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고통과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나' 보다 '우리'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1. 1.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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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제공

사람들에게 살면서 후회가 심한 일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묻는다. 그러면 다양한 영역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일 관련(커리어, 성취), 여가활동, 인간관계(연인, 친구, 가족) 등에 관한 후회들이 두드러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심하게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 후회의 ‘강도’를 염두에 두고 물으면 무엇보다 인간관계와 관련된 것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는 연구가 있었다(Morrison et al., 2012). 

일을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거나 좀 더 다양한 취미생활을 했어야 했다는 것들보다도 “그 사람에게 내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상처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같이 타인에게 충분히 잘해주지 못했거나 나쁜 영향을 미친 것, 혹은 섣부른 판단과 두려움 또는 오해로 인해 충분히 좋았을 수 있는 관계를 망친 경험 등이 가장 큰 후회를 불러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회라는 감정은 ‘무엇이 내게 있어 정말로 중요하고 소중한지’에 대해 알려주는 감정이다. 즉 후회는 눈 앞의 일을 처리하며 바쁘게 사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어느 순간 소중한 것을 잃고 말았을 때, 또는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이라고 소중한 것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가 결국 떠나보내고 말았을 때, 뒤늦게라도 그것이 내게 있어 얼마나 큰 삶의 원천이었는지 일깨워주는 감정이다. 지금이라도 수습하거나 아니면 다음부터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을 가르쳐주는 감정이다. 

사람들에게 각자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환기시켜주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사람’에 관한 후회를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외로움과 고립, 단절에 몸을 떨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기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이나 힘들어했던 친구에게 따듯하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 작은 일로 불필요하게 큰 갈등을 빚었던 일 등 ‘사람’과 관련된 일들이 가장 후회막심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낯선 사람과 관련된 일로 심하게 후회한 적이 있다. 밤 늦은 시간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컴컴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게 자신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며 다가와서는 도와달라며 말을 꺼냈다. 병원에 있는 아들을 보러 가야 하는데 늦은 시간에 기름 값이 없어서 차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기름값을 조금 보태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50불짜리 지폐가 있었고 낯선 이에게 주기에 50불은 큰 돈 같아 보여서 잔돈이 없다고 미안하다고 하고는 걸음을 돌렸다. 

사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둠 속에서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정확히 기억할리 만무하지만, 내 기억 속 그 사람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 담겨있다. 그 눈빛이 자꾸 떠오르며 나보다 그 사람에게 더 절실한 돈이었을텐데 그에게 줬어야 했다는 후회가 막심하다. 

사람들은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나서 스스로가 성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 많이 ‘성장’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눈에 띄는 성장은 잘 나타나지 않고 다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현상은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어려움을 통해서 더 성숙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었으며 삶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 어떤 ‘개인적’ 성장을 이뤘다기보다 ‘관계적’ 성장을 이룬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휘튼대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B. 데이비스(Edward (Ward) B. Davis) 등은 어려움을 통해 ‘나’는 생각보다 크게 성장하지 않지만 ‘우리’는 크게성장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Davis et al., 2019). 

달리 말하면 삶에서 난이도가 높은 구간을 지나가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역경을 살아낸 사람들은 힘든 와중에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삶이 한층 더 깊어졌다고 느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변화와 성장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게 있어 고통은 본질적으로 ‘함께’여야만 이겨내고 승화시킬 수 있는 무엇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일이 큰 후회로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절벽 끝에 서있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는 누군가의 옷깃을 잡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뿌리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지난해에 이어 이번해 역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차피 마주할 고난이라면 따듯한 말 한 마디라도 건내며 가급적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여러분 역시 후회스러운 지난 일이 있다면 새해에는 이를 놓치지 않길 바래본다. 

※관련기사 

Morrison, M., Epstude, K., & Roese, N. J. (2012). Life regrets and the need to belong.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3, 675-681.
Davis, E. B., Van Tongeren, D. R., McElroy-Heltzel, S. E., Davis, D. E., Rice, K. G., Hook, J. N., Aten, J. D., Park, C. L., Shannonhouse, L., & Lemke, A. W. (2019). Perceived and actual posttraumatic growth in religiousness and spirituality following disasters. Journal of Personality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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