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대 1 '방역 알바'.. 실직 가장도, 취직 못한 명문대생도 몰렸다

백수진 기자 2021. 1. 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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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코로나가 만든 '신종 알바' 체험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교회에서 방역복을 입은 기자(왼쪽)가 분사기로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방역 아르바이트 공고 뜨면 무조건 지원하세요.” “발열 체크 알바(아르바이트) 또 떨어졌습니다. 너무 하고 싶네요.”

요즘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코로나 유행이 만든 신종 아르바이트를 애타게 찾는 글들이 올라온다. 식당·카페 아르바이트 채용이 급감하면서 발열 체크나 방역 소독 아르바이트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특히 관공서나 대형 빌딩 입구에서 방문객의 체온을 재는 발열 체크 아르바이트는 일명 ‘꿀알바’로 소문이 났다. 간단한 교육을 받고 다중이용시설, 대형 건물을 소독하는 방역 아르바이트도 인기다. 지난달 27일과 30일 ‘아무튼, 주말’에서 코로나 시대 신종 아르바이트의 세계를 체험해봤다.

◇온몸에 소독약 뒤집어써

“손잡이는 맨손으로 잡으시면 안 돼요. 어제 바로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라는 마음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무심코 평소대로 문을 밀었다가 일하기도 전에 혼부터 났다.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교회. 평소 같으면 예배로 북적거렸을 교회 건물에서 방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 약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코로나 바이러스 소독제입니다.” 교육이 시작되자 방역 업체 엠엔지환경개발의 이승욱 팀장은 20ℓ짜리 보랏빛 소독약부터 꺼냈다. 식약처와 환경부의 인증을 받은 ‘MD-125’라는 제품으로 메르스 때부터 사용됐던 살균 소독제라고 한다.

파란색 일회용 덧신으로 신발을 감싸고 하얀 방역복을 갖춰 입었다. 특급 방진 마스크에 고글까지 끼니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찼다. 이 팀장은 “이 소독약을 온몸에 다 뒤집어쓴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시커먼 방독면을 썼다.

30분가량의 교육이 끝나고 2층 예배실부터 소독을 시작했다. 초미립자 분사기 ‘뿌레’에 소독약을 가득 채우자 5~6㎏ 아령을 든 듯 묵직했다. 스위치를 켜자 굉음과 함께 소독약 미립자들이 안개처럼 분사됐다. “의자에 직접 뿌리면 얼룩이 질 수 있기 때문에 15도 위 방향으로 뿌려야 해요. 이슬비 내리듯이, 약이 아래로 내려앉도록.” 분사기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약을 뿌리자 팔이 금세 뻐근했다.

20평 남짓한 공간을 소독약으로 가득 채웠다. 마스크를 조인 끈이 헐거워지자 소독약의 매운 냄새 때문에 기침이 나려 했다. 황급히 마스크를 더 세게 조였다. 바이러스가 죽을 때까지 10분쯤 기다렸다가 손잡이, 스위치 등 손이 많이 가는 곳을 걸레로 닦아냈다. “혼자 작업하면 보통 건물당 한 시간 정도 걸려요. 일도 일찍 끝나고 시급도 만원이니 대부분 오래 하려고 하죠.”

아르바이트생은 방역 업체 직원이 비번이거나 급하게 방역 일정이 잡혔을 때 투입된다. 아르바이트생은 보통 3~4시간씩 짧게 일하지만, 방역 업체 직원들은 새벽 4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정이 꽉 차 있다. 원래 해충 방역을 전문으로 하던 이 업체는 코로나 이후 일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 팀장은 교회 방역을 마치자마자 편의점으로 가 커피부터 샀다. “잠이 부족하니까 커피를 달고 살아요. 어디 가서 옮으면 큰일이니까 식사는 매일 샌드위치나 햄버거 사서 차에서 먹고요. 직원들끼리는 서로 ‘한 명이라도 코로나 확진되면 억대 손실’이라고 얘기해요.”

◇'노 마스크' 손님 때문에 골치

코로나가 만든 신종 아르바이트 중에서도 발열 체크 아르바이트는 난이도 ‘하’로 알려졌다. 시급도 보통 1만~2만원으로 최저시급을 웃돈다. 건강검진을 하는 의료 기관에서 발열 체크 아르바이트를 한 이모(28)씨는 “‘꿀알바 중에서도 유명한 꿀알바'라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바로 지원했다”고 했다. “요즘은 카페나 음식점,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파트 타임으로만 뽑아서 돈이 안 돼요. 발열 체크처럼 업무 강도도 낮고 돈도 많이 주는 아르바이트는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죠.”

이씨는 지난 10월부터 평일 오후 4시간씩 체온 측정과 안내 업무를 맡았다. 확진자 접촉 여부, 발열·기침 증상을 확인하고 마스크에 스티커를 붙여주는 일이었다. “확인차 여쭤보는데도 왜 의심하냐는 투로 화내시는 분들이 있어요. 간혹 마스크를 제대로 안 쓰신 분들이 ‘안 써도 괜찮다’며 고집까지 부리면 황당하죠.” 그는 “마스크를 쓰다 보니 소통이 어려워서 크게 말하게 되는데, 중간에 마스크를 벗고 물 마시기도 어려워서 침이 계속 마르고 목이 아팠다”면서 “생각만큼 꿀알바는 아니어서 금방 관뒀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이모(29)씨는 부업으로 평일 오후 4시부터 오후 9시까지 쿠팡 택배 차량을 소독한다. 택배 차량이 복귀하면 소독제와 알코올 물티슈로 구석구석 손으로 닦는다. 월급은 100만~110만원으로 시급으로 따지면 1만원 정도다. 이씨는 “택배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난이도를 10이라 친다면 쿠팡차 소독 아르바이트는 7 정도”라고 했다. “대충 닦아도 티는 안 나겠지만, 양심껏 구석구석 소독해요.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는 책임감도 느껴지고요.”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코로나 실업자, 방역 ‘알바’로 몰려

최근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고용주 471명 중 52%가 “코로나 유행 이후 직원 규모가 줄었다”고 답했다. ‘꿀알바’를 찾는 이들은 많지만 막상 발열 체크나 방역 아르바이트 공고 수도 많지 않다. 안수정 잡코리아 홍보팀 과장은 “따로 아르바이트를 두지 않고 기존 직원에게 맡기는 경우도 많아 보인다”면서 “최근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 이후 체온 측정이나 매장 소독 등 부가 업무가 늘었다는 답변들이 있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코로나와 싸우는 ‘알바’로 몰려가기도 한다. 이승욱 엠엔지환경개발 팀장은 “아르바이트생 한 명 뽑는데 150명까지 지원한 적도 있다”면서 “일감이 줄어든 영화배우, 헬스 트레이너, 학원 선생님들도 많이 지원하고 명문대 출신까지 ‘스펙’이 화려하다”고 했다.

방역 업체 ‘스마트클린’도 아르바이트 공고를 올릴 때마다 100명 안팎으로 지원자가 몰린다. 이 업체를 통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의 20층짜리 대형 건물에서 소독 아르바이트를 체험했다. “지난 9월부터 매달 확진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안내를 듣자 순간 겁이 났다. ‘괜히 왔나’ 후회가 될 때쯤 소독제와 걸레가 쥐어졌다.

한 층에 150평 규모 사무실에 크고 작은 방이 15~20개씩 있었다. 선반과 손잡이, 스위치를 닦기 시작했다. 방이 늘면 닦아야 할 손잡이도 는다. 본부장실, 상무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소독약을 뿌리는 분사기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잠시도 쉬지 않고 발을 놀려야 했다. 두 시간 동안 열 층을 닦고 장갑을 벗자 손에 땀이 흥건했다.

이정일 스마트클린 과장은 “코로나 이후 셧다운으로 쉬고 있는 분들도 채용하고 있다”고 했다. “뭐든지 시켜만 주면 하겠다는 40대 가장이나 주부도 있고요. 취업이 안 돼서 계속 아르바이트하는 20대, 학교에 안 가서 짬 나는 고등학생도 지원해요.” 그는 “쉽게 생각하고 왔다가는 3시간 만에 나가떨어진다”면서 “체력 좋은 남자도 무거운 분사기 들고 스무 층 정도 왔다 갔다 하면 다음 날 팔이 안 접힌다”고 했다. 그것보다 더 큰 어려움은 “위험성”이라고 했다. “확진자가 나오면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거든요. 그럼 위험해도 바로 뛰어가야지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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