따라 노출량이 다를 수 있지만, 모든 공정에서 이런 발암물질에 노출된다.”

-30년 전에도 발암물질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직업성 암 산재신청은 4건밖에 되지 않는다.

“당시 포스코 작업환경이 외부로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민주노조가 있다.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작업환경 측정을 외부에 맡겨서 했다. 이후 노조가 와해되면서 열악한 제철소 작업환경 문제도 쏙 들어가 버렸다. 포스코 공장이 있는 지역에서 포스코의 힘은 엄청나다. 현직자가 그걸 감수하고 나서기 쉽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래도 4건 중 3건이 직업병으로 인정됐다.”

-이번 산재 신청자 상당수가 폐암, 폐섬유증이다.

“유리규산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는 발암물질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폐암이나 폐섬유증 등은 어렵지 않게 인정될 것 같다. 벤젠에 의한 백혈병 발병도 이미 많은 승인 사례가 있다. 루게릭병은 아직 원인을 모르는 병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승인은 안 될 수 있지만 이후 행정소송으로 가면 직업병 인정 가능성이 있다. 작업환경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발병했다는 것을 공단이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와 겹쳐 보인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싸움보다 쉬울 것이다. 제철소에서 다루는 물질이라는 게 명확하고, 이 물질에 의한 암 발병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와 사례가 있다. 회사가 발뺌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작다. 산재 신청 규모도 삼성반도체보다 커질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전에 정규직이 했던 일 상당수가 하청으로 갔다. 앞으로는 제철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업성 암에 주목해야 한다.”

-당장 필요한 조치는 무엇인가.

“안전보건진단이 우선이다. 지금 우리는 포스코 작업장이 어떤 환경인지 알지 못한다. 정부가 김용균 특조위(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처럼 객관적인 기구를 만들어 포스코 작업환경에 대한 보건진단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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