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문재인·이낙연 合作’ 제2의 6·29선언 내놓나

강천석 논설고문 2021. 1. 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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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 했던 대통령에게 ‘이게 나라냐’고 다시 묻는 국민
김종인 위원장, 불쏘시개처럼 자신을 태워야 黨과 나라 살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절한 시점에 이명박·박근혜 전(前) 대통령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선거의 해다운 출발이다. 현 집권 세력은 정치에 생사(生死)를 건 집단이다. 국민의 힘보다 몇 배 고수(高手)다.

2018년 10월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전 이낙연 국무총리와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뉴시스

두 전 대통령 사면 건의 발상(發想)은 전두환-노태우 합작품(合作品)인 1987년 ‘6·29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김대중 사면 복권과 시국 관련 정치 사범 석방을 대통령에게 공개 건의하고 이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치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노 대표는 발표문을 읽고 그길로 국립 현충원에 참배했다. 기획자의 예상대로 야권은 김영삼과 김대중 진영으로 분열됐고 노 대표는 그해 12월 16일 대통령선거에서 36.6%를 얻어 당선됐다.

‘2021년 1월 1일’과 ‘1987년 6월 29일’은 사정이 다르다. 1987년의 전두환은 무대 뒤로 완전히 몸을 숨겼다. 발상·기획·연출을 도맡고도 무대 전체를 주연배우에게 내줬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밀담(密談) 결과는 이 극화(劇化) 과정을 거쳐 ‘선언’으로 승격(昇格) 포장됐다. 두 전 대통령 사면 문제는 6·29 선언 소재만큼 폭발적 소재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주연배우에게 모든 빛나는 역할을 통째로 내줄지도 미지수다.

현 정권은 얼마 전까지도 두 대통령의 징역(懲役)살이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때는 훈장처럼 여기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사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문 대통령은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이 불행한 역사는 종식돼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모범이 되겠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세상 이치는 간단하지 않다. 깃털처럼 가벼운 솜도 시간의 강(江)을 건너며 물을 먹으면 천근만근(千斤萬斤)이 된다. 코로나 병동(病棟)이 돼버린 구치소 안 두 대통령은 이미 쇳덩이만큼 무거워졌다.

그래도 두 대통령을 내놓겠다는 발상은 여권의 정치 머리가 여전히 작동(作動)하고 있는 걸 상기시킨다. 한두 명 정치 책사(策士)의 꾀가 아닐 것이다. 여권 상당수의 집단 창작(創作) 가능성이 크다. 쇳덩이를 내려놓는데 무슨 꾀가 필요하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국민의 힘이 광주를 내려놓는 데 40년 걸렸다. 지난 총선에선 자기네 당이 배출한 두 대통령을 구치소에 놔둔 채 국민에게 한마디 없이 선거를 치렀다.

대통령에게 질려서, 정권의 실정(失政)과 행태에 억장이 무너져 투표장에 나갔다가 몇 번을 망설였으나 손이 야당 쪽으로 나가지 않더라는 세대(世代)와 계층(階層)의 표가 쏟아져내린 결과가 야당 대참패였다. 그 대승(大勝)이 여당의 교만을 키워 지금은 독(毒)이 됐다.

선거는 상대가 못해서 이기는 경우가 더 많은 경기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국민은 그때보다 몇 배 성난 목소리로 ‘이게 나라냐’고 묻고 있다.

사회적 빈곤층은 코로나가 번지기 전인 2018년에 16만 명, 2019년엔 13만8000명이 늘어 정권 출범 이전보다 50만 명이 증가한 272만 명에 달했다. 전국 226개 시·군·구 가운데 절반인 111곳을 부동산 규제 지역으로 묶었는데도 전국 아파트 값 상승률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스물다섯 번째 대책이 나온다고 한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상대로 지휘권 발동·직무 정지라는 위법(違法)·무법(無法)의 칼을 휘둘러 나라를 뒤집었다. 법원이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사법 체계는 벌써 결딴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러는 사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구치소를 점령했다. 동맹국 미국은 대북 전단 금지법을 청문회에 올려놓고 한국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지 북한 인권에 관심이 있기라도 한지 따진다고 한다. ‘이게 나라냐’는 소리가 이보다 높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선거는 ‘이게 나라냐’라는 성난 목소리만으로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야당이 ‘당신네가 대안(代案)’이라는 국민과 만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현 집권 세력은 제 몸을 앞으로도 열 번은 더 바꿀 것이다. 동남풍(東南風)이 분다 싶으면 헛것 먼저 보이는 게 정치다. 느슨한 야당 분위기에서 그 낌새가 느껴진다. 김종인 위원장은 87년 6·29와 그 결과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람이다. 김 위원장이 스스로를 태우는 불쏘시개가 돼야 ‘국민의 힘’이 진짜 국민의 힘으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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